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3

2014.01.27

웃음 터지고 눈물 나고…스크린과 마음이 通하니까

차례 지내고 스크린과 신나는 데이트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4-01-27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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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터지고 눈물 나고…스크린과 마음이 通하니까
    대중문화, 특히 흥행작은 당대 대중의 ‘마음 풍경’을 담아내고 그려낸다. 설까지 한 달 반여 동안 상영되며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내는 ‘변호인’이 담아낸 것은 단지 고인이 된 전(前) 대통령이 겪은 사실 일부에 대한 허구적 재현이 아니라 과거 권력에 상처 받고, 여전히 돈과 ‘빽’ 없는 게 억울하며, 살림살이가 팍팍하고, 민주주의가 걱정되는 동시대 대중의 마음 풍경이 아니었을까.

    1년 전 설을 앞둔 꼭 이맘때 흥행한 ‘7번방의 선물’이나 ‘레미제라블’은 또 어땠나. 누구보다 순수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오해받은 아버지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으며, 딸을 위해 장엄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점에서 용구와 장발장의 삶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관객은 이 영화 두 편에서 아버지 세대의 ‘바보처럼 맹목적이던 헌신’을 읽었을 테고, ‘호의를 악의로 되돌려준 사회의 비정함’을 봤을 것이며, ‘그럼에도 자식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숭고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 또한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동시대 관객의 마음 풍경일 것이다.

    올 설 극장가도 각양각색 한국 영화가 관객을 맞는다. 자신의 잃어버린 청춘과 속절없는 나이 듦을 그저 자식의 성공으로 보상받아야 하는 어머니 세대의 표정이 있는가 하면, 가진 것과 이룬 것 없는, 오직 순정 하나뿐인 40대 남자의 쓸쓸한 고백도 있다. 1980년대 고교생과 80년대생이 함께 즐기는 ‘추억의 고교 연애열전’이 있는가 하면, 역사를 기록이 아닌 장르로 체감하는 엔터테인먼트 시대 사극의 풍경이 있고,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2014년 서민 가족의 저녁식사 자리도 있다.

    설 극장가 우리 세대 마음 풍경을 담은 한국 영화를 모았다.

    황동혁 감독 ‘수상한 그녀’



    응답하라! 엄마의 화려한 청춘

    공감 세대 | 엄마가 있거나 엄마가 될 모든 이

    공감 포인트 | 심은경이 부르는 노래 ‘나성에 가면’ ‘하얀 나비’ ‘빗물’

    이런 영화 좋아한다면 | ‘7번방의 선물’ ‘써니’ ‘빅’

    웃음 터지고 눈물 나고…스크린과 마음이 通하니까
    아들을 어렵게 키워 국립대 교수로 만든 70대 노인 ‘오말순’(나문희 분)이 주인공이다. 아이를 임신한 채 남편과 사별한 뒤 제 한 몸 의지할 곳 없는 세상에서 모진 풍파를 다 견디며 수십 년을 살아왔다. 그래선지 드세고 억척스럽기 그지없는 욕쟁이 할머니다. 그래도 잘 키운 아들(성동일 분)이 자랑이다. 심지어 그 아들이 ‘노인문제 전문가’니 편한 말년을 보낼까 했는데 이게 웬걸, 미리 마신 김칫국이었다. 며느리와 갈등 끝에 아들 가족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낙담한다.

    그러던 중 뒤숭숭한 마음으로 밤거리를 헤매다 영정사진이나 찍자고 들어간 ‘청춘사진관’에서 기이한 일을 경험한다. 바로 꽃다운 20대 시절(심은경 분) 외모로 돌아간 것. 젊은 시절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자랑하던 오말순은 젊은 뮤지션인 손주의 데뷔를 도우려고 신분을 감춘 채 보컬리스트로 손주 밴드에 합류, 방송국 오디션에 도전한다. 회춘한 오말순은 노래하고 사랑하면서 모진 세월 자식을 키우느라 잃었던 젊음을 되돌려 받는다.

    ‘수상한 그녀’는 자식 세대를 위해 헌신한 어머니에게 보내는 ‘송가’이자 ‘헌사’다. 무엇보다 20대 외모로 70대 노파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는 심은경의 연기가 놀랍다. 일명 ‘뽀글파마’에 펑퍼짐한 ‘아줌마 의상’ 차림의 심은경은 욕설과 육담이 반인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객석에서 “쟤 스무 살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넉살과 능청이 기가 막히다. 솜털과 아직 아기살이 뽀얀 얼굴로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남자는 말이여,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만 잘하믄 (되야)”이라거나 “하여튼 사내놈은 아랫도리가 문제여. 한 토막도 안 되는 것 때문에 뭐허러 인생을 ·#52059;지나(망치나) 몰러”라고 할 때는 객석이 뒤집어진다. 영락없이 나문희로 빙의한 심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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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새샘트리오가 부른 ‘나성에 가면’, 88년 김정호의 ‘하얀 나비’, 91년 채은옥의 ‘빗물’이 새롭게 편곡돼 밴드 합주와 심은경의 보컬로 담겼다. 50대 이상 부모 세대에겐 추억을, 젊은 세대에겐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멋진 곡들이다.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내세우고 ‘감동 코미디’를 표방했다는 점에선 ‘7번방의 선물’ 흥행공식을 따랐고, 추억의 명곡을 극중 주인공이 직접 부른다는 점에선 ‘써니’를 연상케 하는, 명절용 맞춤 영화다.

    한동욱 감독 ‘남자가 사랑할 때’

    마초에게도 사랑은 있었네

    공감 세대 | 30~50대 남자

    공감 포인트 | 황정민 대사 “눈앞에 아른거리고 자꾸 생각나면 그게 사랑 아니냐.”

    이런 영화 좋아한다면 | ‘너는 내 운명’ ‘1번가의 기적’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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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일’(황정민 분)은 사채업체 부장으로 빚 받는 일이 직업인 남자다. 상대가 누구고 상태가 어떻든 주먹과 협박을 동원해 빚진 돈은 반드시 받아내고야 마는 독한 ‘건달’이자 내일 없는 밑바닥 인생이다. 교도소 들락거리길 집같이 하고, 마흔 넘도록 형 가족에게 얹혀사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자.

    그런 그가 병원에 입원한 중환자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 아버지를 간호하는 ‘호정’(한혜진 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채권을 빌미로 매일같이 병원을 찾아가 별 뜻 없는 독촉을 하지만 호정은 그때마다 싸늘하게 내친다. 그래도 그는 불쑥 병원을 찾아가 먹을거리를 건네고, 채무각서 대신 자신과의 ‘데이트’ 약속으로 빚을 탕감해주는 등 누가 봐도 황당하고 뜬금없으며 서툴기 짝이 없는 구애를 계속한다.

    그러던 중 호정 아버지가 죽고, 태일은 혈혈단신이 된 그녀를 도와 장례식 상주 노릇을 자처해 일을 치른다. 이를 보고 호정은 태일의 진심을 받아들인다. 이후 둘만의 행복한 내일을 꿈꾸지만, 손 씻고 새 출발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탕’을 노리고 나선 도박판에서 태일은 친구에게 배신당해 돈을 모두 빼앗기고 교도소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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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밑바닥 인생 남자가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는 이야기. 이 닳고 닳은 이야기도 황정민이 하면 뭔가 특별해진다. 전작 ‘신세계’에서 “어이, 브라더”를 연발하며 자기 심복을 끔찍이 아끼던 건달 연기로 감탄을 자아낸 황정민은 이번엔 애틋한 로맨스 연기를 덧대 ‘순정마초’의 진한 사랑을 보여준다. 태일은 ‘너는 내 운명’의 처절함과 ‘행복’의 비통함, ‘신세계’의 통속성 그 어디엔가 서 있는 인물이지만 황정민은 한결 성숙하고, 기름기는 뺐지만 여운은 더 짙으며, 감정이 훨씬 깊은 멜로 연기를 보여준다.

    배우 곽도원이 마주치기만 하면 사사건건 타박하고 눈을 부라리지만 마음속으로는 동생을 따뜻하게 품는 형을 맡아 요샛말로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다. 황정민과 곽도원의 대거리는 마치 영화 ‘고령화가족’에서 박해일과 윤제문의 수작을 닮았다.

    황정민과 한혜진, 곽도원 등 배우의 호연에도 다소 빤한 시나리오의 한계와 때로 매끄럽지 못한 전개 및 편집이 아쉬운 작품.

    이연우 감독 ‘피 끓는 청춘’

    1980년대 추억의 풍경

    공감 세대 | 1980년대 고교생, 그리고 이종석과 박보영에 열광하는 1980~90년대생

    공감 포인트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이런 영화 좋아한다면 | ‘품행제로’ ‘말죽거리 잔혹사’ ‘써니’

    웃음 터지고 눈물 나고…스크린과 마음이 通하니까
    대학생은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금서라도 되는 양 은밀히 돌려 읽고, 부산에서 돈 잘 버는 수임료 1위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시대의 양심에 눈떠가던 1980년대 초반, ‘변호인’ 시대 고교생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영화 ‘피 끓는 청춘’은 정확히 ‘써니’에서 흥행공식을 빌려오고, ‘건축학개론’과 ‘응답하라 1994’의 복고열풍에 편승했으며, 이종석과 박보영의 티켓파워에 힘입은 영화다.

    ‘1980년대 마지막 교복 세대’에 바치는 ‘농촌 하이틴 로맨스’를 표방한 이 영화 속 주인공은 82년 충청도에서 고교를 다닌 남녀 학생들이다. ‘써니’가 80년대 중·후반 여고생이었던 중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칠공주파’ 핵심인 나미가 전라도 벌교 출신이었으니 두 영화는 여러모로 닮았다.

    ‘응답하라 1994’에 서태지와 아이들, ‘써니’에 나미의 노래 ‘인디안 인형처럼’이 있었듯, 이 영화에는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있다. 앞선 복고 영화들처럼 스크린에 재현한 당시 시대 풍경은 구석구석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짜장면이 400원이던 시대 나팔바지와 교련복, 롤러스케이트, 맥가이버 칼 등 당시를 나타내는 패션과 소품, 공익광고, 영화포스터가 섬세하게 묘사됐다. 두발자유화(1982)와 교복자율화(1983)를 처음 맞은 학교 분위기도 그려진다.

    뭇 여학생 마음을 녹이는 홍성농고 최고 인기남이자 바람둥이인 ‘중길’(이종석 분). 일대 고교를 완전히 평정한 ‘일진’인 ‘영숙’(박보영 분) 역시 그에게 열렬히 구애 공세를 펴지만 중길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영숙이 동네 주먹의 우두머리인 홍성공고 ‘광식’(김영광 분)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학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묘하고 괴이한 삼각관계는 서울서 ‘소희’(이세영 분)라는 여학생이 전학 오면서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젊은 스타들이 정겹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좌충우돌 보여주는 코미디가 재미있다. 특히 박보영은 ‘과속스캔들’이나 ‘늑대소년’에서와는 전혀 다른, 씩씩하지만 귀엽고 속내는 여린 ‘폭력 소녀’역을 능청스럽게 해냈다. 젊은 배우들의 신선한 이미지와 활기가 이 영화의 미덕.

    김동현 감독 ‘만찬’

    가난하지만 따뜻한 것이 가득

    공감 세대 | 40대 가장, 자식을 둔 60대, 결혼이 힘든 30대, 취업이 힘든 20대

    공감 포인트 | 추운 겨울날 가족과 함께하는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

    이런 영화 좋아한다면 | ‘가족의 탄생’ ‘좋지 아니한가’ ‘전설의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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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겨울 저녁, 한 사내가 차가운 입김을 내뱉으며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작고 허름하지만 가족 이야기 소리가 도란도란 들리는 집에 들어선다. 벌써 다른 가족은 다 모여 한 숟가락씩 먼저 뜬 참이다.

    “형 왔어?” “얼른 앉아서 먹어라” “이런 날엔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고 끓인 김치찌개가 최고지. 아버지, 소주 한 잔 하실까요” “오빠는 자기가 먹고 싶으니까 괜히 아버지 핑계 대고”.

    연로한 부모와 장성한 3남매가 있는 풍경이 정겹고 따뜻하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를 듯한 충만한 행복이 묻어난다. 퇴근해 가장 늦게 합류한 장남이 대표 삼아 한마디 한다.

    “이제 우린 걱정 없다. 나는 취직했지, 인호(남동생)는 대학 졸업했지, 경진(여동생)이는 이제 결혼하지.”

    가난하지만 충만한 행복은 짧았고, 가난해서 맞은 불행은 길고 깊었다. 최근 한국 독립영화의 가장 큰 성취로 꼽히는 ‘만찬’은 한 가족을 서서히 잠식해가는 불행의 그림자와 그래도 희망이고 위안인 가족을 그린 드라마다.

    생활력 없는 부모, 또래보다 모자란 아이, 능력 없는 배우자, 변변치 못한 직업, 환자 등 가족은 때로 서로에게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지만 첫아이의 걸음마, 어깨를 두드리는 격려의 손,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밥 한 공기, 함께 흘려주는 눈물, 빙긋이 웃어주는 미소, 조용히 품어주는 가슴, 그리고 엄마의 김치찌개가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만찬’은 우리 시대 가족의 의미를 깊고 길게 야무진 호흡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취직, 결혼, 졸업으로 꿈에 부풀었던 3남매와 부모가 가진 희망과 기대가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몇 년 후 장남 ‘인철’(정의갑 분)은 권고사직으로 실직하고, 누이 ‘경진’(이은주 분)은 이혼해 경증자폐증을 앓는 어린 아들만 떠안았으며, 부푼 가슴 안고 사회에 나온 막내아들 ‘인호’(전광진 분)는 학자금 빚을 갚느라 ‘비정규 알바 인생’에 숨 한 번 쉴 틈이 없다.

    그리고 3남매 어머니의 생일, 여느 때와 달리 자식들에게서 연락이 없다. 서로 앞가림하기 바쁜 탓이다. 그런데 그날 인호가 대리운전 중 사고를 내고, 인철은 이를 수습하려고 동분서주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병인 심장병이 도진 경진이 쓰러진다.

    참 힘들게 사는 가족이지만 잘난 것도, 가진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가지쯤 공감할 만한 요소가 있는 삶이다. 유쾌한 판타지보다 씁쓰레한 현실에 천착한 영화이긴 해도, 인물과 드라마 힘이 좋고 연민과 훈훈함을 잃지 않는 정서가 미덕인 가족영화다.

    박제현 감독 ‘조선미녀삼총사’

    사내 홀리고 조선도 홀린 여검객

    공감 세대 | 하지원을 아는 모든 세대

    공감 포인트 | 원 황후가 된 고려 여인부터 조선 기생, 조선 여형사까지 사극 만능 하지원

    이런 영화 좋아한다면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차태현 주연),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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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오년 극장가는 사극영화 풍년이다. 새해 한국 영화계 화두도, 유행도, 흥행 최대 격전이 벌어질 장르도 사극영화가 될 전망이다. 100억 원 이상 제작비가 투입되는 작품을 비롯해 7편 이상의 사극영화가 1년 내내 줄을 잇는다. 스타트를 끊는 건 하지원, 강예원, 손가인이 주연한 ‘조선미녀삼총사’다. 이어 현빈, 정재영, 조정석이 주연한 ‘역린’이 상반기 중 개봉을 잡아놓았다. 여름엔 봇물을 이룬다. 하정우와 강동원이 만난 ‘군도 : 민란의 시대’와 최민식, 류승룡의 ‘명량-회오리바람’, 손예진과 김남길의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 맞붙을 예정이다. 강우석 감독과 설경구가 다시 만난 ‘두 포졸’이 하반기 극장가를 예약해놓았고, 이병헌과 전도연이 주연한 ‘협녀 : 칼의 기억’이 개봉 시기를 보고 있다.

    한국 영화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감독과 배우가 모두 사극영화에 포진했다. 정조와 이순신 장군 등 역사 속 인물은 물론, 현상금 사냥꾼인 조선 여검객부터 당대 부정한 권력을 농락하며 반기를 든 도적, 고려 말 민란을 일으킨 남녀 검객, 잃어버린 국새를 찾아 나선 조선 여자해적과 남자산적, 당대 비리와 부정을 바로잡고자 나선 포졸까지 주인공의 성별과 신분도 다양하다. 액션에서 전쟁, 코미디, 스릴러, 해양 블록버스터, 정치드라마까지 장르도 갖가지다.

    ‘조선미녀삼총사’는 미국 TV 시리즈와 할리우드 영화로 잘 알려진 ‘미녀삼총사’의 조선판이라 할 만하다. 빼어난 미모와 검술 실력을 갖춘 여검객 3명의 활약상을 그렸다. 이 세 인물의 개성과 액션이 영화 승부수다. 하지원이 맡은 ‘진옥’은 전국 방방곡곡 현상범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 모조리 해치우는 최고수다. 사내를 홀리는 조선 제일 미녀 검객이기도 하다. 때론 관능적인 춤으로 적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콧수염을 붙인 남장으로 감쪽같이 속여 넘기기도 한다.

    강예원이 연기하는 ‘홍단’은 남편과 시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다가도 현상범 앞에만 서면 거침없는 무공 실력을 발휘하는 주부검객이다. 현상금이 걸렸다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생활력’과 ‘경제력’이 검술 실력 버금간다. 걸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 멤버 손가인이 분한 ‘가비’는 활, 쌍절곤에 격투까지 능한 전천후 여검투사이자 조선 최강 눈매 화장술을 자랑하는 ‘쿨걸’이기도 하다. 현상금 사냥꾼이던 이들 미녀삼총사에게 어명이 떨어진다. 국운이 달린 십자경을 찾으라는 것이다. 사극을 역사 재현보다 오락 장르로 소비하는 한국 영화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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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역시 외화 상차림도 풍성

    음악영화도 있고, 발레 공연 실황도 있다. 유럽 시대극부터 미국 B급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범죄액션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설 극장가는 확실히 한국 영화가 대세지만, 영화 마니아의 눈과 귀를 만족하게 할 만한 다양한 외화도 포진돼 있다.

    코엔 형제 감독 ‘인사이드 르윈’

    삶을 담은 포크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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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같은 사기극이나 범죄영화를 통해 삶의 아이러니 및 페이소스를 빛나는 유머감각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그려온 코엔 형제 감독의 음악영화다. 1960년대를 산 어느 포크 뮤지션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삶의 비경을 탐색한다. 그들에게 삶의 본질은 한 가지다. 결과는 의도를 종종 배반하고, 선의는 악의와 구별되지 않으며, 비극은 희극의 가장 좋은 동반자라는 사실.

    미국 뉴욕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포크가수 ‘르윈’(오스카 아이작 분)이 주인공이다. 꿈 하나 믿고 음악을 계속하지만 성과는 창고 속에서 썩는 앨범 한 장뿐. 게다가 듀엣으로 활동했던 파트너가 투신자살해 지금은 홀로 연주한다. 집도 없는 그는 친구 ‘짐’(저스틴 팀버레이크 분)의 여자친구 ‘진’(캐리 멀리건 분)에게 얹혀산다. 르윈이 두서없이 맞는 불행과 죽음, 그리고 희극의 운명이 빼어난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뤼크 베송 감독 ‘위험한 패밀리’

    할리우드 스타들의 B급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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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크레딧에 보이는 이름 면면이 호화롭다. ‘좋은 친구들’의 마틴 스코세이지가 제작하고 ‘레옹’의 뤼크 베송이 연출했다. 로버트 드니로와 미셸 파이퍼, 토미 리 존스가 출연한다. 이만하면 ‘레전드’급이다. 영화가 이름만큼 최고는 아니지만, B급 범죄물과 블록버스터 액션영화 분위기를 듬뿍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전직 마피아 보스 ‘프레드’(로버트 드니로 분)는 유죄협상(플리바게닝)에 따라 교도소에 가는 걸 면하고 아내 매기(미셸 파이퍼 분)와 딸 벨(다이애나 애그런 분), 아들 워렌(존 드리오 분)과 함께 프랑스 한 시골에서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 스탠스(토미 리 존스 분)의 감시를 받으며 평화롭고 조용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어느 날 프레드가 밀고한 조직원들이 배신자를 죽이고자 마을에 나타난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막판 절정에 이르는 액션 대결이 즐길 만하다.

      

    기욤 니클루 감독 ‘베일을 쓴 소녀’

    18세기 한 여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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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프랑스, 유복했던 집안이 몰락하면서 가족의 강요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 ‘수잔’(폴린 에티엔 분)은 수녀가 되길 거부하지만, 자신이 어머니(이자벨 위페르 분) 외도로 태어난 딸이라는 사실을 안 뒤 불만을 접고 수녀원 생활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원장 수녀의 사망 후 새롭게 부임한 원장이 자신을 핍박하자 수녀원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드니 디드로의 18세기 소설 ‘수녀’를 원작으로 한 영화. 출간 당시 금서였던 이 책은 1966년 누벨바그의 대표 감독 자크 리베트에 의해 영화화된 적이 있다. 강요된 운명에 맞선 한 소녀의 비밀스럽고 충격적인 고백은 원작만큼이나 유럽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결국 2년간 상영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자벨 위페르와 수잔 역을 맡은 젊은 스타 폴린 에티엔의 연기, 18세기를 재현한 영상이 뛰어나다.

     

    토아 프레이저 감독 ‘지젤’

    스크린으로 만나는 발레

    웃음 터지고 눈물 나고…스크린과 마음이 通하니까
    뉴질랜드 왕립 발레단과 오클랜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엿새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ASB 극장과 웰링턴 세인트제임스 시어터 무대에서 펼친 공연을 담은 실황이다. 고전발레 ‘지젤’을 중국과 뉴질랜드를 오가는 러브스토리로 새롭게 해석했다. ‘지젤’역을 맡은 질리언 머피와 ‘알브레히트’역을 맡은 퀴 후안의 뛰어난 연기로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 현대 세계 영화 부문에 초청되는 등 영화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머피는 ‘백조의 호수’에서 ‘오딜’역으로 세계적인 스타 발레리나로 떠오른 무용수다. 상대역 후안은 중국과 뉴질랜드를 오가며 ‘지젤’을 향한 애처로운 사랑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사랑과 죽음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2인무와 세계 3대 ‘발레 블랑’(흰색 옷을 입은 무용수가 꿈이나 저승 등 비현실세계를 표현하는 발레의 장면)으로 꼽히는 2막에서의 몽환적인 군무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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