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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김원곤 교수의 외국어 도전기

28년 만에 수험생…묘한 긴장감

전날 잠 설치고 한어수평고시 치르러 시험장에 입장

28년 만에 수험생…묘한 긴장감

28년 만에 수험생…묘한 긴장감
2011년 3월 13일 일요일, 드디어 시험날이 됐다. 3월 시험은 당시만 해도 그해 치르는 한어수평고시(HSK) 가운데 가장 빠른 일정이었다. 지금은 수험생의 증가 수요에 맞춰 매달 전국적으로 시험을 치를 정도가 됐다. 시험 등록은 사전에 인터넷으로 수험료 8만5000원을 내고 해둔 상태였다.

시험 준비물은 수험표와 신분증, 2B연필 세 가지뿐이었다. 워낙 오랜만에 치르는 시험이라 준비물이 신경 쓰였다. 컴퓨터용일 것이라는 추정만 할 뿐, 2B연필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몰라 문구점에서 몇 번이고 확인한 뒤 4자루나 준비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요즘 같은 세상에 연필심이 그렇게 쉽게 부러질 리 없지만 모처럼 치르는 시험에 괜한 노파심이 그렇게 요란스러운 준비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우개와 함께 시험 칠 때 시간을 확인하려고 책상 위에 올려놓을 소형 시계도 문구점에서 따로 구매했다. 게다가 집사람이 마련해준 노란색 천으로 만든 예쁜 필통까지, 그야말로 만반의 시험 태세를 갖춘 셈이었다.

만반의 시험 태세 갖춰

수험장은 경기고, 행당중, 당산중 가운데 원하는 곳을 미리 지정할 수 있었는데 나는 집에서 가까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경기고를 선택했다. 시험 전날 저녁에는 가급적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애를 썼지만 평소 늦게 자는 습관이 있는 데다 약간은 긴장한 탓인지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자 나는 내일 시험에서의 예상 득점 시나리오를 다시 한 번 정리해봤다. 먼저 읽기 영역은 100점 만점에 85~90점 고득점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HSK 수험생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어법 분야에서 3분의 1이나 2분의 1 정도만 맞힌다 해도 어휘나 문장 독해 등 다른 분야에는 상당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쓰기 영역은 모의시험 결과와 학원 담당 강사의 평가에 따라 예상 점수를 70점에서 80점 사이로 산정했다.

그동안의 준비 과정을 돌이켜보니 내심 이보다 더 좋은 점수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은근히 들었다. 다만 듣기 영역은 취약 분야로 간주해 최악의 경우 절반 이하 득점까지 각오했다. 이런 예상을 요약하면 이랬다. 듣기 45~70점(100점 만점), 읽기 85~90점(100점 만점), 쓰기 70~80점(100점 만점), 최저 예상 점수 200점 혹은 최고 예상 점수 240점(300점 만점).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합격 기준 점수인 180점은 무난히 넘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만 시험 당일 일은 그 누구도 모른다. 연습과 실전은 엄연히 다르며, 예상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일은 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다 언제 잠이 든지도 모르게 꿈나라로 갔다. 그러다 문득 깨니 새벽 5시 30분. 입실 시간이 9시이고, 수험장까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인 것을 감안하면 한숨 더 자도 될 법했지만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일어나 잠시 쉬다가 차라리 일찍 수험장에 가서 분위기나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7시 30분쯤 준비물을 챙겨 집을 나섰다. 절대 자가용은 갖고 오지 말아달라는 인터넷 공지가 있었기에 택시를 잡아타고 수험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택시 안에서 문득 ‘마지막으로 시험을 치른 것이 언제였더라’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계산해보니 28년 만의 일이었다. 1983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공의로 재직할 당시 흉부외과학 박사과정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한 것이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시험으로는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생각됐다. 물론 그로부터 2년 후 치른 박사학위 취득 자격시험이나,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89년 1년간 미국 장기 연수 체류를 위해 현지에서 치렀던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까지 굳이 따지자면 그 시점에 조금 차이는 날 수 있다. 이렇게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까지 포함하더라도 22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다시 치르는 시험인 셈이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대학교수라는 직업 특성상 시험과는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살 수밖에 없었다. 계속 학생 시험문제를 내야 했고, 시험감독관 자격으로 학부생 시험과 대학원생 시험, 그리고 의사국가고시와 전문의 자격시험에 이르기까지 1년에도 몇 차례씩 수험장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르치고 평가하는 사람 처지에서의 시험이었을 뿐이다.

28년 만에 수험생…묘한 긴장감

김원곤 교수가 한어수평고시(HSK)를 준비하면서 쓴 답안지 연습장.

아무튼 실로 오랜만에 수험생 처지에서 접해보는 수험장 분위기는 일면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운 느낌까지 들었다. 너무 일찍 서둔 탓에 입실시간 한 시간 전쯤 학교 앞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적잖은 학생이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교문 앞에는 연필을 파는 상인도 보였고, 몇몇 유명 학원에서 홍보 유인물을 나눠주려고 직원들이 일찌감치 진을 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중에는 다녔던 학원의 익숙한 직원들 모습도 보여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경기고 교문에서 이어지는 긴 언덕을 통과해 지정된 건물 앞에 도착하니 시험 관계자들이 건물 현관 앞에서부터 수험표와 신분증을 확인한 뒤 수험생들을 들여보냈다. 나중에 교실 안에서 확인해도 될 것 같은데, 그들 나름대로 대리 시험 같은 부정행위를 가능한 한 원천적으로 차단해보려는 노력으로 생각됐다.

40대 이상 수험생은 드물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적잖은 학생이 책상 앞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이라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였다. 수험생은 대부분 20대로 보였고 30대로 보이는 사람도 제법 눈에 띄었다. 예상대로 40대 이상 수험생은 아주 드물었다. 내 연령대의 수험생은 적어도 내가 시험을 치르는 교실이 있는 층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전체 수험생의 남녀 비율은 얼핏 3 대 7 정도로 여자가 많아 보였다.

교실 안에는 내가 어린 시절 60명 넘게 한 교실에서 빽빽이 앉아 공부하던 때와 달리 책상 25~30개가 간격을 꽤 두고 자리 잡고 있었다. 새삼 ‘요즘 세대는 복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수험생 입실이 완료된 후 시험 감독관의 주의사항 전달, 문제지와 답안지 배부, 응시자 신분 확인 등이 이어졌다. 그리고 9시 30분쯤 드디어 시험이 시작됐다. 나는 과연 28년 만에 치르는 이 시험을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까. 긴장감이 새삼 뒤늦게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주간동아 2014.05.19 938호 (p72~73)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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