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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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꽉 막히는 고속도로 문제는 밀도야

특정 시간대 차량 10%만 늘어도 극심한 정체…급정거가 응결핵 구실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beomjun@skku.edu

    입력2014-01-27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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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설연휴가 되면 전국 고속도로는 몸살을 앓는다. 차가 많으면 교통정체가 생기는 것은 언뜻 당연한 일 같다. 그러나 여러 객차가 연결된 채 움직이는 경부선 고속열차라면 어떨까. 1호 객차는 이미 떠나갔는데 2호 객차는 멈춰 있고, 따라서 그 뒤 3호 객차까지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하는 교통정체가 철로 위에선 생기지 않는다. 당연하다. 모든 객차는 두름에 엮인 굴비처럼 같이 움직이니까. 그러니 기차를 움직이는 힘만 충분하다면 연결된 객차 수가 2배가 된다 해도 고속열차가 느려져 저속열차가 될 이유는 없다.

    갑자기 속도 줄여 유령정체

    반면 차가 많아지는 설연휴 고속도로는 저속도로가 된다. 그 이유는 대도시에서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저 앞 사거리 신호등은 초록불인데 내 바로 앞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나도 움직일 수 없고, 내 앞차는 또 그 앞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 드디어 내 앞차들이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미 저 앞 신호등은 빨간불. 이번에도 지나긴 또 글렀군.

    이처럼 차가 많아질 경우 교통흐름이 느려지는 이유 중 하나는 운전자의 반응시간(앞차 움직임을 보고 ‘이제 움직여야지’ 하고 마음먹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 시간)이 보통 1초 정도 되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가속을 시작해도 차가 적정 속도에 이르려면 또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 도로 위 차를 굴비 엮듯 모두 엮으면 정지해 있는 차 100대가 시속 60km에 이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차 1대가 같은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첫 번째 차를 뺀 모든 차의 운전자는 자기 앞차가 움직이는 것을 인식하고 나서야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고, 따라서 100대 모두 움직이려면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지 않아도 차가 막히는 이유는 또 있다. 일본 한 대학 과학자들이 실험한 동영상을 보면(인터넷에서 ‘shockwave traffic jam’이라는 검색어로 찾을 수 있다) 원 모양 차로를 처음에는 문제없이 잘 달리던 차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교통정체를 겪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차가 많아도 모든 차가 다 함께 정확히 같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같은 속도로 달리면 막힐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도로 위에 차가 많아지면 차 사이 거리가 줄어든다. 이때 차 1대가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조금만 줄여도 그 뒤를 바짝 쫓아오던 뒤차는 깜짝 놀라 속도를 갑자기 줄이게 되고, 그 차의 또 뒤차는 어쩌면 아예 서버릴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정체가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교통정체는 사고가 나지 않아도, 갑자기 앞 트럭에서 짐이 떨어지거나 고라니가 도로로 뛰어들지 않더라도 얼마든 생길 수 있다. 이를 유령정체(phantom traffic jam)라 부른다.

    유령정체가 생기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운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 습관 차이, 교통상황에 대한 판단 차이, 또 가·감속 능력의 기계적 차이 등을 생각하면 당연히 도로 위 자동차들은 다르게 움직인다. 이러한 차이로 균일하던 교통흐름에 작은 교란이 생길 경우, 이 교란은 마치 퐁당퐁당 던진 돌멩이가 만드는 호수 위 물결처럼 파동 형태로 도로 위를 움직인다. 도로 위에 자동차가 많지 않다면 차 1대가 만든 작은 교란은 뒤차에 영향을 주지 않고 곧 사라진다. 그러나 자동차가 많아 차들이 촘촘히 움직일 때는 작은 교란도 바로 뒤차로 전달되며 증폭, 확대된다.

    고체와 과냉각 액체 상태

    다시 말해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길고, 도로 위 차들 움직임이 균일하지 않으며, 운전자가 교통상황에 과잉 반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고가 나지 않아도 차만 많아지면 도로 위에 정체가 나타나는 이유다.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 방향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들면 천안 부근까지는 상당한 시간 동안 4차로 이상 도로를 달린다. 차들이 차 간 거리 100m를 유지하며 시속 100km로 4차로를 같은 방향으로 달리면 24시간 동안 도로 한 지점을 지나는 차는 모두 9만6000대가 된다.

    필자 연구그룹 조우성 군이 그린 ‘그림1’은 지난해 설 전날인 2월 9일 경부고속도로 교통흐름 상황을, ‘그림2’는 평일인 2월 19일의 교통흐름을 보여준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교통정체가 있던 구간이다. 어디서 교통정체가 생기기 시작하고 그 정체가 어떻게 해소되는지 한눈에 보인다. 서울에서 부산 방향으로 진입한 차량 수는 두 그림 각각 10만4650대와 10만2247대로 크게 다르지 않다. 4차로를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쌩쌩 달리는 경우를 생각해 계산한 9만6000대에 비해 10% 정도 늘어났을 뿐이다.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차를 다른 시간대로 분산하고, 설연휴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차 대수를 10%만 줄여도 교통정체가 많이 줄어들어 즐거운 귀성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통정체 물리학을 좀 더 설명하려고 손난로를 예로 들어보겠다. 필자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 비닐포장에 액체가 담긴 손난로를 갖고 다니곤 했다. 이 손난로 안에는 작은 금속조각이 들었고, 이를 딸깍하고 누르면 액체가 고체로 변하면서 손난로가 따뜻해진다. 이 손난로에 들어 있는 것은 ‘과냉각(supercooled)’된 액체다.

    설연휴 꽉 막히는 고속도로 문제는 밀도야
    영하 10도쯤 되는 추운 날씨에는 사실 손난로 안 액체가 얼어 고체 상태가 돼 있어야 한다. 물리학자 용어로 말하자면 영하 10도일 때 이 물질의 평형 상태는 고체다. 그런데 충분히 조심하면 이 물질이 영하 10도에서도 비정상적인 비평형 상태(평형 상태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다는 뜻으로 준평형 상태라고도 부른다)인 액체 상태에 머물게 할 수 있다.

    냉동실에 얌전히 액체 상태로 있던 음료수를 꺼내 마시려고 뚜껑을 여니 갑자기 얼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한 독자도 있을 터다. 이것이 바로 음료수가 냉동실에서 비평형 상태인 과냉각 액체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이 현상을 이용해 음료수를 슬러시로 만들어 먹는 요령을 소개하는 동영상도 있으니 인터넷에서 찾아보길.

    다시 손난로로 돌아가면, 손난로 안에 액체와 함께 들어 있는 금속판을 딸깍하고 누르면 금속판 표면 가는 홈에 들어 있던 작은 고체 조각이 액체 부분으로 밀려나와 응결핵 구실을 한다. 얼음이 담긴 용기에 불을 때면 얼음이 녹아 물이 되지 않나. 이처럼 고체가 액체로 변할 때 외부에서 열 형태로 넣어준 에너지는 액체가 고체로 될 때 거꾸로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손난로의 원리다.

    손난로의 경우 열을 발산한 후 고체로 굳으면 혼자 힘으로는 다시 액체로 돌아가지 못한다. 끓는 물에 넣어 녹인 후 천천히 식혀야만 다시 과냉각된 액체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교통정체는 이러한 손난로 물리학과 거의 비슷하다. 손난로의 평형 상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당연히 온도다. 교통정체 물리학에서 온도에 해당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도로에 있는 차의 밀도, 즉 도로 위 1km 거리 안에 있는 차 대수가 된다. 차 밀도가 커서 교통정체가 생긴 상황이 바로 온도가 낮아 손난로가 고체 상태에 있는 것에 해당하고, 차 밀도가 작아 교통흐름이 원활한 상황은 손난로가 액체 상태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설연휴 꽉 막히는 고속도로 문제는 밀도야

    과냉각된 액체가 들어 있는 손난로. 금속판을 누르면 열이 발생하면서 평형 상태인 고체가 된다. 다시 액체로 만들려면 끓는 물에 넣어 녹인 후 천천히 식히면 된다.

    영하 10도에서 손난로가 제대로 된 평형 상태인 고체 상태로 있을 수도, 비평형 과냉각 상태인 액체 상태로 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도로 위 차 밀도가 같아도 어떨 때는 차들이 원활하게 움직이는 도로 상태일 수 있고, 어떨 때는 차들이 꽉 막힌 교통정체가 생길 수도 있다. 금속판을 딸깍해 균일한 액체 상태를 교란시키는 것은 균일한 교통흐름 안에서 차 1대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것에 해당한다. 응결핵으로부터 시작해 점점 고체로 변하듯, 교란을 만든 차로부터 시작한 교통정체도 규모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일단 고체 상태가 되면 온도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절대로 스스로 알아서 액체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손난로처럼, 고속도로 위 정체도 차의 밀도가 변하지 않는 한 스스로 풀리지 않는다. 온도를 많이 올렸다 식혀서 다시 액체로 만드는 손난로처럼, 차의 밀도가 작아져야만 교통정체가 해소되고 이후 차 대수가 천천히 늘어나 이전 정체가 있던 차의 밀도에 이르면 교통흐름은 원활한 비평형 상태에 머물 수 있다.

    고속도로 교통정체를 해소하는 확실한, 하지만 실제 활용할 수는 없는 방법이 있다. 배급제로 식량을 나눠주듯, 모든 사람의 고속도로 진입시간을 정부가 정하고 이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수 없듯, 몇 시간 고향에 빨리 가려고 이동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나. 궁극적으로는 과학기술 발달로 교통정체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매일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고 하는 일은 대부분 전혀 지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기계적인 것들이다. 앞차가 움직이면 그와 같은 속도로 차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갑자기 생기는 급박한 상황에 대처하는 것도 현재 기술 발전 속도로 보면 머지않아 차에 장착한 컴퓨터가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 시대

    교통정체가 생기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니 당연히 교통정체를 해소하는 궁극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운전자 반응시간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판단 빠른 컴퓨터에 맡겨서 해결하면 되고, 앞차 감속에 과잉 반응해 과도한 감속을 하게 되는 것은 앞차와 거리를 충분히 두는 것으로 해결하면 된다.

    필자가 이현근 박사와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방 몇백m 앞에서 교통흐름이 느려지면 현 위치에서부터 미리 차 간 거리를 충분히 유지하는 운전규칙만 잘 적용해도 교통정체가 상당히 해소된다.

    미래엔 필자 손자(혹은 증손자)가 “할아버지, 책에서 보니 옛날에는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요? 왜 옛날에는 운전을 사람이 했을까요?”라고 물을 것이다. 자동(自動)차는 사람 도움이 전혀 없이 ‘스스로 움직여야’ 진짜 자동차다.

    그때가 되면 교통정체 없이도 훨씬 더 많은 차가 지금의 경부고속도로 위를 지나다니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차에서 보내는 출근시간은 고통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자기 차 안에서 출근길 단잠을 더 즐기거나, 아침 연속극을 마저 보면서 출근하려고 일부러 느리게 가는 사람 때문에 교통정체가 다시 사회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최저속도를 정하고 이를 어기면 범칙금을 내게 하면 되겠군. 아니지, 그렇게 하면 빠른 속도로 먼 길을 돌아가려 하겠군. 뭐 그때가 되면 또 이 문제를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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