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1

2014.06.09

록의 전설 디지털로 부활

레드 제플린 ‘리마스터링’ 음반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06-09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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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의 전설 디지털로 부활

    1970년대 전성기의 레드 제플린.

    1970년대는 록의 춘추전국시대였다. 1970년 비틀스의 해체와 함께 생긴 음악계의 거대한 공백을 메우고자 수많은 밴드가 칼을 빼고 중원으로 돌진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이름 중 왕좌를 차지한 팀은 레드 제플린이었다. 총 9장의 정규앨범은 지금까지 3억 장 가까이 팔렸고, 그 대부분은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로버트 플랜트,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 존 보넘은 모두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인재였다.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드록을 완성했으며 포크와 레게, 인도 음악 등 여러 장르를 실험하고 결합했다. 지미 페이지는 록의 중요한 요소인 리프의 개념을 확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음악적 순간을 창조해냈다.

    1980년 존 보넘의 사망으로 밴드는 해체를 선언했지만 한국에 록음악 애호가가 하나 둘 생겨나던 80년대 그들은 동시대 밴드나 마찬가지였다. 록에 입문하는 아이들에게 레드 제플린은‘수학의 정석’ 같은 존재였다. 취향을 떠나 록을 듣는다면 레드 제플린 앨범 한두 장은 갖고 있어야 했다. ‘Rock N’ Roll’은 록밴드를 결성한 아이들이 반드시 카피해야 할 통과의례였으며 로버트 플랜트의 샤우팅은 록보컬을 꿈꾸는 아이들이 완수해야 할 과제와도 같았다. 그들의 영향을 받아 시나위, 부활 같은 초기 헤비메탈 스타 밴드가 만들어졌다.

    공연시장 규모가 커지는 반면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맡을 만한 새로운 거물은 등장하지 않다 보니 많은 전설적 밴드가 재결성된다. 하지만 레드 제플린은 밴드 해체 후 재결성한 적이 없다. 그들을 발굴했던 애틀랜틱 레코드 설립자 아흐메트 에르테군의 사망을 기리려고 2007년 딱 한 번 공연을 가졌을 뿐이다.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로버트 플랜트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런 레드 제플린이 21세기 사운드로 돌아왔다. 전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리더 지미 페이지의 지휘하에 모든 음반을 디지털 리마스터링해 재발매한 것이다. 최근 1~3집이 공개됐고 하반기엔 4~6집이, 그리고 내년 상반기에 남은 앨범 3장을 공개하는 대장정 프로젝트. 사운드는 놀랍다. 전체적인 음량이 커졌고 디테일이 살아났으며 전에는 느낄 수 없던 공간감이 존재한다. 1994년 첫 리마스터 버전이 CD시대 사운드였다면 이번 리마스터는 디지털 음원시대, 오디오가 아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의 사운드인 셈이다.

    기존 음악의 소리를 만져 발매했던 1994년 버전에 비해 내용물도 충실하다. 일반 버전이 아닌 딜럭스 버전의 경우 보너스 디스크가 한 장 더 들어 있다. 기존 곡의 얼터네이트 테이크, 즉 앨범에 담긴 버전과 다른 녹음 버전, 미공개 라이브 등이 빼곡하다. 레드 제플린 팬에게는 그들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패키지인 셈이다. 영화로 치면 메이킹 다큐멘터리가 실린 감독판 DVD다. 오리지널 레코딩테이프 안의 소리가 최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이전 사운드 환경에서도 지금 이 시대 밴드에 견줘 전혀 손색없다. 새로운 사운드로 듣는 레드 제플린은 어떤 면에서는 탄식을 자아낸다. 전통적인 형태의 록은 1970년대 이미 완성된 게 아니었을까, 그 후 밴드들은 이를 이어받아 다른 장르를 만들어내거나 선배들 음악을 반복하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하는 탄식까지 불러낸다. 위대한 유산은 빛이 바래지 않는다. 다만 먼지가 쌓일 뿐이다. 여기, 그 먼지를 제거한 레드 제플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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