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3

2014.04.14

어학 공부란…오직 외길뿐

50대에 4개 외국어 배우기 은퇴와 휴식 모르고 도전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4-04-14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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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학 공부란…오직 외길뿐

    김원곤 교수가 지난 10여 년간 외국어 공부의 자료로 삼은 책들.

    “교수님, 고생을 사서 하시네요.”

    2011년 봄 그동안 갈고닦은 4개 외국어(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대해 1년 안에 고급 수준의 능력 평가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함께 근무하던 간호사가 무심코 던진 말이다. 당시 그 말을 듣고 나도 덩달아 “정말 그렇지, 괜한 일을 하려고 하는 거지” 하고 웃어넘겼을 만큼 그 약속을 과연 지킬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2010년 출간한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라는 책에서도 구체적으로 밝혔듯, 나는 사회통념상 상당히 늦은 50대(2003년 무렵)에 들어서면서 제2 외국어 공부에 입문했다. 평소 외국어 공부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직업적으로도, 또는 장래 계획 관점에서도 영어 외 외국어를, 그것도 뒤늦게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동기를 찾는다면 2003년 주변 상황과 개인 여건의 변화로 주말에 시간 여유를 조금 갖게 된 점을 들 수 있겠다. 이 여유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는 한 방편으로 일본어 학원에 등록한 것이 결국 오늘날까지 ‘사서 하는 고생’을 지속하게 된 자그마한 출발점이다. 그 후 일본어에 이어 2005년 중국어, 2006년 프랑스어, 2007년 스페인어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다 보니 계속 도전이 이어졌고, 어느덧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마스터나 정복이란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결코 ‘한가롭다’고만은 할 수 없던 직장생활과 개인 일정에 난데없이 4개 외국어 공부까지 추가되면서 그만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물론 젊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는 명분 덕에 큰 보람을 느낄 때도 많았지만, 잠깐의 뿌듯함을 지키려고 쏟아야 했던 적잖은 노력과 고생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외국어 공부와 관련한 내 소문이 조금씩 퍼지면서 주변으로부터 적잖은 오해를 받았다. 과거 학력과 현재 직업 때문에 ‘어학 공부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지레짐작에서 비롯한 잘못된 추측일 따름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언급했듯, 어학 공부에 관한 한 이로운 점보다 불리한 점이 더 많은 사람이다. 발음은 물론, 듣기 부분에서도 평균 이하의 취약점을 갖고 있다. 이는 나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은 이미 공공연히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 같은 세대 사람이 대부분 그렇듯, 지방 중소도시에서 자란 나 역시 대학에 와서야 처음 서양인 얼굴을 봤을 정도로 세계화와는 전혀 거리가 먼 시대를 살았다. 이 때문에 학창 시절에는 그 중요하다는 영어조차 제대로 된 공부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물론 요즘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이런 개인적 배경을 고려할 때 언뜻 무모해 보이는 뒤늦은 어학 공부에서 그나마 이 정도 결과라도 낳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공부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지속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학 공부란…오직 외길뿐
    그런데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를 출간한 후 적잖은 사람이 나를 만나면 “이제 영어까지 5개 외국어를 마스터했으니 다음 목표는 러시아어입니까, 아니면 아랍어입니까” 또는 “앞으로 몇 개 언어를 더 정복하는 것이 목표입니까”라고 묻곤 한다. 이런 선의의 질문이 늘 고맙지만, 그들이 외국어 공부에서 놓치는 중요한 점이 몇 가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먼저 외국어 공부에서는 ‘마스터’ ‘정복’ 같은 단어나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책을 낼 당시 수준이라 해봐야 어떤 언어를 마스터하기는커녕 편하게 구사하는 단계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초보 수준을 면한 정도라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다. 다만 늦은 나이에 백지 상태에서 출발해 4개 외국어를 동시에 공부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했기에, 이 흔치 않은 경험을 주위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에서 책을 출간했을 뿐이다.

    외국어 공부와 등산이 다른 점

    어학 공부란…오직 외길뿐

    자신의 저서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를 머리에 이고 있는 김원곤 교수.

    그다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언어 공부가 일정 단계에 이른 후 그냥 가만있으면 그 수준이 결코 유지되거나 도전을 끝맺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외국어 공부에서 결코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되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외국어 공부가 산을 오르는 행위와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점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보자. 전문 산악인이 히말라야 14좌 같은 고산 등반에 도전할 경우 특별한 순서에 관계없이 산 하나하나에 올라 최종적으로 14좌 등반을 완성하기만 하면 된다. 산악인으로서의 등반 능력이나 등반할 때 감을 유지하려고 평소 다른 방법으로 훈련하기만 하면 될 뿐, 가령 K2나 안나푸르나처럼 이미 한 번 등정한 산을 그 후에도 계속 반복해서 올라야 14좌 중 또 다른 산을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학 공부는 다르다. 한 번 올랐던 똑같은 산, 즉 이미 배우고 기억한 부분들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반복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 공부의 흔적은 사라지고, 이는 그다음 공부를 진행하는 데 결정적 지장을 초래한다. 말하자면 산악인의 과거 등반 기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권위 있고 훌륭한 실적으로 남지만, 어학 공부를 하는 사람의 과거 기록은 현재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한때의 아련한 추억으로 사라질 공산이 큰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어학 공부에는 은퇴도, 휴식도 있을 수 없다. 오로지 한번 시작한 공부를 묵묵히, 끈기 있게 평생 지속하는 외길만 존재할 뿐이다. 2012년 1월 KBS 1TV ‘아침마당’의 첫 목요특강에서 강조했듯 ‘꾸준함으로 일구는 길’만이 해답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여러 외국어를 동시에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어떻게 그 많은 외국어를 하십니까”가 아닌, “그동안 배운 것들을 어떻게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습니까”일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이 연재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자그마한 대답일 뿐이다.

    아무쪼록 환갑을 넘어선 지금 젊은이 틈에서 ‘사서 고생’을 해가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외국어 공부에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을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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