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6

2014.02.24

고소득층 지갑 열면…봄 온다

소비 10% 늘리면 일자리 16만8000개 생겨…GDP 증가, 소비 확대 유도 정책 필수

  •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csk01@hri.co.kr

    입력2014-02-24 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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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득층 지갑 열면…봄 온다
    세계 경기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와중에도 한국의 경기 회복은 다소 더디다. 그중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내수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기 짝이 없다. 내수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민간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넘을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효과도 10억 원당 19명으로 단연 독보적이다. 쉽게 말해 국내 소비가 증가하면 제조업과 서비스업 생산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기업 고용과 일자리가 늘어나며, 이는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져 다시 소비가 증가하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 연결고리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게 한국 경기 회복 부진의 원인인 셈이다.

    최근 통계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사실은 소비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밑도는 현상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소비증가율과 소득증가율은 비슷한 추세를 나타내야 하는데, 최근 들어 소득은 상승곡선을 그리는 반면 소비는 둔화세가 지속돼 둘 사이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소비여력’ 증가하는 계층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 원자료 2006~2012년 수치를 들여다보자. 전국 1인 이상 비농가 가구를 소득계층별로 쪼개 살펴보면 2012년 고소득층의 월평균 실질가처분소득은 587만 원으로 저소득층의 66만 원에 비해 9배 이상 높다. 반면 고소득층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323만 원으로 저소득층 90만 원의 3.6배에 불과하다. 돈을 많이 벌어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그래프1 참조).

    고소득층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2006년 538만 원에서 2012년 587만 원으로 연평균 1.5% 증가했다. 중산층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256만 원에서 279만 원으로 연평균 1.5% 증가했다. 반면 저소득층은 69만 원에서 66만 원으로 연평균 0.6% 감소했다. 소득 구성별로 보면 고소득층과 중산층은 근로소득이 가장 많이 늘었고, 중산층은 자영업자의 소득이, 저소득층은 근로소득이 감소했다. 반면 고소득층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은 2006년 310만 원에서 2012년 323만 원으로 증가했으며, 중산층의 소비지출액은 196만 원에서 206만 원으로 늘었다. 저소득층은 91만 원에서 90만 원으로 감소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고소득층과 중산층의 소비가 늘고 저소득층의 소비는 감소한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계층별로 동일한 기준을 통해 소비의 실질적인 결과를 분석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구별 실질가처분소득에서 12개 항목의 필수 소비지출을 제외한 금액(실질가처분소득-소비지출)을 통상 ‘소비여력’이라고 한다. 이를 계층별로 비교해보면 소비 변화의 실제 특징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소득층 지갑 열면…봄 온다

    2013년 12월 26일 본격적인 연말 휴가철을 맞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여행객으로 붐비고 있다.

    고소득층의 소비여력은 2006년 월평균 228만 원에서 2012년 264만 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의 소비여력은 59만 원에서 73만 원으로 증가했고, 저소득층은 월평균 -22만 원에서 -24만 원으로 감소했다. 소비여력이 증가했다는 건 그만큼 소비할 여유가 남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중산층의 소비여력인 월평균 73만 원은 필수 소비지출 외에 지출하는 돈, 예를 들어 노후준비를 위한 저축이나 대출 이자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거의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저소득층 경우엔 소비여력이 이미 월평균 -24만 원을 기록해 추가 소비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고, 오히려 생계유지까지 위협받는 실정이다.

    결국 남은 것은 고소득층뿐이다. 이 계층의 월평균 소비여력 264만 원은 추가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여유가 그만큼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2012년 고소득층 가구의 비중은 18.5%(총 1642만 가구 중 303만 가구)에 불과하지만 소비여력은 55.2%(총 174조 원 중 9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 활성화의 출발점

    고소득층 지갑 열면…봄 온다
    만일 이들이 적극적으로 소비에 나서면 한국 경제에 어떤 효과를 미칠까. 고소득층 가구가 소비여력의 10%를 지금보다 더 많이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2006~2012년 소비지출은 연평균 8.8조 원 늘어난다. 여기에 각 연도 부가가치유발계수와 취업유발계수를 곱해 그해에 추가되는 부가가치 및 취업자 수를 계산할 수 있다.

    결과는 자못 놀랍다. 고소득층이 여윳돈 10%만 추가로 소비해도 신규 일자리는 연간 16만8000명, GDP는 연평균 약 7.2조 원 증가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러한 추가 고용 효과로 같은 기간 고용률은 연평균 59.3%에서 59.7%로 0.4%p 상승할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그래프2 참조).

    이처럼 고소득층 소비가 조금만 늘어나도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침체된 내수 경기를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려면 먼저 이들의 소비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수적인 이유다.

    그와 동시에 소비여력이 미미하거나 부족한 중·저소득층의 소비여력 확충을 위해 소득을 늘리는 정책도 필요하다. 중산층에게 돌아갈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특히 소득이 급감한 자영업자의 여건 개선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소득층의 근로소득을 향상시킬 다양한 눈높이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근로 능력이 아예 없는 이에게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공적 이전소득을 통해 최소한의 생계를 보전해줘야 한다.

    소비는 죄가 아니다. 고소득층이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 이들이 해외관광에 나서는 대신 국내에서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고급 리조트와 골프장 등 수요에 맞는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안 역시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무주택 고소득층의 주택 구매를 유도하고, 이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문화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다양한 문화이벤트와 캠페인을 활성화해 고소득층의 문화 소비지출을 증대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5대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 사업이 새로운 서비스산업의 기반을 만들어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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