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0

2014.03.24

땅 빼앗기고 탄압 당하고 50년 걸린 소송

  •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4-03-24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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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 빼앗기고 탄압 당하고 50년 걸린 소송

    패션아웃렛 중심지로 변한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의 모습. 최근 법원은 박정희 정부가 이곳에 수출 주도형 공단을 건설하면서 당초 토지주였던 농민들을 강제로 몰아낸 것은 잘못이라며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50년 전 제기된 민사소송 항소심 판결이 2월 20일 나왔다는 뉴스가 있었다. 26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서울 구로동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은 국가가 이들에게 지체 이자를 포함해 110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 토지는 본래 농민 소유였다고 한다. 1942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육군성이 강탈했는데, 50년 농지개혁법이 제정된 뒤 본래 주인인 농민에게 분배됐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가 들어선 61년 이 지역 약 100만㎡(30여만 평) 토지에 수출공단을 조성하면서 공권력을 동원해 농민을 몰아냈다.

    이에 1964년 소송이 시작됐다. 농민들은 농지개혁법에 따라 적법하게 분배받은 토지라고 주장하면서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국가는 본래 일본육군성 소유였던 것을 국가가 환수한 것이므로 군용지라는 주장을 폈다. 1심에서 농민들이 승소했지만 2심에서는 농지개혁법 분배 절차를 거쳤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농민들이 패소했고, 상고심인 대법원에서 농민들 손을 들어 사건을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던 1970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가 패소하지 않도록 가능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면서 농민들에 대한 검찰과 중앙정보부의 탄압이 시작됐다. 농민들은 소송 사기 또는 위증 등의 혐의를 받고 “소송 포기할래, 감옥 갈래”식의 협박을 받아 대부분 승소 중이던 소송을 취하했다. 끝까지 소송을 진행하던 41명은 형사재판에 넘겨져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을 근거로 농민들의 승소로 확정된 일부 민사재판은 국가가 재심을 거쳐 승소판결까지 받아냈다.

    농민들의 억울함은 28년이 흐른 뒤인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짐으로써 형사 재심을 통해 구제됐다. 형사 재심 판결을 기초로 죽어있던 민사소송도 30여 년 만에 되살아났다.



    농민들의 승소로 확정됐다가 국가의 재심청구로 패소한 판결은 2010년 재재심을 통해 다시 농민들 승소로 확정됐다. 일부 파기환송심에서 농민들의 패소로 확정된 판결은 지난해 고등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변경했으며, 2월 말 앞서 언급한 291명에 대한 1100억 원의 권리구제가 이뤄졌다.

    그런데 2월 판결의 재판 재개 과정은 좀 특이하다. 이들이 협박받아 파기환송심에 제출한 소취하 행위를 국가의 강압에 의한 무효 행위로 판단하고, 아직 소송이 종결되지 않아 30여 년 만에 변론이 속개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들이 돌려달라는 땅은 일부 국유지를 제외하면 이미 1999년 농지법에 따라 타인 소유로 확정됐다. 그래서 돈으로 배상하라는 판결이 난 것이다. 그 가치는 99년 당시 토지 시가에 99년부터 연 5%의 지체 이자를 더한 금액이다.

    경제 성장 뒤안길에는 이렇듯 희생을 치른 개인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정이 어렵던 1960년대 국가가 이들로부터 성장동력을 차용했다가 이만큼 성장한 지금 갚는 것이라 생각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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