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6

2014.05.07

세월호 충격 지갑 닫는 소비자들

민간 소비심리 위축 내수시장 썰렁…기업도 마케팅, 각종 행사 자제 분위기

  • 양충모 객원기자 gaddjun@gmail.com

    입력2014-05-07 10:4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세월호 충격 지갑 닫는 소비자들
    올 초 주식시장에서는 내수 관련 기업이 투자 유망 종목으로 꼽혔다. 지난해 부진을 면치 못하던 내수주가 성장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였다. 여기에는 정부의 내수 활성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4월 10일 한국은행(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8%에서 4%로 끌어올리면서 그 배경으로 내수 회복을 들었다. 한은은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수출 증가세가 확대되는 가운데 소득 여건 및 기업의 투자심리 개선으로 내수 회복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실제 올해 성장에 대한 지출 부문별 기여도를 보면 수출(1.9%p)보다 내수(2.0%p)가 더 높았다. 시장에서도 올해 하반기 경기를 내수 회복이 견인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장밋빛 전망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민간 소비심리 위축을 불러와 내수 회복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리라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세월호 트라우마가 사회 전반에 깔린 분위기에서 지갑을 닫아버리는 소비자가 늘고 있으며 기업도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려고 마케팅, 사내 행사 등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카드 사용액 대폭 감소

    민간 소비 동향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것은 카드 사용액이다. 2014년 1분기 상황만 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다. 4월 29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카드 승인금액(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승인금액 합)은 136조99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했다. 1~2월 개인정보 유출 여파로 탈퇴 회원이 급증하는 등 고초를 겪었음에도 최근 5분기 증가율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 3월 카드 승인금액은 총 48조52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조1900억 원(7.0%) 늘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만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4월 16일부터 20일까지 닷새간 개인 신용판매(일시불과 할부) 금액은 3조2800억 원으로, 9일부터 13일까지 개인 신용판매 금액 3조5300억 원보다 7.6% 감소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가 나와야 알겠지만, 개인카드뿐 아니라 법인카드 사용액 역시 대폭 감소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로 당분간 업계 전체가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카드 사용액의 감소 배경에는 대형마트, 백화점, 홈쇼핑 등 유통업계의 매출 부진이 있다.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곳은 홈쇼핑이다. 홈쇼핑 업체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주간 매출이 5~15%가량 감소했다. CJ오쇼핑은 4월 19일과 휴일이던 20일 매출이 전주에 비해 20.0% 줄었다. GS숍의 경우 16일부터 20일까지 매출이 전주와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감소했다.

    홈쇼핑 매출 감소는 사고 구조 상황에 대한 관심이 높아 시청자가 보도채널 쪽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또한 홈쇼핑 스스로 사회적 애도 분위기를 감안해 차분하고 조용한 마케팅으로 전환한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대형마트 변화도 크다. 세월호 참사 발생 이틀째인 4월 17일부터 20일까지 이마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2013년 4월 18∼21일)보다 1.27%, 의무휴업이 없던 2주 전(4월 3∼6일)보다 1.25% 줄었다. 롯데마트의 경우도 사고 이후인 17∼20일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3.2%, 의무휴업이 없던 2주 전에 비해서는 3.7% 감소했다.

    5월 특수도 미미할 듯

    특히 희생자 수백 명이 발생한 경기 안산 지역의 대형마트 매출이 급감했다. 안산권역에 위치한 롯데마트 4개 점포의 매출은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1%, 2주 전에 비해서는 13.3% 급감했다. 같은 권역에 위치한 이마트 역시 월 초부터 사고 직전까지 3.2%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고 후인 17~20일에는 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백화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매출이 가장 크게 감소한 곳은 롯데백화점이다. 롯데백화점은 4월 16일부터 20일까지 매출이 1.3% 감소했다. 주말 매출은 1.6%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4월 4일부터 시작한 봄 정기세일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현대백화점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이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봄 정기세일 전에는 매출이 2% 늘었지만 16~20일에는 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유통업계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다른 내수주가 조금씩 반전 기미를 찾고 있을 때도 유통주만은 지지부진한 모습이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월 30일 현재 유통업종지수는 연초 대비 2.38% 하락했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증권업도 같은 기간 3.01% 오른 마당에 유통주는 연초부터 죽을 쑤고 있다. 영업규제가 이어지는 데다 납품 비리도 터져 나와 가뜩이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 여파로 삼중고에 시달리는 것이다.

    유통업계 내에서는 5월 가정의 달 특수가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 목소리가 크다. 업계 특성상 시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른바 대목을 놓치면 연간 매출에 악영향을 받는다. 특히 올해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황금연휴도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여 유통업계 시름이 더욱 깊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설 수도 없어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에 직격타를 맞은 것은 여행, 관광업계도 마찬가지다. 5월 성수기와 황금연휴를 앞두고 관광객 특수를 기대했지만 학교, 기관, 기업, 일반 단체의 단체여행이 줄줄이 취소되며 후폭풍을 맞았다. 사고 이후 수학여행과 체험학습, 공무원 연수 등은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다.

    한국여행업협회(KATA) 조사에 따르면, 수학여행을 포함한 국내여행은 44개 여행사에서 860개 단체, 10만9872명이 취소했다. 인바운드 부문(한국으로 오는 관광객을 상대)은 120개 여행사에서 122단체, 1379명이 취소했으며 아웃바운드 부문(외국으로 나가는 관광객을 상대)은 37개 여행사에서 132단체, 4800명이 여행 계획을 접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각 지역협회를 통해 조사한 결과, 학생과 공무원 등의 단체여행 취소율이 50%를 넘어섰다. 제주, 진도, 목포, 거문도, 홍도, 울릉도 등으로 가거나 이곳을 경유하는 여행, 공무원 연수여행은 대부분 취소됐다. 전라도 지역 여행 취소율은 60%를 넘었다.

    여행 예약 취소 증가는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취소 자체에서 오는 손해도 그렇지만, 그 자리를 메우는 신규 모객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여행 수요 자체가 줄어든 데다 단체 고객을 단기간에 모으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취소 수수료를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도 문제다. 특히 일선 학교의 수학여행 취소는 업계와 교육기관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부는 위약금 분쟁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중재하거나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잘 해결되지 않을 경우 자칫 학부모가 부담을 떠안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관광업계가 가장 큰 타격

    세월호 충격 지갑 닫는 소비자들

    4월 18일 금요일 밤 경기 안산시 지하철 중앙역 인근 상업 지역. 평상시 이곳은 인파로 붐볐지만 세월호 사고 여파로 인적이 뚝 끊긴 거리를 네온사인만이 밝히고 있다(위). 주말인 4월 26일 식당과 술집이 몰려 있는 서울 종로구 일대 거리는 손님이 줄어 한적한 분위기였다.

    여행사뿐 아니라 전세버스 사업자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충북 지역 한 전세버스 회사 사장은 “수학여행에다 봄철 체험학습까지 취소되면서 우리 업체만 200대 예약이 취소됐다”며 “1대에 50만 원이라고 하면 총 1억 원 정도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한창 일할 성수기에 사고가 나서 업계 전체가 갑작스럽게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며 “국가적으로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 어렵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고 하소연했다.

    세월호 참사로 선박 여행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크루즈나 선박 여행객도 급감하고 있다. 이는 세월호 같은 해수면 여객선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전한 내수면 유람선도 마찬가지다. 주말 이용 고객의 경우, 해수면과 내수면 모두 이용객이 50% 정도 감소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관광업계의 관련 피해 점검 및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4월 30일 현재) 대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관계부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확정 및 시행 시기를 확언하긴 어렵지만, 조만간 확정 지어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과거 비슷한 사례들처럼 관광개발기금을 통해 저금리로 특별 융자를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5월 1∼11일 첫 시행하는 ‘2014 관광주간’ 행사도 최대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2월 3일 제2차 관광 진흥 확대회의를 통해 나온 2014 관광주간은 국내 관광 수요 창출 방안으로 추진돼왔다. 할인행사나 특별 프로그램은 예정대로 진행하지만, 사회적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 축제와 공연 같은 행사는 되도록 자제하기로 했다. 환대 캠페인과 부처 장·차관 춘계 휴가는 아예 취소됐다. 2014 관광주간에 개최할 예정이던 ‘한국관광의 별 시상식’은 연기됐다.

    급작스러운 관광 침체는 여행사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하나투어와 롯데관광개발, 모두투어 등 3사 주가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급락세를 보였다. 사고 당일인 4월 16일 대비 30일 현재 종가 기준으로 모두투어는 6.88%, 하나투어는 6.36%, 롯데관광개발은 1.58% 떨어졌다. 이번 사고로 국내여행이 위축되면서 이들 여행주의 매출에도 지장이 있으리라는 우려에서다.

    나들이 계절이지만 행락객도 크게 감소했다. 4월 19~20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나들이객은 전주(12~13일) 대비 37.4% 급감했고 롯데월드도 10% 이상,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은 14.6% 감소했다. 나들이가 줄면서 고속도로 이용자도 20%가량 감소해 대체적으로 원활한 교통 상황을 보였다.

    영세업체나 자영업자가 느끼는 내수 위축의 체감 폭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오피스 밀집 지역에 있는 식당들은 각 기업이 회식을 자제하는 분위기라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서울 충정로의 한 식당 사장은 “인원이 많은 단체회식이 크게 줄어든 반면, 혼자 와서 밥만 먹고 가는 손님이 늘었다. 주류 판매가 줄어든 탓에 전체 매출은 세월호 참사 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로 애도 분위기가 확산하는 만큼 단기적으로 소비 지출, 서비스업 등 내수경기가 위축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심리 등 경제심리지표도 하락해 민간소비와 서비스업 활동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론 회복 전망

    세월호 충격 지갑 닫는 소비자들

    5월 황금연휴를 앞둔 4월 27일 인천국제공항의 모 항공사 출국 수속 카운터가 썰렁하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사고로 소비심리 위축 현상이 지속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과 달리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그 영향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종수 토러스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소비심리가 좋지 않으니 향후 전망도 나쁘게 보는 듯하지만, 과거에도 대형사건, 사고가 민간소비 등 내수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6월) 이후 경제심리는 지속적으로 악화했으나, 곧 소매 판매가 증가세를 나타냈고 수출 호조가 지속되는 등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애도 기간이 길어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이 점차 약화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또 다른 배경은 현재 상황 자체가 저소득에 의한 소비 위축 때문이 아니라, 소비할 상황이 아닌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즉 소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미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내수 위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국가적 추모 기간이 지나면 소비심리는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지출도 이미 연간 예산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2분기에는 나타나지 않더라도 하반기에는 다시 집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경기가 순환적 관점에서 상승 국면에 있다는 점도 배경이 된다. 내수가 단기적으로 얼어붙더라도 수출 호조가 경기 악화를 막아준다는 의미다. 김종수 이코노미스트는 “올 하반기는 수출이 끌고 내수가 따라가는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책적으로 경제 혁신 및 내수 활성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내수경기 침체가 장기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주요 해외 투자은행이 내놓은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도 나쁘지 않다. 씨티그룹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3.9%, 내년 4.0%로 각각 0.2%p, 0.1%p씩 올렸으며 크레디트스위스도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3.3%에서 3.5%로, 내년은 3.6%에서 3.7%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다만 골드먼삭스 등 일부 투자은행이 중국의 경기 둔화와 원화 강세, 세월호 참사 등으로 수출과 내수 회복세가 둔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 부분은 눈여겨볼 점이다.

    3·11 일본 도호쿠 대지진과 내수

    ‘자숙 무드’에 4월 특수 실종…7월부터 반등


    2011년 3월 11일 규모 9.0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 지역을 덮쳤다. 공식 사망자 수는 1만5884명, 이 중 2633명은 아직도 행방불명 상태다. 이후 일본 열도에는 ‘자숙과 절약’ 분위기가 형성됐다.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에 따른 직접적인 산업 피해도 크지만, 당시 일시적으로 위축된 소비 역시 일본 경제에 적잖은 타격을 줬다.

    3월에는 식료품, 안전용품 등의 사재기로 소비가 늘었다. 하지만 이후 소비 의욕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한국이 5월 가정의 달에 소비가 급증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4월 벚꽃놀이 관광철에 진입하면서 소비가 크게 늘어난다. 그러나 2011년에는 대지진으로 이른바 ‘자숙 무드’가 일본 국민 사이에 퍼지면서 4월 특수를 놓쳤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업종은 자동차다. 부품 공급 중단으로 3월 한 달 50만 대나 생산 차질을 빚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판매까지 줄었다. 2011년 3월 일본 국내의 신차 판매는 27만9000여 대로 전년 동월보다 37% 줄었다. 1968년 이후 최저 기록이었다. 당시 도요타자동차는 전년 동월 대비 45.9%나 감소한 11만여 대 판매에 그쳤다. 닛산, 혼다 등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관광업도 위기에 몰렸다. 도쿄 시내 최대 호텔인 프린스 호텔의 경우 외국인 예약의 90%가 취소됐다. 유명 특급호텔인 데이코쿠(帝國) 호텔도 평소 숙박객의 40%를 차지하는 외국인의 절반이 대지진 이후 예약을 취소했다. 골프장과 백화점 매출도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자숙 분위기는 2011년 6월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점차 사회가 정상화하면서 7월에는 백화점 귀금속 매장의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자숙 무드에 대한 반동 움직임을 보이며 고가품 소비가 늘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