주간동아 942

2014.06.16

달달한 화음으로 팝 여명기 노래

바버렛츠 데뷔 앨범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06-16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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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달한 화음으로 팝 여명기 노래

    걸그룹 바버렛츠 데뷔 앨범 ‘바버렛츠 소곡집’.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베트남전쟁 직전까지 미국 문화는 풍요의 어떤 상징이었다. 음악 또한 다르지 않았다. 팝음악의 여명기라 할 당시, 음악 산업 중심은 틴 팬 앨리였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유럽의 경제력을 가파르게 추월하기 시작한 1930년대 뉴욕은 음반 산업의 중심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음반이란 매체가 등장하기 전 음악 소비의 주요 매체였던 악보 출판사들이 모여 있던 지역이 틴 팬 앨리다. 토머스 에디슨이 레코딩을 발명했지만 아직 프랭크 시나트라, 척 베리 같은 초창기 팝 스타는 등장하기 전이다.

    그때 음악 산업을 좌지우지했던 주체는 버트 배커랙 등의 작곡가들이었다. 클래식에 기반을 둔 교육을 받은 그들은 대부분 백인 엘리트였다. 고전음악의 주요 표현방법인 화성과 백인 중산층의 주요 사교기반이던 교회 문화를 충족하기 위해 틴 팬 앨리 작곡가들은 화음을 중시하는 곡을 쓰곤 했다.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로 이어지는 로큰롤 혁명 이전의 미국 팝스타가 대부분 훤칠한 백인 소년소녀였던 건 그 때문이다. 가스펠과 재즈, 리듬앤드블루스 같은 흑인음악이 팝 음악을 지배하기 이전의 음악이다.

    데뷔 앨범 ‘바버렛츠 소곡집’을 낸 바버렛츠는 그때의 음악을 노래하는 걸그룹이다. 일반적으로 걸그룹이라 함은 당연히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노래하고 춤을 중시하는 소녀들의 조합이다. 그러나 안신애, 김은혜, 박소희 3인조로 이뤄진 바버렛츠는 밴드에 대한 현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의 음악을 노래한다. 리드와 서브로 가르는 대신 철저히 화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바버렛츠의 시작은 리더 안신애다. 10대 때부터 대중음악계 한편에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오랫동안 ‘복고 마니아’였다. 20세기 초반부터 1960년대까지의 음악과 이미지에 빠져 있던 그는 본격적으로 그 시대의 음악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고, 재즈 밴드 세션 보컬리스트로 알고 지내던 김은혜, 그의 보컬 제자였던 박소희를 불러모아 하모니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커버 위주로 연습하다 하나 둘씩 자작곡을 만들기 시작했고 공연까지 이어졌다. 노영심이 주최한 자선음악회에서 했던 첫 공연은 서울 홍대 앞 작은 클럽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에게 바버렛츠의 등장은 작은 충격이었다. 옛것을 추구하되 촌스럽지 않았고, 신인인데 자신감이 넘쳤다. 데뷔 앨범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가 하나 둘 생겨났다.



    마침내, 첫 앨범이 나왔다. 본래 5~6곡의 미니앨범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지만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발매가 연기됐다. 그 시간 동안 몇 곡을 추가 녹음해 아예 총 9곡을 담은 정규앨범으로 발매했다. 그렇게 나온 바버렛츠의 데뷔 앨범은 귀를 사로잡는다.

    앨범에는 여자 셋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하모니의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나긋나긋한 봄처녀들의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가시내들’부터 붉은군대 합창단의 웅장함을 여성 버전으로 이식한 듯한 ‘비가 오거든’까지, 조화와 진격과 합침과 나눔이 다양한 앵글로 그려진다. 이런 방법론이 우리에게 낯선 건 아니다. 아직까지도 종종 1980년대 음악을 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정란, 고은희의 ‘사랑해요’나 작품하나의 ‘난 아직도 널’ 같은 노래를 떠올려보자. 여성 하모니의 매력을 아는 이라면 충분히 그리워할, 지금의 걸그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바버렛츠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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