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익 우려해 주었다면 뇌물”

결혼식 축의금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4-01-06 0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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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이익 우려해 주었다면 뇌물”

    최근 법원은 서로 명함을 주고받은 사이 정도에 불과한 업체 관계자들에게 축의금을 받은 공무원의 행동을 뇌물수수라고 판시했다.

    혼사는 집안 경사고, 이를 축하하는 것은 오랜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세칭 ‘갑을관계’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 이후 언제부터인가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이가 보내오는 청첩장은 일종의 고지서 같은 심적 압박을 주고 경제적 부담이 된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공무원이 관할 업체 관계자에게 청첩장을 보내 축의금을 받는 행위가 뇌물수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감독을 맡은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현금, 골프와 식사 접대, 축의금 등을 받은 혐의(수뢰 후 부정처사, 뇌물수수)로 기소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소속 5급 공무원 김모(57)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0만 원과 추징금 1200여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김씨가 딸 결혼식과 관련해 명함을 주고받은 정도에 불과한 산업안전 지도점검 대상 업체 관계자 45명에게 문자메시지와 청첩장을 발송해 축의금 530만 원을 받았다”며 “청첩장을 받은 업체 관계자들은 축의금을 보내지 않을 경우 입게 될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우려해 축의금을 보낸 것으로 보이므로 축의금도 뇌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비록 사교적 의례의 형식을 빌렸더라도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했다면 뇌물이 된다고 전제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명백하게 인정되지 않는 한 김씨가 딸의 결혼식과 관련해 지도점검 대상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축의금을 받은 것은 뇌물수수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이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일부 축의금 수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과장으로 있으면서 관할 사업장의 산업안전을 지도 및 감독하는 근로감독관들을 지휘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러면서 A업체로부터 과태료 부과 무마 명목으로 300만 원을 받아 챙겼고, 다른 업체 관계자로부터도 수십 차례에 걸쳐 골프와 식사 접대는 물론 현금까지 수수했다가 기소됐다. 축의금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뇌물을 수수한, 소위 ‘버릇이 나쁜’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1심은 현금, 골프와 식사 접대는 물론, 축의금도 뇌물로 인정해 김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500만 원과 추징금 1600여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김씨가 축의금을 보낸 이들 가운데 일부의 애경사에 참석했고, 받은 축의금 규모가 5만∼10만 원에 불과한 점, 통상 자녀가 결혼할 때 주요 거래처에도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 관례인 점 등을 이유로 일부 축의금을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0만 원과 추징금 1200여만 원으로 감형했지만, 대법원은 이 판단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사람이 몰려들어도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권력과 이권을 얻고자 몰려드는 세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하지만 자기 직위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축하를 강요하는 행위를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고, 이를 어긴 사람은 공직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판결로도 확정된 셈이다. 위세 높은 권력자가 집안 애경사를 알리지 않고 치른 것이 여전히 미덕이 되는 세상에서, 진심 어린 축하가 아쉬운 현 세태를 씁쓸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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