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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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고깃국물 “추위 물렀거라”

서울 설렁탕

  •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3-12-16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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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끈한 고깃국물 “추위 물렀거라”

    뜨끈한 설렁탕은 겨울에 제격이다.

    설렁탕은 서울 음식이다. 외식이 본격화한 19세기 말부터 ‘탕반 하면 대구가 따라붙는 것처럼 설렁탕 하면 서울이 따라붙는다. 이만큼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이다. 설렁탕 안 파는 음식점은 껄넝껄넝한 음식점이다’(‘동아일보’ 1926년 8월 11일자).

    서울 설렁탕이 처음 규모를 갖춘 곳은 남대문 밖 잠배(현 중림동)였다. 20세기 초까지 남대문 안쪽에는 한성에 물건을 공급하는 선혜청 창내장(현 남대문시장)이 있었고, 남대문 바깥쪽엔 한강을 따라 올라온 생선을 주로 파는 칠패시장이 있었다. 새벽에 장이 열리는 칠패시장 때문에 어물전 상인과 인부들은 새벽부터 문을 여는 식당이 필요했다. 칠패시장 주변 잠배 설렁탕은 필연이 만든 산물이었다.

    지금 중림동에는 ‘중림장 설렁탕’이 있다. 1970년대 영업을 시작한 집이지만 설렁탕 맛에 있어서는 서울을 대표할 만하다. 적당히 익었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김치와 깍두기가 설렁탕에 앞서 기대감을 갖게 한다. 고기 냄새 살짝 나는 따스하고 깊이 있는 국물은 설렁탕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수육도 설렁탕에 뒤지지 않는다. 차돌 부위를 두껍게 썰어낸 소위 ‘차돌양지’는 고기 씹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폭 삭은 머리고기는 입에서 소멸한다. 잠배 설렁탕 전설이 환생한 느낌이 든다.

    잠배에 있던 설렁탕 식당들은 1900년 경인철도 남대문정거장이 세워지면서 급속히 몰락한 칠패시장과 운명을 같이한다. 하지만 6·25전쟁 이전까지 잠배골에선 ‘잠배설렁탕’이란 집이 유명했다. 서울시청 건너편 중앙일보사 주변에 있는 ‘잼배옥’은 33년 창업한 뒤 몇 번의 이사를 거쳐 74년 지금 자리에 터를 잡아 영업하고 있다. 이름이나 주인 증언으로 봐서는 잠배골 설렁탕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잼배옥’은 설렁탕보다 수육이 더 유명하고 맛있다. 정갈하고 탄력 있는 양지수육이 좋다.

    현 종로타워 뒤켠인 이문(里門)은 당시 도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자 검문소가 있었고, 나무시장이 주변에 있었다. 이문 안쪽에는 ‘이문’이란 이름을 단 식당이 많았다. 구한말 세워졌다 사라진 ‘이문옥’과 20세기 초반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이문식당’, 1920년대에 기록이 남아 있는 ‘이문설농탕’은 모두 설렁탕을 팔던 식당이다. 지금 ‘이문설농탕’은 60년에 현재 주인의 어머니가 양씨 성을 가진 주인에게서 인수한 것이다.



    ‘이문설농탕’은 일제강점기 때 유명했던 홍종환 씨가 운영한 ‘이문식당’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전 주인 양씨가 ‘이문설농탕’을 홍씨에게서 인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문식당’은 20세기 초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를 풍미한 주먹 김두한이 ‘이문식당’에서 어린 시절 종업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지금 ‘이문설농탕’ 맛은 좀 심심한 편이라 진한 고기맛과 구수한 향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종종 논란 대상이 된다.

    신촌과 마포도 설렁탕 하면 빠질 수 없는 동네다. 신촌 설렁탕은 1960년대 이후 형성됐다. 70년대 택시기사가 많이 이용했지만, 현재 신촌설렁탕이란 이름은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신선설농탕’ 2호점이 세련된 설렁탕을 선보이며 강자로 등극했다. 마포에선 ‘마포양지설렁탕’과 ‘마포옥’, 그리고 여의도에선 ‘양지설렁탕’이 유명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양지를 기반으로 한 고기맛과 단맛이 동시에 나는 국물이 일품이다. 굵은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점도 마포 설렁탕 식당의 공통된 특징이다. 최근 들어 강남에는 유기농 최고급 한우 등급을 사용한 설렁탕도 등장했다.

    쇠고기의 모든 부위를 넣어 끓여 먹는 설렁탕은 한정된 고기를 많은 사람이 나눠먹기 가장 좋은 요리법이다. 겨울은 설렁탕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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