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9

2013.12.30

가식 화장을 지운 여배우들

‘꽃보다 누나’

  • 윤희성 대중문화평론가 hisoong@naver.com

    입력2013-12-30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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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식 화장을 지운 여배우들
    캐이블채널 tvN ‘꽃보다 할배’는 ‘할배’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연륜이 쌓인 원로 배우들의 회고담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것들의 가치에 대해 줄곧 이야기했다. 후속작인 ‘꽃보다 누나’는 좀 다르다. ‘누나’는 남성이 연상의 여성을 이르는 말이며, 이는 프로그램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연결된다. 짐꾼이자 가이드로 출연하는 이승기가 겪는 소통 장애는 경험 축적의 차이뿐 아니라 성별 차이에서도 비롯된다. 그런 이유로 ‘꽃보다 누나’는 방송 초반 상당 부분을 이승기 성장담에 할애했다.

    어린 나이에 연예인으로 데뷔해 가수와 배우, 예능인을 겸업하며 다양한 재능을 인정받은 이승기는 상대적으로 생활력과 판단력이 부족하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성실하게 노력하지만 정작 소통능력과 배짱이 없어 번번이 실수를 저지른다. 이런 태도는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많은 젊은 남성과 닮아 있기도 하다.

    여행 가이드로서 구성원 전체를 인솔해야 하는 부담감을 극복하는 일도 벅찬 마당에, 시시콜콜한 문제에 집중하는 여성 특유의 소통방식에 적응하지도 못하니 이승기는 줄곧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다. ‘꽃보다 누나’가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공항에서 이미 주인공들 개성을 잡고 이 프로그램이 완수해야 할 미션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승기의 약점을 극대화한 덕분이다. 이승기에게 감정을 이입한 사람도, 또 이승기의 약점을 안타까워하는 누나들에게 공감한 사람도 이 여행의 전 과정을 하나의 드라마로 인식하고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연출에서 비롯된 효과다.

    카메라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주인공들도 집요하게 관찰한다. 촬영 전부터 이미 친한 사이였던 ‘할배’들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서로에 대한 생각과 정보를 쉽게 공개했지만, 여배우들은 ‘꽃보다 누나’를 통해 새롭게 관계를 시작했기에 거리를 좁혀나갈 시간이 필요하다. 김자옥이 찾아낸 김희애의 성격, 윤여정이 이야기하는 이미연의 모습은 그런 거리를 좁혀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배우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식사 습관이나 메이크업 노하우 등을 조금씩 털어놓지만 자기 속마음을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아직까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이들이 조금씩 내비치는 속마음을 따라가며 인생과 진심을 엿듣는다.



    ‘꽃보다 누나’는 여행 프로그램이지만 여행지를 소개하는 전통적인 스타일은 아니다. 방송에서 자주 보던 여배우의 감춰진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순간 새로운 방식으로 흘러나오고, 그때 여행지는 마음의 빗장을 여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된다.

    이승기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 “우리가 아니라 네 미래의 여자친구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윤여정의 농담처럼 방송은 여행 순간뿐 아니라, 그것이 끝난 후 시간에도 주목한다. ‘꽃보다 누나’가 막연한 부러움을 넘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시선의 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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