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3

2014.04.14

비 오는 날, 희망을 탓했다

  • 황학주

    입력2014-04-11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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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희망을 탓했다
    비바람에 벚꽃 질 때 어디에서 어디로 가든

    이름을 알 수 없는 죄스러운 희망이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레를 밀며

    비가 들이친 마루를 닦으며



    희망에겐 절망이라는 유일한 선생이

    있는 듯도 하여

    먼 훗날 벚나무 교정을 떠나 살 때도

    벌로 청소를 시키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곤 할까 생각했다

    교실에 남은 나를 잊어버리고 비가 내리던

    하루, 라는 말이 가장자리 없이 춥던 날

    용서를 청하지만 용서받을 사람은 없고

    모든 것을 놔둔 채 나만 탓할 수도 없는

    매 순간 좀체 밝아지지 않는 그런 희망 속에

    매 순간 좀체 어두워지지 않는 그런 희망이 있었다

    먼 길을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시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하루에 몇 초라도 있다면, 그때 비가 들이친 마루를 닦던 걸레 같은 청춘이 간혹 그립다. 이제 곧 벚꽃이 지고 말 것이다. 벚꽃이 내게 보여준 올봄…. 용서하소서, 부질없이 나를 탓하기 전 내가 원망했던 희망에 찬 세상과 사람들이여.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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