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4

2017.06.28

와인 for you

실수로 태어난 명작, 미국을 사로잡다

켄달 잭슨의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7-06-28 11:32:06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버럭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와인을 좋아해 1000병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와인셀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와인은 무엇일까. 바로 켄달 잭슨(Kendall-Jackson)의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Vintner’s Reserve Chardonnay)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도 켄달 잭슨 와인 팬이어서 공연 대기실엔 늘 켄달 잭슨 화이트 와인이 준비돼 있다고 한다. 유명 인사들이 좋아하는 와인이니 가격이 궁금해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와인은 미국 슈퍼마켓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중저가 와인이다.



    켄달 잭슨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와이너리다. 1974년 변호사 제스 잭슨(Jess Jackson)은 땅 32만m² 를 사들여 샤르도네 포도를 심었다. 그는 수확한 포도를 인근 와이너리에 팔았는데 82년 갑자기 포도값이 폭락했다. 애써 기른 포도를 헐값에 파느니 직접 와인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잭슨은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이때 그의 나이 52세였다.

    1980년대 초 미국 와인은 고급이거나 질 나쁜 싸구려였다. 당시에는 단일 밭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어야 고급 와인이라는 통념이 강했다. 프랑스 와인을 모델로 삼다 보니 테루아르(terroir·토양과 환경)가 주는 맛과 향을 지나치게 중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급 와인은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고,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와인은 부족했다. 시장의 빈틈을 공략하기로 한 잭슨은 중산층이 즐길 만한 와인을 만들고자 테루아르에서 과감히 벗어났다.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농장들과 계약을 맺었고, 매입한 포도를 섞어 와인을 만들었다. 포도를 직접 기르는 비용을 줄여 가격은 낮추되 우수한 포도로 맛있는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험 부족 때문인지 양조탱크 가운데 하나가 발효에 실패했다. 해결할 방법이 없자 잭슨은 이 와인을 정상 발효된 것과섞었다. 발효 안 된 와인이 조금 혼합되자 와인에서는 단맛이 살짝 돌고 과일향도 훨씬 풍부해졌다. 일반 소비자의 입맛에 딱 맞는 와인이 만들어진 것. 이렇게 탄생한 그의 첫 와인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 1982년산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이듬해 미국 와인대회에서 샤르도네 와인으로는 최초로 플래티넘상을 수상했다. 실수가 가져다준 달콤한 성공이었다.





    켄달 잭슨은 이제 빈트너스 리저브 시리즈로 샤르도네 외에도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등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포도밭을 꾸준히 사들여 2004년부터는 자사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들고, 프랑스산 오크를 수입해 오크통도 직접 제작한다. 중저가 와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품질관리다.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와인이자 22년간 미국 레스토랑 판매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것도 이처럼 이익을 아낌없이 재투자한 결과일 테다.

    2011년 잭슨이 81세를 일기로 사망한 뒤 지금은 그의 아내와 2세들이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다. 켄달 잭슨은 요즘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운영하는 데 힘쓰고 있다. 좋은 와인을 더 오래 생산하기 위해서다.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 한 잔을 시원하게 즐기며 미국 와인의 건강한 미래를 기대해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