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9

2013.12.30

펜의 꿈

  • 티모테우슈 카르포비치(폴란드 시인)

    입력2013-12-27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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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의 꿈
    펜이

    잠자기 위해서

    옷을 벗을 때

    펜은

    단단히 결심했다



    죽은 듯이 자겠다고

    불을 모두 끄고

    그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타고난 완강한 성격 때문에

    세상의 어떤 힘보다도

    펜의 척추에 내재한 힘이

    가장 강하리라

    그것은

    부러지기는 할지언정

    굽히지는 않는다

    펜은

    결코 물결이나 머리카락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는 않으리라

    오로지

    부동자세로 서 있는

    병사나

    관棺을

    꿈꾼다

    그의

    내부에 있는 본연의

    올곧은 마음이다

    나머지는

    구부러진 것이다

    잘 자시오

    청년 시절에는 별을 찍어내던 나의 펜이 이제는 땅에 떨어진 쌀 한 톨을 찍어내기 바쁘다. 단단하던 펜의 척추가 디스크에 걸린 지 오래다. 오늘 밤에는 나의 오래된 만년필 펜촉을 유심히 본다. 참 반듯하게 빛난다. 가끔 쌀이 별이 되기도 하고…. 저 올곧은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자 한다. 펜은 꿈을 찍어 현실을 만든다.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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