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4

..

달리가 그린 프로이트

초현실주의 견해 어긋난 두 거장의 만남

  • 전원경 문화정책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4-04-21 10:2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달리가 그린 프로이트

    ‘달리가 그린 프로이트 초상’, 종이에 목탄, 1938, 영국 런던 프로이트 박물관 소장.

    1938년 7월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89)는 머물던 프랑스 파리를 떠나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그해 6월 오스트리아 빈을 떠나 런던으로 망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미 82세 노령인 데다 구강암을 앓던 프로이트가 고향 빈을 떠난 이유는 나치스의 위협 때문이었다. 뛰어난 재능에 관대한 영국인은 병든 노학자를 열렬히 환영했다. ‘망측한 학문’을 한다고 평생 빈에서 멸시와 모욕을 받았던 프로이트는 삽시간에 런던 유명 인사가 됐다.

    프로이트를 흠모하던 달리는 프로이트의 친구이자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프로이트와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에게 “우리 시대 유일한 천재 화가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마침내 7월 19일 런던 엘스워시에 있는 프로이트 집의 서재에서 두 사람은 첫 대면을 가졌다.

    그러나 달리는 이 만남에 너무 큰 기대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달리는 영어도, 독일어도 할 줄 몰랐고 프로이트는 거의 귀가 먹은 상태였다. 달리는 자신이 최근에 읽은, 프로이트가 편집증에 대해 쓴 글을 이야기했지만 프로이트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말뜻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지 가만히 앉아 달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당황한 달리의 음성은 점점 크고 빨라졌다. 장황하고 날카로운 음성으로 떠들어대는 달리를 응시하던 프로이트는 옆에 앉아 있던 츠바이크에게 벼락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살다가 이렇게 완벽한 스페인 사람의 전형은 처음 보네!”

    이보다 더 좋지 않았던 것은 초현실주의에 대한 달리와 프로이트의 견해가 완벽하게 어긋났다는 점이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달리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뭔가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달리의 그림, 예를 들어 시계가 늘어지고 전화기 위에 바닷가재가 놓인 작품들에 대해 지나치게 지적이고 계획적인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달리의 그림이 무의식의 발현이 아니라, 도리어 화가 의도에 따라 그려진 작품이라고 본 것이다. 달리는 낙담했다. 달리의 회고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평가는 “초현실주의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긴장이 팽팽한 만남이었지만, 달리는 프로이트 얼굴을 스케치할 짧은 시간을 허락받았다. 반쯤 그린 드로잉을 본 프로이트는 츠바이크에게 다시 독일어로 속삭였다. “이자는 미친 게 틀림없어. 스페인 사람이 모두 이런 성격이라면 그 나라가 왜 내전에 휩싸였는지 알 것 같구먼.”



    달리가 목탄으로 그린 프로이트 초상은 현재 런던 프로이트 기념관 층계참에 걸려 있다. 이 초상에 담긴 것은 지치고 완고한 학자 얼굴이다. 굳게 다문 입과 쑥 내민 턱에서 프로이트의 강인하고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프로이트는 이다음 해인 1939년 9월 23일 83세로 사망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