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진주 ‘김성균·이연희’ 발굴

캐스팅의 중요성

  • 배선영 텐아시아 기자 sypova@tenasia.co.kr

    입력2014-01-06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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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진주 ‘김성균·이연희’ 발굴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나이를 초월해 호연을 펼친 배우 김성균(위). 드라마 ‘미스코리아’에서 거칠고 대찬 주인공 역을 맡아 새로운 연기 인생을 시작한 배우 이연희.

    올해 나이 서른넷인 배우가 18세 대학생 새내기를 연기했다. 배우 얼굴이 엄청난 동안도 아니다. 딱 봐도 30대 중반의 중후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이 배우, 영화 속에서 줄곧 깡패나 킬러 등 잔인하고 사나운 역을 도맡아 연기했다. 그런데 18세를 연기하는 모습에서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탁월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가 선사하는 마법. 배우의 변신 앞에는 물리적 나이마저도 걸림돌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의 주인공은 바로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94’에서 삼천포 역을 맡은 배우 김성균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MBC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이연희. 언제나 나긋나긋, 여리여리 청순한 역만을 도맡아왔던 이 배우는 ‘미스코리아’에서 엘리베이터 걸들 사이의 ‘왕언니’ 오지영 역을 맡았다. 남자 주인공에게 담배 피우는 방법을 알려주고 나이트클럽에서 신나게 춤도 춘다. 거친 대사도 곧잘 한다.

    두 배우 모두 캐스팅 소식이 보도된 후 업계는 물론, 대중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의심 어린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 아찔한 반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이제는 거짓말처럼 칭찬일색이다.

    배우 가능성을 보는 눈

    김성균과 이연희의 성공적인 반전은 ‘응답하라 1994’ 신원호 PD, ‘미스코리아’ 권석장 PD의 캐스팅 철학에서 비롯됐다. 배우의 기존 이미지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 배우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 두 연출자가 가진 캐스팅 철학의 핵심이다.



    먼저 신 PD는 신인 발굴에 적극적인 동시에 기존 배우에게 새로운 옷을 입히는 데도 능숙하다. 그는 전작 ‘응답하라 1997’에서 정은지(에이핑크), 서인국 등 연기 경험이 전무하거나 거의 없는 이들을 주연으로 발탁했다. 전례 없는 파격적 행보였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특히 서인국은 현재 배우로 승승장구한다. ‘응답하라 1994’의 경우 아이돌그룹 멤버 바로(B1A4)와 도희(타이니지)가 같은 사례다. 이들 역시 연기 경험이 전무했으나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그 흔한 연기력 논란 없이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응답하라 1994’로 스타덤에 오른 정우나 손호준의 경우, 영화판에서는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이름이 났지만 브라운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을 주연으로 기용한 것 역시 파격에 가까운 캐스팅이다. 또 신 PD는 김성균과 고아라, 두 배우에게 기존에 소비되던 캐릭터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다.

    숨은 진주 ‘김성균·이연희’ 발굴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출하며 창의적인 캐스팅 능력을 보여준 tvN 신원호 PD(왼쪽). 배우의 기존 이미지에 지배당하지 않는 반전 캐스팅으로 유명한 MBC 권석장 PD.

    신 PD는 자신의 캐스팅 철학에 대해 “PD 대부분이 ‘감’을 믿고 사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미팅 현장에서 제일 먼저 봤을 때의 감을 최우선시했다. 백지가 있으면 낙서하고 싶고, 울고 있으면 웃게 하고 싶은 것이 크리에이터 자세라고 생각한다. 2012년 그런 캐스팅을 많이 했고, 지난해도 그런 캐스팅이 있다.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한 번 뒤집어주면 다른 친구가 하는 것의 곱하기가 돼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배우 본인이 변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권 PD의 캐스팅 스토리 역시 신 PD 못지않게 파란만장하다. 그가 드라마 ‘파스타’(2010)에 공효진을 발탁했을 당시, 공효진은 오늘날의 ‘공블리’가 아니었다. 당시 공효진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2002)나 영화 ‘미쓰 홍당무’(2008)에서 볼 수 있던 어둡고 소외된 역을 주로 했다. 따라서 통통 튀는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그를 캐스팅했을 때 오늘의 김성균이나 이연희처럼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는 이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파스타’는 예상을 뒤엎고 성공했고, 공효진은 현재 로맨틱 코미디의 단골 여주인공으로 사랑받고 있다.

    스타 재활용에 목을 맨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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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태희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었다는 찬사를 유일하게 들었던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2011)도 권 PD의 연출작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2013년 드라마 ‘비밀’로 놀라운 성장을 보여준 황정음 역시 ‘골든타임’(2012)으로 권 PD와 만나 배우로서 새로운 길을 열어젖혔다.

    나열한 사례를 보면 권 PD 역시 배우를 기용할 때 기존 이미지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하지 않는 일을 하려는 욕구가 강하게 느껴진다. ‘미스코리아’ 관계자는 “권 PD도 이연희라는 배우를 둘러싼 연기력 논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연희의 전작 ‘구가의 서’를 보고 배우로서 기본 자질이 있다고 판단했고, PD가 갈고닦으면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선보일 수 있겠다고 판단해 바로 결정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빤한 길을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은 어쩌면 창작자의 필수 덕목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연출자는 빤하고 안정적인 길을 고집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요즘 방송가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지 않은가. 케이블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의 약진으로 지상파는 더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보장받지 못한다. 소리 소문 없이 막을 내리는 드라마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배우의 스타성에라도 기대고 싶은 심리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모험인 것은 스타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높은 몸값을 요구하지만 성공은 보장돼 있지 않다. 신인 기용이 훨씬 유리할 수 있는 전략이다.

    특히 변화무쌍한 방송계는 언제나 새로운 인물에 목말라 있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본다면 빤한 캐스팅은 결국 연출자 발목을 잡는다. 더 많은 배우가 배출돼야 공급량이 많아지니, 연출자의 반전 캐스팅은 그 자신에게도 유리하고, 업계 전체에 활력을 주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신원호호와 권석장호에 탑승했던 배우들의 활력 있는 행보를 보면, 타인의 가능성을 성급히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신 PD나 권 PD의 눈부신 성공 사례를 목격한 이후에도 많은 이가 여전히 남이 배출한 스타의 재활용에만 목을 매는 게 현실이다. ‘응답하라 1994’의 스타 정우와 손호준은 영화 ‘바람’으로 일찌감치 연기력을 인정받았음에도, 신 PD가 손을 내밀기 전까지 별다른 ‘러브콜’이 없었다는 점은 어찌 보면 씁쓸한 현실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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