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0

2014.03.24

알록달록 양말 아저씨에게 즉각 許하라!

양말의 급부상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03-24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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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록달록 양말 아저씨에게 즉각 許하라!

    슈트가 타이트해지고 바지 길이가 짧아지면서 알록달록한 양말로 패션 센스를 뽐내는 남성이 많아지고 있다.

    명품 백, 명품 슈트, 명품 구두는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상당수 사람에겐 사치다. 에르메스 버킨백은 1000만 원대로 웬만한 국산 자동차 값을 호가하지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몇 년씩 기다려야 살 수 있는 물건이다. 심지어 요즘은 그 명단이 너무 길어 더는 대기조차 받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이가 탐을 내는지 알 만하다. 샤넬 백도 그렇다. 매년 가격이 오르다시피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로망 1순위다. 샤넬 백 앞에선 루이비통이나 프라다 핸드백은 아주 대중적인 백이 돼버린다.

    시커먼 색깔뿐? 하체 포인트

    남자도 브리오니, 키톤 같은 최소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대를 호가하는 이탈리아 수제 명품 슈트나, 그보단 좀 싼(?) 아르마니, 제냐, 보스 등의 슈트(역시 좀 괜찮다 싶으면 수백만 원은 한다)를 탐낸다. 구두도 그렇다. 토즈나 발리, 페라가모 등 익숙한 명품 브랜드 구두는 웬만한 한국 직장인이라면 하나씩 가졌을 만큼 흔해졌다. 이런 물건이 자신을 만족시키기도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좀 다른 걸 바라보고자 한다. 우리가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패션. 사치해도 그리 큰 사치가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사치의 대표 종목. 바로 양말이다.

    아저씨 양말은 그냥 시커먼 색깔이기만 하면 됐다. 특별한 디자인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어두운 거면 충분하다 여겼다. 일부러 양말을 사려고 쇼핑을 가지도 않았다. 다른 걸 사러갔다가 우연히 양말도 사거나, 명절 때 선물받는 개성 없는 소모품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만 해도 정장과 검정 구두에 흰 양말을 신는 남자가 꽤 있었다. 그래서 정장에 흰 양말을 피해야 한다는 금기가 생겨나기까지 했다. 아직도 한여름철 샌들에 흰 양말을 신는 패션 테러리스트 아저씨가 종종 보이는 걸 보면 흰 양말에 대한 남자의 미련이나 집착은 꽤 오랜 역사를 유지하는 듯하다.



    사실 이건 양말에 대한 무신경이기도 하다. 패션에서 양말은 그동안 엑스트라 같은 구실을 했다. 그냥 신발 안에 감춰지고, 바지 아래로 숨겨지는 그런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당당하게 커밍아웃한다. 도도한 자태로 패션의 새로운 포인트로 등극할 기세다. 남자 패션에서 넥타이나 손수건, 스카프가 상체 포인트라면, 양말은 하체 포인트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양말의 급부상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남자 슈트가 타이트해졌기 때문이다. 품이 넉넉한 양복을 입으면 그냥 아저씨 느낌이 난다. 스스로 아저씨라 불리길 원하는 4050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30대는 스스로를 아저씨라 생각지 않을 나이고, 40대도 오빠로 불리길 바라며 패션에 신경 쓰고 파마도 한다. 심지어 50대조차 청춘이길 꿈꾸는 시대 아닌가. 그러니 타이트한 슈트, 타이트한 셔츠를 입는 건 모든 남자가 바라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트한 슈트는 배가 많이 나오면 입기 힘들다. 조금 나온 배는 어떻게든 패션이 커버해준다. 하지만 아저씨 배는 곤란하다. 그래서 젊어지려는 남자는 뱃살 관리부터 시작한다. 타이트한 셔츠와 슈트를 입으려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걸 입어줘야 아저씨 소리를 덜 듣는다.

    알록달록 양말 아저씨에게 즉각 許하라!
    당당하게 소화시키는 태도

    슈트가 타이트해지면 바지통도 당연히 좁아지고 길이도 짧아진다. 과거 구두를 푹 덮던 바지가 구두를 잘 보이게 하는 길이로 바뀐다. 이때 가장 영향을 받는 게 바로 양말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양말이 슬쩍 보일 수 있는 길이인 데다 앉아 있으면 바지 끝이 올라가면서 훨씬 더 잘 보인다. 슈트와 구두에만 힘을 줬던 남자들이 양말을 패션의 주요 포인트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타이트한 바지를 먼저 받아들인 10, 20대에게 패션양말이 이미 자리 잡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남자 양말의 대표 브랜드 가운데 하나는 폴스미스다. 특유의 줄무늬 양말은 가격이 보통 몇만 원 선인데, 양말 값 치곤 좀 비싸긴 하다. 물론 세일 때 맞춰 사면 1만 원 정도로 구매할 수도 있다. 폴스미스에선 눈 색깔이 서로 다른 고양이의 ‘오드 아이’에 빗대 ‘오드 삭스’라는 짝짝이 양말도 판다. 양말 두 짝의 기본 톤은 비슷하지만 디자인이 살짝 다르다. 다르지만 충분히 조화를 이뤄 우리가 알던 짝짝이 양말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아침에 허둥대다 양말짝을 잘못 찾은 사람에게 짝짝이 양말은 부주의나 덜렁거림, 실수라는 이미지를 부여했지만 이젠 그것이 오히려 개성을 드러내는 시대다. 나도 오드 삭스를 가끔 신는데, 굳이 이 제품을 사지 않아도 컬러와 디자인이 서로 어울리도록 잘 골라 두 켤레를 사면 총 3가지 양말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행스러운 건 요즘은 저렴한 양말 중에도 컬러와 디자인이 예쁜 게 꽤 있다는 거다. 안목만 있으면 몇만 원짜리 양말 부럽지 않다.

    물론 차이가 좀 있긴 하다. 멀리서는 비슷해 보여도 본인은 눈으로, 그리고 발 촉감으로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러니 좀 비싼 양말을 하나 갖고 있다 가끔 특별한 날에 신어보면 어떨까.

    나는 특별한 날 신는 양말과 속옷을 따로 정해뒀다.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나 아주 중요한 강연이 있는 날 꼭 챙겨 입는다. 가장 가까이서 나를 지켜주는 것들이라 더욱 챙기게 된다. 자기를 위한 만족, 이게 작은 사치의 가장 핵심 아니던가.

    물론 아무리 멋지고 예쁜 양말이라도 짝을 맞출 수 없는 신발이 있다. 샌들은 당연한 거고, 끈 없는 신발 로퍼(loafer)도 양말 없이 신어야 더 멋지다. 로퍼는 게으름뱅이를 위한 신발이다. 어원도 게으름이다. 끈을 묶을 것 없이 그냥 맨발에 편하게 신거나 심지어 구겨 신어도 멋진 게 로퍼 아닌가.

    하여간 양말이든 신발이든, 브랜드나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자신에게 잘 어울리고, 또 자신이 그걸 얼마나 당당하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하다. 당당함과 도도함은 패션을 소화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다. 이 봄 당신의 패션에 작은 사치를 더해보자. 양말이 당신을 더 도도하게 만들도록, 당신 발에 화려하고 세련된 양말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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