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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화와 언어 넘어선 소통 난, 스타가 아닌 배우일 뿐”

피렌체 한국영화제 공로상 수상 최민식

“문화와 언어 넘어선 소통 난, 스타가 아닌 배우일 뿐”

“문화와 언어 넘어선 소통 난, 스타가 아닌 배우일 뿐”

배우 최민식 씨가 이탈리아에서 열린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 리카르도 젤리 집행위원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고 있다.

‘한국의 배우’ 최민식이 이탈리아 피렌체 한국영화제 특별전을 통해 현지 관객들을 만났다. 한국 영화에서 강렬하고 잔인한 배역을 도맡아 연기해온 최민식과 유럽 르네상스 문화의 본거지 피렌체. 얼핏 보기에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영화란 매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일까.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민식은 까다로운 이탈리아 기자들을 특유의 카리스마와 유머로 매료시키더니 ‘올드보이’ 상영 후 공로상을 받는 자리에서는 감정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최민식에게 피렌체 관객들은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서로 소통하고 감동하는 순간이었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피렌체 한국영화제는 피렌체 문화 캘린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행사다. 매년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과를 낸 작품과 화제를 모은 독립영화 등을 조명하고, 배우나 감독 특별전을 연다. 2012년 송강호 특별전, 지난해 전도연 특별전에 이어 올해는 최민식 특별전이 열렸다. 또 장르 특별전을 통해 특정 장르의 영화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지난해에는 한국 에로영화 특별전이 있었고, 올해는 ‘설국열차’ 등을 통해 인기몰이를 하는 판타지 장르 특별전이 기획됐다.

피렌체 한국영화제의 한 가지 특이점은 우리 정부가 기획, 창립한 영화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리카르도 젤리라는 이탈리아인 그래픽 디자이너와 피렌체에서 가방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한국인 장은영 씨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한 행사다. 젤리 위원장과 장 부위원장은 12년째 생업을 유지하면서 영화제도 운영하고 있다. 말 그대로 뜨거운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장 부위원장은 “우리 둘 다 앞뒤 가리지 않고 뭐에 꽂히면 바로 돌진하는 성격이라 시작한 것”이라면서 “처음엔 대사관이나 문화원의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웠지만 이젠 지원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는 “영화제를 마치면 과연 내년에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도 덧붙였다.

관객들 한국 영화에 뜨거운 열정

“문화와 언어 넘어선 소통 난, 스타가 아닌 배우일 뿐”

영화 ‘올드보이’를 상영한 이탈리아 피렌체 오데온 극장 전경.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영화와 관련 없는 다른 직업을 가졌다니 혹시 영화제가 무질서하거나 기획력이 부족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는 기우였다. 올해 피렌체 한국영화제를 처음 방문한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이렇게 평가했다.

“규모는 작지만 배울 점이 많다. 운영진의 열정, 피렌체가 가진 관광자원, 그리고 현지 관객의 수준 높은 관람 문화가 어우러진 아주 멋진 영화제다. 우리 정부의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여타 해외 한국영화제와 다른, 이곳만의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는 행사 개막 전부터 느껴졌다. 영화제 상영관인 유서 깊은 오데온 극장 근처에서는 이탈리아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기자의 귀에도 ‘최민식’ ‘올드보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렸다. 개막작 ‘숨바꼭질’을 연출한, 우리에게도 다소 생소한 허정 감독의 이름도 종종 들릴 만큼 이곳 관객들의 한국 영화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다음은 ‘올드보이’ 상영 전 최민식과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 피렌체는 초행이라고 들었다. 느낌이 어떤가.

“인위적이지 않고 낡으면 낡은 대로 방치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무질서하거나 지저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지닌 도시다. ‘이래서 이탈리아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 공로상을 받은 기분이 어떤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상을 받기엔 나는 아직 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나는 내 작업을 했을 뿐인데 이런 상은 과찬 같다. 하지만 이탈리아 관객이 주는 상이라 정말 좋다.”

▼ ‘올드보이’ 덕에 해외에서는 한국 영화의 얼굴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인기를 실감하는지.

“작품이 우수하지 않았으면 나라는 배우가 돋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개인이 뛰어나다고 되는 게 아니다. 연출자의 의도와 해석, 그리고 스태프와의 협업이 조화를 이룰 때 배우가 돋보인다. 모두 좋은 작품을 만난 덕이다.”

▼ 촬영하기 어려웠던 장면은 없나.

“낙지 장면이 떠오른다. 원래 시나리오엔 낙지를 젓가락으로 먹는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15년간 감금생활을 한 오대수의 야수성을 보여주려면 낙지를 생으로 통째 먹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독에게 즉석에서 제안했다. 팔에 감기는 낙지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야 한다고 느꼈는데, 낙지가 거의 죽기 일보직전이라 기운이 없더라. 결국 스태프들이 수산시장에 가서 좀 더 싱싱한 낙지를 사왔다. 서양 사람들이 보기엔 징그러웠을 것이다.”

▼ 자신만의 연기 비법이 있나.

“대학에서 연극공부를 했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을 배웠다. 그때부터 연기생활이 시작됐다. 영화는 감독 예술이라 생각한다. 연출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사소한 농담이라도 주고받으면서 교감해야 한다. 연출자가 원하는 느낌은 물론이고 냄새, 맛까지 파악해 현장에 나오는 게 배우 몫이다. 그 작업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 대학에서 연극을 했다고 했는데 연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게는 고향 같은 존재다. 연극을 하면 모든 것이 라이브로 드러난다. 도망갈 구석이 없다. 그만큼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

▼ 해외 영화제를 취재하다 보면 대배우든 신인이든, 규모가 큰 영화제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최민식 씨는 칸영화제 같은 큰 영화제뿐 아니라 이번 영화제나 런던 한국영화제 같은 소규모 영화제에도 참석하는 것 같다.

“칸영화제는 물론 화려하고 좋다. 하지만 이런 작은 영화제가 밀도는 더 높다. 관객과 가까이에서 영화에 대해 논할 수 있어 보람 있고 더 많은 걸 얻어간다. 이런 소규모 해외 영화제에서 관객과 소통하면 국내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낀다. 문화와 언어를 넘어선 소통이랄까. 그것이 소규모 영화제가 가진 매력이다.”

“문화와 언어 넘어선 소통 난, 스타가 아닌 배우일 뿐”
뤼크 베송 감독과 호흡

▼ 뤼크 베송 감독 영화 ‘루시’에 출연했다고 들었다. 이탈리아 언론도 이 작품에 관심이 많던데 어떻게 출연을 결정하게 됐나.

“지난해 영화 ‘명량’ 촬영을 끝내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베송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후 그가 한국에 왔고 4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지 북을 보여주고 내가 왜 필요한지 설명하더라. 이미 확실한 밑그림을 구상해놓은 상태였다. 왜 나를 원하는지,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확고한 모습이었다. 나는 거의 듣기만 했다. 그의 초기작 ‘그랑블루’와 ‘레옹’ 등에 호감을 갖고 있던 터라 관심이 갔다. 영화 스토리에도 관심이 생겼고. 처음엔 호기심에서 출발했는데 차츰 그의 진정성에 매력을 느꼈다. ‘배우라는 한길을 가다 보니 이런 감독과 일할 기회도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감동적이었고 솔직한 의사표현 방식이 좋았다. 그와의 작업은 어떨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감독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출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 ‘루시’ 촬영 현장은 어땠나.

“영화 현장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단지 한국 현장은 감독 생각에 따라 유동성이 있는 반면, 할리우드 시스템은 유동성이 없다는 점, 즉 흐트러짐이 없다는 점이 달랐다. 아마 사전 작업을 철저히 해서 그럴 것이다. 그 밖에 스태프들이 영화에 임하는 자세나 열정은 한국이나 할리우드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스태프를 소개받기 전 그들의 옷차림만 보고 조명 담당인지 사운드 담당인지 알아맞힐 수 있었을 정도로 두 나라 현장은 비슷했다.”

▼ ‘루시’는 어떤 영화인가.

“인간은 살면서 뇌의 10%만 활용한다고 한다. 만약 인간이 뇌를 100% 활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공식적인 홍보활동이 시작되지 않아 말을 아껴야 한다. 이해해달라.”

▼ 영화제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그들의 고향에 대해 묻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민식은 배우인가 스타인가. 후배들이 스타 의식에 젖은 모습을 보면 어떤가.

“스타를 ‘스스로 타락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나(웃음). 후배들에게는 어떤 자세를 강요할 수 없다. 협업 개념을 아직 모르는 젊은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젊은 거 아닌가. 대세는 한때뿐일 수도 있는데, 아직 그런 걸 모를 수 있는 나이다. 그러니 젊음이 완벽하지 못한 거라고들 하지. 그런 이들에게 윽박지르는 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선배가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 출연한 영화가 개봉하면 관객들이 상영관을 나오기 전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반응을 엿듣는다던데 이곳에서도 그럴 계획인가.

“그렇지 않아도 답사차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 관객은 이탈리아어를 쓰지 않나. 통역을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기선 그건 안 해야겠다(웃음).”

최민식은 인터뷰를 마친 뒤 ‘올드보이’ 상영관 2층 한구석에 서서 자신이 10년 전 출연한 영화를 관람했고, 이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많은 관객과 소통했다. 관객들의 열정은 최민식이 상영관에 나타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1000석의 오데온 극장은 거의 꽉 찼고, ‘올드보이’ 상영 후 그가 무대에 오르자 피렌체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와 박수로 그를 맞았다.

입력 2014-03-31 13:45:00

  • 김네모 미국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 한국특파원 nemo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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