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8

2013.12.23

‘황의 법칙’ KT 체질 바꿔놓을까?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전격 선임…직원들 “혁신 적임자” 환영 일색

  • 정호재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3-12-23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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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의 법칙’ KT 체질 바꿔놓을까?

    황창규 신임 KT 회장 내정자가 12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사옥 앞에서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2월 16일 오후 7시경 KT 최고경영자(CEO)추천위원회(추천위) 발표를 기다리던 기자들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미리 써놓고 최종 확정을 기다렸다. 첫째는 김동수 전 정보통신부 차관이 KT CEO로 결정됐다는 내용이고, 다른 대안은 임주환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기사였다.

    최종 후보는 4명이었지만 권오철 전 SK하이닉스 사장과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언급하는 기자는 거의 없었다. 이 두 후보가 KT CEO가 될 공산이 낮다고 본 데는 여러 이유가 작용했다. 특히 이들은 국내 반도체산업계의 대표 전문가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통신기업인 KT와의 인연을 찾아볼 수 없고, 거대 통신기업 경영의 필수조건으로 여겨지는 정치권과의 인맥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KT 출신 최종 후보에서 모두 탈락

    이에 반해 김 전 차관과 임 전 원장은 오랫동안 통신행정, 통신기술을 다룬 데다 그것과 비례해 정치적 인맥도 비교적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산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CEO 능력은 정계 인맥을 통해 문제를 푸는 데 달렸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이런 이유로 김 전 차관과 임 전 원장을 유력 후보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추천위가 내린 최종 결정은 황 전 사장이었다. 이 발표를 지켜본 기자들과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정”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 같은 결정은 뒤집어보면 추천위가 정치적 고려 없이 KT를 위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번 추천위 결정은 ‘이변의 연속’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날인 12월 15일 추천위가 후보를 20여 명에서 4명으로 압축해 발표했을 때도 통신관계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KT CEO 후보군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던 KT 출신이 완전 배제됐기 때문이다. 당일에도 최종 3~4배수 후보로 KT 출신이 2명 정도는 들어갈 것으로 관측했지만 추천위 결론에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임 전 원장과 권 전 사장이 포함됐다.

    사실 막판까지 거론된 KT 출신은 적지 않았다. 먼저 표현명 KT CEO 직무대행과 정성복 KT 부회장이 있었고, 또 KT 내부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던 이상훈 전 KT G·E 부문장과 최두환 전 KT 종합기술원 원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후보군에서 탈락했으니 공모 과정에서 최대 이변이 연출된 셈이었다.

    현직 KT 인사를 대표하던 표 CEO 직무대행이 일찌감치 공모 불참 의사를 밝혀 눈길을 모았다면, 검사 출신인 정 부회장의 참여는 의외긴 해도 강력한 후보가 될 것이라는 평이 나왔다. 특히 KT 내부에서는 이석채 전 회장과 각을 세우다 밀려난 ‘이·최’ 두 전직 사장의 탈락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미국 AT·T 벨연구소 출신인 두 사람은 해외 인재 영입 사례로, 한국으로 발길을 돌린 통신 전문가 그룹을 대표하는 인재였다.

    통신산업은 전기·전자산업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이와는 다른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다. 전국적으로 망을 깔아야 사업이 가능하고 막대한 규모의 연구개발(R·D)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일개 민간기업이 섣불리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100여 년 전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기틀을 세운 KT는 통신 인재를 배출한 사관학교 구실을 해왔다.

    ‘황의 법칙’ KT 체질 바꿔놓을까?

    황창규 신임 KT 회장 내정자(오른쪽)가 2011년 미국에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와 만나고 있다.

    인재 배출도 대부분 KT를 통해 이뤄졌다. KT와 더불어 국내 3대 통신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도 KT 출신이 상당수 포함된 것은 물론, 현재도 KT에선 3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이 일해 KT를 이끌 경영자가 KT 출신이라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추천위는 이 같은 통념을 뒤집어 외부 인재로 KT를 바꾸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KT 출신 CEO 후보가 모조리 탈락한 데 대한 확인되지 않은 여러 얘기도 흘러나왔다. 특히 KT 내부 갈등이 공모 과정에서 표출됐다는 것이다. 이석채 전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만큼 KT 인사들의 관여 여부가 갈등 불씨로 작용했고, 결국 추천위가 논란이 된 후보를 전원 제외했다는 것이 선정 과정에서 흘러나온 뒷얘기다.

    KT 개혁을 위한 숙제

    사실 KT 사외이사로 구성된 추천위의 눈높이에 맞는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은 현재 KT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사례이기도 하다. 한 통신업계 임원은 “KT가 가진 막강한 인프라에 비례해 지배구조가 확실치 않은 점은 결국 내부 인재도 죽이고 KT 미래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풍에 흔들릴수록 KT 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고, 이것이 결국 ‘CEO 리스크’의 나쁜 결과라는 것이다.

    KT 차기 회장으로 황 전 사장이 결정됨에 따라 KT의 변화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는 ‘황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진 국내 대표 CEO였다. 특히 198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글로벌 전자기업으로 키워낸 경험과 2010년부터 지식경제부에서 국가R·D전략기획단장을 지낸 이력을 활용해 KT의 기술혁신과 글로벌화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황 전 사장을 유력 후보로 여기지 않은 이유만큼이나 우려의 시선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통신산업이 반도체나 전자제품처럼 R·D를 통한 경쟁력 우위 상품을 만들었다고 성공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산업은 일반 제조업체 CEO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국가 전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나 홀로 혁신’이 어려운 산업”이라며 “단적으로 계열사 54개에 임직원 6만여 명의 거대 조직을 파악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삼성전자 같은 전자 제조업체가 통신업체와 ‘물과 기름’ 관계를 유지한 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KT 내부에서 황 전 사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환영’ 일색이다.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바꾼 이력처럼 KT의 혁신과 글로벌화에 필요한 적임자라는 평가다. 실제 외부 CEO가 KT에 온 경우는 적지 않지만, 글로벌 기업 CEO가 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 바람대로 황 전 사장이 KT를 바꿀지는 3년 뒤 가늠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KT 내부, 외부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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