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1

2014.03.31

“100년 전 동양평화론 安 의사 통찰력 놀랍습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 일본 학자들 학생들에게 사상 전파

  • 박형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lovesong@donga.com

    입력2014-03-31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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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동양평화론 安 의사 통찰력 놀랍습니다”

    안중근 의사 사상을 연구하는 시게모토 나오토시 류코쿠대 경영학부 교수, 이수임 류코쿠대 경영학부 교수, 가쓰무라 마코토 리쓰메이칸대 정책과학부 교수(왼쪽부터).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 되는 날이었다. 같은 달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안 의사가 주된 화제에 오를 정도로 그는 한국의 영웅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평가는 그 반대다. 일본인은 안 의사를 초대부터 네 차례나 총리를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살해한 인물로 인식한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1월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교토에서 안 의사가 주장한 ‘동양평화론’을 연구하는 일본 학자들이 있어 흥미롭다. 서너 달에 한 번씩 심포지엄을 열며 안 의사의 사상을 전파하는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기자는 2월 18일 교토 후시미(伏見)구에 위치한 류코쿠(龍谷)대 도서관을 찾았다. 일본 연구자 5명이 전시대에 걸린 붓글씨 3점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길이 1.5m, 폭 40cm 한지에는 ‘논어’와 ‘중용’에 나오는 한자 글귀가 적혀 있었다. 도서관 관계자는 “안중근이 직접 쓴 붓글씨”라고 소개했다.

    류코쿠대 도서관 안 의사 유물



    연구자들은 “어떤 식으로 보관하나” “학생들도 열람 신청을 하면 볼 수 있나” 등 질문을 쏟아냈다. 도서관 관계자는 “안 의사가 생전에 남긴 귀중한 자료기 때문에 평상시엔 도서관 중요문서실에 보관한다. 연구자가 사전 신청했을 때만 열람 가능하다. 학생들의 신청은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연구자들은 류코쿠대 사회과학연구소 소속 연구기관인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센터) 학자들이다. 센터는 안 의사를 연구하는 일본 유일의 연구기관으로 지난해 4월 설립됐다.

    설립 계기는 안 의사의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붓글씨)이었다. 시게모토 나오토시(重本直利) 류코쿠대 경영학부 교수와 도즈카 에쓰로(戶塚悅朗) 당시 류코쿠대 법과대학원 교수 등은 2000년대 중반 우연히 도서관 창고에 안 의사가 쓴 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기원을 추적해 오카야마(岡山)현 가사오카(笠岡)시에 있는 조신지에서 1997년 6월 대학에 유묵 3점을 기증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사진자료 85점도 함께 기증했다. 류코쿠대는 일본 최대 불교계 종합대여서 조신지와도 연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조신지는 안 의사의 유묵을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 조신지 14대 주지의 셋째아들인 쓰다 가이준(津田海純)은 안 의사 사형이 집행된 중국 뤼순(旅順)감옥 포교사였다. 쓰다 스님은 종이와 벼루, 붓을 감방 안으로 넣어 안 의사로부터 붓글씨를 받았다. 당시 감옥 간수 등 안 의사의 인품과 사상을 흠모하는 이가 많았다.

    시게모토 교수는 유묵의 기원을 찾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에 흠뻑 빠졌다. 한중일이 으르렁거리는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고 여겼다. 그는 “류코쿠대에 안 의사 유묵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 유묵은 역사적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시게모토 교수는 대학 당국에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연구하겠다”고 신청했다. 자유로운 학풍을 지닌 류코쿠대는 지난해 연구를 승인했다. 일본 최초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연구하는 기관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센터에 소속된 연구자는 16명으로 모두 일본인이다. 시게모토 교수는 사무국장을 맡았다. 대표는 류코쿠대 경영학부 이수임(李洙任) 교수. 이 교수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귀화한 일본인이다.

    두 교수가 주축이 돼 함께 연구할 인물을 모았다. 한일 관계에 대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가쓰무라 마코토(勝村誠) 리쓰메이칸(立命館)대 정책과학부 교수, 위안부 대신 ‘성노예(sex slave)’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국제사회에 호소한 도즈카 교수, 정치철학에 정통한 마키노 에이지(牧野英二) 호세이(法政)대 교수 등이 멤버로 합류했다. 이 교수는 “안 의사 연구에 동참해줄 연구자가 있을지 걱정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지식인이 기꺼이 동참했다”고 말했다.

    “100년 전 동양평화론 安 의사 통찰력 놀랍습니다”

    일본 교토의 류코쿠대에서 보관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3점. 왼쪽부터 불인자불가이구처약(不仁者不可以久處約·어질지 않은 사람은 곤궁에 처했을 때 오래 견디지 못한다·‘논어’), 계신호기소불도(戒愼乎其所不睹·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경계하고 삼간다·‘중용’), 민이호학불치하문(敏而好學不恥下問·민첩하게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논어’)이라 적혀 있다.

    “일본인은 안중근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 살해 인물로 알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 교수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반성하는 지식인이라면 대부분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을 높이 평가한다”고 답했다. 또 “스가 장관은 역사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라고 호칭을 붙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그동안 심포지엄과 공동연구회를 주기적으로 진행해왔다. 기자가 찾은 날은 일부 연구자가 류코쿠대 도서관에서 안 의사 유묵과 자료를 관람하고 토론했다. 연구자들은 사진자료 85점도 하나하나 확인했다. 안 의사가 뤼순 군사법정에 선 사진을 두고선 논의가 한참 이어졌다. 민간인인 안 의사가 일반법정이 아닌 군사법정에 서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음 모임 때까지 이유를 더 파악해보기로 했다.

    유묵과 사진자료를 관람한 후 연구자들은 별도 회의실에서 다과를 하며 안 의사에 대해 자유토론을 했다. 기자도 초청받아 토론에 끼었다. 애초 토론 주제는 안 의사의 사상을 어떻게 일본에 전파할지였지만 점차 대화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우경화로 옮겨갔다.

    일본의 우경화 우려 목소리

    가쓰무라 교수는 “여유가 있을 때 반성도 하고 포용도 한다. 그런데 현재 일본에서 여유가 사라지면서 차별과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인종이나 종교에 대한 증오 섞인 발언)가 두드러지게 됐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다른 한 연구자는 “북한 헌법과 자민당의 헌법 개정안을 비교해본 적이 있다. 깜짝 놀랄 만큼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2월 12일 아베 총리가 국회에서 “(정부의) 최고책임자는 내각법제국 장관이 아니라 총리”라고 말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연구자는 “히틀러와 같은 논리다. 총리가 최고책임자니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르라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시게모토 교수는 “‘한국은 엄청난 피를 흘려 민주주의를 얻었다’고 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일본은 그런 역사가 없다. 게다가 아베 정권은 마구 헌법을 고치려 한다”고 우려했다.

    앞서 센터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가 도를 넘어섰다고 보고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을 재평가하자’는 내용의 성명문 초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회성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뜻을 모아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다.

    센터는 향후 2가지 목표를 정했다. 안 의사의 유묵을 365일 전시하고,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을 학생들에게 정식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안 의사가 동양평화를 주장한 게 약 100년 전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제언이라고 보면 그의 통찰력에 놀라게 된다”면서 “그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알리는 게 연구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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