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8

2014.03.10

해외직구, 유통 공룡 쓰러뜨렸다

커피부터 전자제품까지 갈수록 확대…가격 거품 제거 소비 장벽 허물어

  •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jkookang@lgeri.com

    입력2014-03-10 0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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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 이른바 ‘블랙 프라이데이’는 파격적인 가격 할인으로 미국 소비자가 쇼핑센터 앞에 장사진을 치는 날이다. 언론에서도 이를 흥미롭게 보도하곤 한다. 그러나 지난해 블랙 프라이데이에 한국 언론이 초점을 맞춘 것은 이국의 쇼핑 풍경이 아닌 국내 소비자의 새로운 소비 행태였다. 이 기간에 한국 소비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외국 할인행사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는 온라인 쇼핑이라는 구매채널과 배송대행업체 같은 유통채널이 결합해 생긴 현상이다.

    지난해 해외직구 10억 달러 넘어서

    이 무렵 구매 신청이 폭주하면서 한 유명 배송대행업체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배송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공지를 띄우며 구매 자제를 권고하기도 했다. 미국 한 물류업체는 대행업체 물류센터로 배송물량이 폭증하자 수송을 지연시키는 해프닝도 벌여야 했다.

    흔히 ‘해외직구’라고 줄여 말하는 해외로부터의 직접구매가 급증하면서 국민 개개인이 수입상이 됐다. 이런 소비 트렌드가 이제 국내 소비재 수입시장 전체를 뒤흔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도 수입물가 안정을 위해 병행수입(같은 상표의 상품을 여러 수입업자가 수입해 판매할 수 있게 한 제도) 확대 정책을 내놓았으며, 대형 유통업체까지 병행수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일반명사가 될 정도로 해외직구가 널리 알려지고 소비자가 해외 할인행사 기간을 적극 활용하면서 해외직구 총액도 엄청난 규모로 커지고 있다. 2001년 1300만 달러로 전체 소비재 수입액의 0.07%에 불과하던 해외직구 금액은 지난해 1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전체 소비재 수입액의 1.8%까지 늘어났다. 2013년 해외직구 금액은 전년도에 비해 111%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프1 참조). 의류나 건강식품 등 배송에 적합한 품목 위주였던 상품도 커피, 초콜릿 같은 기호식품이나 TV 등 전자제품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해외로부터 직접 제품을 구매하는 일은 아마존 같은 해외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존재한다고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 수입 브랜드 매장이 존재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품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구매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초창기 해외직구는 구매자의 직간접 경험이나 브랜드의 신뢰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또 구매를 결정했다 해도 국내로 배송되는 데 제약이 따르는 경우가 많았고, 운송 등 구매 과정에서 파손 위험도 있었다. 구매자의 마음이 바뀌거나 물건이 불량품일 경우 환불 절차를 밟는 것도 불편함이 컸다.

    그러나 전문 배송대행업체가 등장하면서 구매 불확실성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실제로 전자상거래를 통해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특송화물은 배송대행업체가 등장하기 시작한 2009년을 기점으로 매우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몰테일(2009), 아무(2010), 맘스(2010) 같은 배송대행업체가 생기면서 해외 인터넷 쇼핑몰→배송대행업체 물류센터→국내 소비자로 연결되는 구매 체인이 형성된 것이다. 배송대행업체를 매개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 형성과 해외직구 형태의 진화도 급증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제품 구매 경험에 대한 각종 정보가 쌓이면서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일도 쉬워졌다. 예를 들어 몰테일의 커뮤니티(네이버 카페) 회원 수는 4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커뮤니티는 해외직구 방법이나 관세율 계산뿐 아니라 가격 비교, 할인기간 등 구매 시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제품 구매 후기, 환불 경험, 파손 시 대처 요령 등도 공유해 위험 요인을 줄인다. 최근에는 판촉을 목적으로 구매대행이나 다름없는 공동구매 이벤트도 활성화하고 있다.

    사실 해외직구가 빠르게 확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소비시장의 개방도가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 전체로 보면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입 비중을 나타내는 수입의존도는 2012년 기준 49.6%로, 미국(14.0%)이나 일본(12.3%)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러나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소비재 중에서는 수입품의 비중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해외직구, 유통 공룡 쓰러뜨렸다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 충족

    전체 재화 소비 중 수입 소비재의 비중을 통해 소비 개방 정도를 측정해보면, 한국의 소비 개방도는 2000년대 초반 10% 수준에서 꾸준히 상승해 2011년에는 20.6%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4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29번째에 불과하다(그래프2 참조). 전체 수입의존도가 OECD 회원국 가운데 11위를 차지하는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다.

    소비 개방도가 낮으면 국내 시장의 제품 다양성이 부족해 국내외 가격 차가 발생할 공산이 커진다. 국내 소비자로서는 외국 제품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 해외직구가 폭증하는 배경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해외직구 확대의 경제적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소비자 후생을 증대하는 효과가 있다.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다양한 기호를 충족해줄 수 있는 것이다. 내수시장이 커서 제품의 기능과 종류가 다양하다면 소비자는 자기 선호에 최대한 부합하는 제품을 선택해 구매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내수시장 규모가 제한적이라면 불필요한 기능,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반면 해외직구는 국내 소비자가 거대 소비시장에 접근할 수 있어 소비자 행복도가 증대한다.

    국내 시장에 이미 들어와 있는 상품이라면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가격 인하 효과가 있다. 가격 정보를 해외로까지 확대해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함으로써 유통 구조상 발생하는 가격 차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해외직구가 유난히 많이 이뤄지는 분야는 그간 유통 폐쇄성이나 시장 지배력으로 진입 장벽이 높았던 곳이다. 그동안 이 분야의 수입사나 유통사는 독점적 초과이윤을 누렸을 공산이 크다. 직구는 그 초과이윤이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하는 효과가 있다.

    거꾸로 시장 관점에서 보자면 해외직구는 참여자를 전 세계로 확대함으로써 상품 시장을 완전 경쟁 시장에 한층 더 가깝게 만든다. 국내 내수시장의 작은 규모와 높은 진입 장벽은 해외 기업이 국내에 직접 진출하는 것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례로 수백만 원에 달하는 유모차로 화제를 모은 한 외국 유모차 제조업체는 한국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 이유로 내수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만일 이 기업이 국내 시장에 직접 진출해 유모차를 판매했다면 현재 같은 가격이 형성되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수입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이슈가 된 국내 전자제품의 역수입 현상도 있다. 그동안 시장 지배력을 가진 국내 기업들은 국내와 해외에서 차별적인 가격정책을 펴왔는데, 해외직구 이용자들은 가격이 싼 해외에서 국내 전자제품을 구매하곤 한다. 이는 국내 시장의 경쟁 압력을 높이는 구실을 하게 된다.

    결국 해외직구는 해당 제품의 수입 가격 하락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일반 물가 수준을 안정화하는 구실도 한다. 예컨대 과거 일본에서는 화장품을 병행수입하려면 성분증명서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독점 수입업체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이에 따라 외국 화장품은 일본 국내외 가격 차가 큰 대표적인 상품으로 인식돼왔다. 평균 국내외 가격 차가 2배 이상, 고가 화장품은 5배 이상 났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약사법 개정 등을 통해 병행수입이 확대되자, 스킨이나 립스틱 같은 화장품의 일본 국내외 가격 차는 2005년 1.7~1.8배에서 2007년 1.3배까지 줄어들었다.

    해외직구, 유통 공룡 쓰러뜨렸다
    국내 판매가 하락 긍정적 변화

    이렇게 놓고 보면 해외직구 급증세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직구 자체가 스스로 진화하는 데다, 무엇보다 국내 소비시장에 구조적 문제가 여전한 이상 직접구매를 적극 활용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구매 액수나 물품 중량 등 제약이 있어 전체 시장 규모에 미치는 영향에는 분명 한계가 있지만, 소비재 수입시장에 미치는 영향 자체는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부도 병행수입 확대 정책에 팔을 걷어붙였고 국내 대형 유통업체도 병행수입에 나서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그동안 고가 정책을 유지하던 외국 의류 브랜드들이 국내 판매가격을 낮추는 사례가 보도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 조짐이 벌써부터 뚜렷하다.

    정부는 병행수입과 관련해 수입 경로 다변화, 통관 인증 기준 완화, 애프터서비스 강화 등 다양한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문제는 해외직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리스크를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거래하는 배송대행업체는 운송 책임만 진다. 현 추세대로 해외직구가 단기간에 확대된다면 환불이나 교환, 애프터서비스, 정품 여부 논란과 관련한 소비자 피해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가 간 직거래에서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등 소비자 편익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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