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0

2014.03.24

주당 92시간 살인적 근무 인술 자부심으로 버틸 수 없어

전공의 반정부 강경 투쟁

  • 조민수 동국대 일산병원 응급의학과·대한전공의협의회 정책이사 superindra85@gmail.com

    입력2014-03-24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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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당 92시간 살인적 근무 인술 자부심으로 버틸 수 없어

    대한의사협회가 하루 전국적인 집단휴진을 강행하기로 한 3월 10일 서울 용산구 이촌로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이 발언하는 동안 전공의들이 경청하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제도 시행을 막으려고 의료계는 대대적인 휴진 투쟁을 했다. 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고, 의료계는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 후 14년 만인 2014년 의료계는 다시 투쟁을 선언했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 때도 그랬듯, 정부가 의료전문가인 의사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채 부작용이 빤히 예상되는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영리 활동 허용을 시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를 막고자 의료계는 대대적인 투쟁을 선언했지만, 정부의 엄단 방침과 휴진이라는 투쟁 방식이 국민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해석, 참여자의 수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등으로 많은 의사가 적극 나서지 못했다.

    졸면서 수술 어시스트 속출

    그러던 중 누구도 주목지 않던 집단이 과감히 투쟁 참가 선언을 해 상황이 반전됐다. 전공의가 전면에 나서면서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던 정부가 대화 손길을 내민 것이다. 전공의가 누구인가. 대학병원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잠에 취한 눈에 떡 진 머리를 하고 피와 오물이 잔뜩 튄 지저분한 가운을 걸치고 다니는 젊은 의사를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전공의다. 전문의가 되는 수련과 교육을 받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살인적인 업무에 치여 사람 몰골을 갖출 시간도 모자란 이 젊은 의사들이 선배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일에 어떻게 뛰어들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대한민국 전공의는 주당 평균 91.8시간을 일한다. 표본을 1년 차 전공의로 한정했을 경우 근무시간은 주당 106.2시간에 이른다(주말을 포함한 일주일은 총 168시간).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당 약 41시간이다. 일반 근로자에 비해 2배 이상 일하는 셈이다.

    법적으로는 주 40시간의 법정 근로시간과 주중 연장근로 12시간, 주말 휴일근로 16시간을 포함해 68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금지됐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는 헛된 꿈일 뿐이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시간은 말 그대로 평균일 뿐이며, 근로 강도가 높은 과 전공의는 그 이상 일하기도 한다. 정규근무가 끝나고 퇴근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오프’를 일주일에 1~2회만 받는다. 사흘 이상 제대로 된 수면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에게 오더를 내리고, 수술실에 들어가 졸면서 수술 어시스트를 서는 것이다. 이렇게 일하는 이들의 연봉은 평균 3000만 원 선이다.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전공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처사다. 인권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의사 직업이 갖는 특성상 피로 누적은 환자 안전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2010년 정맥으로 투여해야 하는 항암제가 척수강 내로 투여돼 사망한 정종현 군 사건처럼, 피로 누적에 의한 전공의의 사고능력 저하는 환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사건은 전공의 자신에게 평생 멍에가 돼 따라다닌다. 과연 이런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전공의 개인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주당 92시간 살인적 근무 인술 자부심으로 버틸 수 없어

    3월 15일 서울 용산구 이촌로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전공의 비상대책 총회에서 송명제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원인을 의사 부족에서 찾는다. 얼핏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의사를 많이 배출하면 자연히 1인당 업무량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요즘 청년실업이 큰 문제가 되는 동시에 중소기업은 오히려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문제다. 청년 수가 모자라 중소기업에서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듯, 의사 수가 모자라 대학병원 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정부는 무작정 의사 사회 내부에서 해결할 일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일관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대학병원 밖에서는 힘들게 전공의 과정을 마친 수많은 전문의가 전공과목만으론 버틸 수 없어 미용이나 성형으로 눈을 돌린다. 보험진료에 대해 국가가 지급하는 보험수가가 원가에 한참 미치지 못하니 보험진료와 관계없는 분야로 자꾸 빠지는 것이다. 다만 앞서 예로 든 중소기업 인력난과 다른 부분을 따져보면, 의료계의 경우 전문의는 전공과목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능력을 바탕으로 병원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만, 병원에서는 낮은 보험수가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이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임금이 싸고 일을 시키기 좋은 전공의 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문의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문의 1명이 사회에 나오기까지 드는 비용과 노력을 생각하면 이는 사회적으로 큰 낭비다.

    너무도 가혹한 전공의 근무체계는 사실 수십 년 전부터 계속 이어져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시기만 버티면 장밋빛 미래가 올 것’이라는 기대로 힘든 수련 시기를 버텼다. 이제는 뒤틀린 의료제도가 만든 현실 때문에 그런 일말의 기대조차 하기 힘들다. ‘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에서 ‘High risk, Low return(고위험, 저수익)’이 돼버렸다. 전문의가 돼도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영리 활동 허용 등 문제 많은 법안까지 막무가내로 시행하려 하는 정부의 일방적 행태가 전공의를 투쟁에 뛰어들게 만든 것이다.

    보험수가 기준 상식적 수준으로 맞춰야

    대안이 없어 수십 년간 악습을 지속해온 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전공의는 법적으로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병원에 상당한 페널티가 가해진다. 또 근무 제한으로 모자라는 인력은 전문의 인력(Hospitalist)으로 대체해 고용 증가 및 의료 질의 상승효과까지 가져오게 한다. 대한민국이라고 이렇게 못 할 이유가 없다. 먼저 방만하게 운영해 줄줄 새는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상식에서 벗어난 보험수가 기준을 최소한의 상식적 수준으로 만들어 병원이 정상적인 진료만으로도 전문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게 하고, 법적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을 제한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무거운 처벌을 하면 위에서 열거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정부는 헛된 주장을 멈추고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 제2 종현 군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정부의 진정 어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공의의 외침은 시간이 갈수록 거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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