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6

2013.12.09

“발 못 붙이는 2인자…김정은 유일권력 공고화”

  •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donykim@kyungnam.ac.kr

    입력2013-12-09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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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못 붙이는 2인자…김정은 유일권력 공고화”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7월 25일 6·25전쟁 정전 60주년(7월 27일) 행사를 앞두고 평양에 있는 조선인민군 전사자 묘지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장성택 실각설이 제기된 이후 쏟아진 분석은 대체로 북한의 불안정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2인자인 장성택이 군부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축출됐고, 군부의 득세로 향후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정책 역시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결국 체제 불안정성이 가중되리라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북한의 대남정책이 한층 강경해질 것이라는 견해도 이어진다.

    그러나 뒤집어 보자면, 장성택 실각 소식이 확인해준 가장 명확한 사실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2인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른바 ‘김정은·장성택 공동통치’ 혹은 ‘사실상 섭정체제’라는 시각이 대부분 과장됐음을 확인해줬다는 뜻이다. 그간 북한의 인사 변동에 대한 상당수 분석은 이 틀에 의해 제기됐고, 최근 권력투쟁설이 흘러나온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조차 장성택 라인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실각이 확인된 지금 북한에선 오로지 수령의 유일지배체제만 인정되고, 김정은에 충성하느냐 충성하지 않느냐에 따라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분명해진 셈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권력투쟁설을 다시 살펴보자. 어느 사회에서나 세력다툼은 불가피하고, 북한 체제에서도 이익을 둘러싼 다툼이 통상적으로 벌어진다. 그러나 파벌을 형성하는 이른바 ‘종파 행위’를 가장 엄중한 반당행위로 간주하는 북한에서, 그것도 이미 여러 차례 권력에서 밀려난 경험이 있는 장성택이 자기 사람들을 공공연히 파벌화했다는 주장에는 한계가 있다.

    유일지배 오로지 충성경쟁뿐

    최룡해와의 권력투쟁이라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먼저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군 출신이 아니다. 현재는 차수 계급장을 달고 군복을 입었지만, 엄연히 당 관료 출신으로 김정은이 당을 중심으로 군권을 장악하려고 내세운 인물이다. 다시 말해 최룡해는 북한 군부를 견제하는 인물이지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장성택의 실각이 사실이라 해도 이를 최룡해와의 갈등 혹은 대립 결과로 평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장성택의 실각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이는 김정은 정권의 안정과 권력의 공고화를 반영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은 지난 2년 동안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완전한 ‘김정은 시대’를 열려고 대대적인 인사 조치를 단행해왔다. 군단장 이상 군부 핵심 지위의 90%를 교체했고, 이제는 장성택이 맡아온 조선노동당 행정부를 정리함으로써 유일지도체제 구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잦은 인사 교체를 두고 북한의 체제 불안정을 의심하거나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현실은 오히려 점차 김정은 체제가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에 가깝다. 2012년 7월 이영호 총참모장의 해임 당시 이를 권력 불안정의 신호로 봤던 해석이 빗나간 것처럼, 장성택의 실각 이후 김정은 정권이 오히려 안정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기본적으로 당 행정부의 주요 기능은 북한 내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등 공안기구의 활동을 감시하는 것이다. 경제 불안이 체제 불안정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았던 김정일 시기, 이중의 감시통제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이들 사정감찰기구의 수장은 모두 ‘김정은 사람’으로 교체됐고, 직접적인 통제가 가능해졌다. 이렇게 보면 당 행정부는 옥상옥(屋上屋)으로, 오히려 김정은의 유일지도체제를 방해하는 형국에 가깝다. 정리 혹은 기능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최근 평양이 적극 추진하는 경제정책의 중심이 내각의 국가경제개발위원회라는 점, 특히 이에 소요되는 자금의 획득과 운용을 지금까지 당 행정부가 주도해왔다는 사실은 변화를 한층 피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당 행정부의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처형은 단순히 개인비리 혐의를 넘어 장성택과 행정부의 무력화라는 의미를 갖는다. 쿠바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부정부패 척결을 제1과제로 내세운 전례를 감안하면 당 행정부를 ‘비리의 온상’으로 만들어 향후 경제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 경고하려는 조치로도 풀이할 수 있다.

    김정은의 충직한 부하로 복귀할 것

    그간 장성택이 경제개혁 중심에 서 있었고 그 실무자들 역시 소위 ‘장성택 사람들’로 분류되던 인사라는 점을 들어 장성택의 실각이 북한의 보수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최근 북한이 추진하는 경제개발특구 중심의 개혁·개방정책에 대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권력투쟁의 결과로 군부가 실권을 잡은 것이 아닌 이상, 북한 정책이 후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6·28방침, 경제발전·핵무력 병진노선, 경제개발특구 정책은 이미 공식 채택돼 궤도 위에 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간의 외자유치 사업에서 장성택이 차지한 위상에 대해서도 이론의 여지가 있다. 대풍그룹 등이 나눠 맡고 있던 이 기능이 내각의 국가경제개발위원회로 통폐합된 일련의 과정에서 오히려 그의 구실이 상당히 축소됐을 개연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빠른 속도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점에 불안을 느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때문에 그가 내부적으로 속도 조절 필요성을 여러 차례 표출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아직 40대인 김기석 전 합영투자위원회 부위원장을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전 세계 경제개발특구 개발 사례와 관련한 6000쪽 분량의 자료를 직접 전달하고 적극적인 추진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한 김정은 본인의 의지는 그만큼 확고하다는 뜻이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장성택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것이 북한이다. 분명한 점은 그가 다시 나타난다면 이는 화려한 복귀가 아니라 이전보다 한결 더 충성스러운 ‘김정은의 부하’로서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큰 줄기를 명확히 이해해야만 지금 평양에서 벌어지는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정확히 평가하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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