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9

2013.12.30

여학생 괴롭힌 놈 때려눕혔는데…

퇴학당한 고3

  •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입력2013-12-30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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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유독 눈이 많이 내렸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소년의 손을 잡고 내게 온 사람은 소년 아버지였다. 소년 아버지는 거의 말도 없이 고3 아들을 내게 던지듯 맡기고 총총 사라졌다. 그 모습이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치 ‘당신이 상담선생이니 당신 능력을 한 번 봅시다’라고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진 이유는 아버지의 눈빛 때문이었으리라. 소년은 속을 알 길 없는 깊은 눈에 슬픔과 장난기가 어린 묘한 눈동자를 지녔다. 소년 아버지의 나이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언뜻 보면 나이가 아주 지긋한 노인 같았고, 또 어떤 각도로 보면 고뇌하고 반항하는 30대 청년 같기도 했다. 아버지가 떠난 후에야 소년을 찬찬히 뜯어봤다.

    “그래, 학교생활은 어땠어?”

    소년이 웃는 듯하다 꽥 소리를 내질렀다.

    “학교 이야기 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 가득



    놀랄 일은 아니었으나, 소년이 분노로 가득 차 있음을 감지했다. 소년은 교복 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셔츠 단추를 3개나 푼 차림으로 다리를 쩍 벌린 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입술을 삐죽 내밀었는데, 그 모습이 불량하기는커녕 앙증맞고 귀여워 보였다. 추운 겨울에 풀어 젖힌 셔츠라니.

    “셔츠 단추 잠가.”

    명령조 말이 귀에 거슬릴 만도 했는데, 소년은 의외로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똑바로 앉지.”

    그러나 이번엔 소년의 눈꼬리가 휙 치켜 올라가며 으르렁대듯 말했다.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나는 대략 난감한 상태로 첫 회기를 보냈다. 사실 한편으론 소년을 빨리 내보내고 싶기도 했다.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어떠한 말에도 신경이 긁히는 법이니까. 소년이 의자를 걷어차듯 밀치고 상담실을 나갔을 때 나는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다음 시간에도, 또 그다음 시간에도 소년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참을성이 많다지만, 계속 반말을 해대고 성질을 내는 소년을 예쁘게만 봐줄 수는 없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잘못은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소년은 내 질문에 대꾸는커녕 버럭 화만 냈고, 소년 아버지는 내게 소년을 맡긴 이후 전화조차 불통이었다.

    소년이 오는 수요일이면 점심을 끼적거리는 습관이 생길 정도로 소년은 내게 뜨거운 감자였다. 소년에게 난청 증상이 있거나 다른 질병이 있지 않나 의심할 정도로 소년은 날카롭고 공격적이었다. 나 자신을 다스릴 무엇인가가 필요했기에 독일에서 ‘기독교와 윤리’를 주제로 8년을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가 선물해준 성경책을 꺼내 펼쳤다. 기독교 신자도, 뭣도 아닌 내가 마치 점괘를 보는 사람처럼 책장을 열었을 때 시편 53편이 그곳에 있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썩었으며 그들의 행위는 더럽습니다.’

    그 구절을 읽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소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을 때 머뭇거리는 자신을 봤다. 내가 과연 소년을 100% 믿는다고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속이 울렁울렁하며 토악질이 올라왔다. 나는 소년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었다. 학교에서 버림당한 아이가 흘러 흘러 내게 왔는데, 나조차 소년 외양과 태도만 보고 알게 모르게 내밀쳤던 것이다.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했다.

    “제 힘으론, 제 능력으론 소년을 100%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에게 소년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제발요.”

    소년이 왔을 때 왠지 든든한 ‘빽’이 있는 듯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그날도 역시 낭패였다. 소년은 여전히 반항적이고 성질을 부렸으며 무서운 얼굴로 화를 냈다. 소년이 떠나고, 난 성경책을 노려보다 시편 53편을 다시 열었다. 입을 열어 제목부터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믿지 않는 어리석음. 다윗의 마스길. 마할랏에 맞춰 지휘자를 따라 부른 노래. 그런데 마할랏이란 무슨 뜻이지? 아, 여기 있구나. ‘도와달라는 기도. 현악에 맞춰 지휘자를 따라 부른 노래.’ 아, 도와달라는 것을 노래로 한 거구나.”

    천천히 치유되는 소년의 마음

    그다음 회기 때 소년이 오기 전부터 캐럴 연속 곡을 틀어놓고 열심히 따라 불렀다. 잘은 몰라도 크리스마스 때가 다가오니 캐럴이 가장 적당할 듯했고, 개인적으로 캐럴을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상담실 문을 연 소년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예의 건방진 태도로 돌아왔다.

    “캐럴 중 어떤 노래를 좋아하니?”

    노래를 따라 부르던 중이라 아마도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던 것 같다. 소년은 멈칫하더니 디스크 뒤편에 있는 곡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I’ll be home for Christmas’였다. 소년을 향해 찡긋 윙크를 날리고 몸을 돌려 소년의 신청곡을 틀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럴이기도 했다. 그날 상담시간은 소년과 내가 좋아하는 캐럴을 돌려가며 듣고 또 따라 부르며 지나갔다.

    그 후 나는 소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년이 좋아했던 소녀와 불량서클 이야기. 소년은 학교 내 불량서클 소속 아이들을 양아치라고 불렀다. 밝고 의협심 강했던 소년은 초등학생 때까진 긍정적이고 친구들과도 재밌게 지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학교 내 파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평범한 집안의 소년은 그 당찬 성격으로 양아치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초등학생 때 친했던 친구도 양아치들이 무서워 소년에게 등을 돌리자, 소년은 철저히 외톨이가 됐다. 이런저런 능욕을 당하며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숨죽이며 지내야 했다.

    고등학생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같은 반 여학생을 좋아하게 됐고, 소년이 그 여학생을 좋아하자 양아치들이 소년을 괴롭힐 속셈으로 소녀를 괴롭혔다. 소년은 참지 못하고 불량서클 아이들과 싸웠다. 나는 불량서클 소속이고 양아치라고 해서 학교에서도 눈 밖에 난 아이들이라 생각했는데, 소년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공부도 꽤 잘하고 집안 배경도 좋아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무시하지 못한 채 절절맨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소년이 유독 소녀를 괴롭혔던 그들 중 한 명을 완전히 때려눕혀 코뼈가 부러지고 무릎이 골절된 데 있었다. 경위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상대 학생과 그 부모에게 무릎 꿇고 빌라고 지시한 교사의 말을 소년이 거부하자, 퇴학 조치를 당한 것이다.

    소년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눈동자에 작은 별이 반짝였다. 소년의 마음은 천천히 치유돼갔다. 그러나 소년은 자기 때문에 소녀에게 피해가 갈까 봐 소녀를 피했다. 나는 그날 소년이 돌아간 뒤 소년이 다니던 학교 교장과 교육감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소년은 한 소녀를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불량소년이라 부르던 그 소년은 한 소녀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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