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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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불면 아바이마을 냉면 생각

속초냉면 or 함흥냉면

  •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3-12-02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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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바람 불면 아바이마을 냉면 생각

    속초 단천식당의 명태회냉면.

    고향을 잃은 자에게 음식은 추억의 실체다.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그 음식에 고향 이름을 붙인다. 함경도 ‘국수’는 그렇게 ‘함흥냉면’이 됐다. 함흥으로 대표되는 함경도 사람들의 면 문화는 부산에서 밀면이 됐고, 서울에선 함흥냉면, 속초에선 속초냉면 혹은 함흥냉면이 됐다.

    함흥냉면은 1950년 6·25전쟁 이후 대규모 피난민 때문에 만들어진 음식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51년 피난 수도 부산에서는 실향민이 세운 냉면집들이 영업을 시작한다. 54년 미군이 찍은 사진에는 ‘함흥냉면옥’이 회국수란 이름과 함께 등장한다. 51년 속초에도 ‘함흥냉면옥’이란 식당이 장사를 시작한다.

    함흥냉면옥은 지금도 영업을 한다. 함흥냉면옥이 있던 속초시 중앙동은 당시 지번도 없던 땅이었다. 함흥냉면옥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주소가 만들어졌다. 중앙동 건너편 아바이마을에 함경도 사람들이 집단으로 정착했다. 사람이 살지 않던 모래사장에 함경도 어마이, 아바이는 떠나온 고향별로 모여 살았다.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함경도 사람 10만여 명이 고향을 떠났다. 거제도에 내린 피난민은 거제와 부산 등에 정착하기도 했지만, 고향과 가장 가깝고 미군정이 실시되던 비교적 안전한 속초로 가장 많이 모여들었다. 양양군의 작은 포구였던 속초는 지금까지도 실향민 비율이 가장 높은 땅으로 남았다.

    함경도 실향민 집단 정착지 아바이마을에 함흥냉면집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함경도식 육개장인 가리국과 함흥냉면을 함께 파는 ‘신다신식당’과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단천식당’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바이마을 터줏대감 구실을 한다. 단천식당은 몇 년 전 불이 나면서 현대식 3층 건물로 변했다. 다신식당은 창업주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들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이름도 신다신식당으로 바꿨다. 두 식당을 창업한 할머니들은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씩씩하고 생활력 강하기로 소문난 함경도 어마이에겐 세월도 비켜 갔다. 함흥냉면의 질기고 매운맛이 종종 함경도 어마이 기질을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일제강점기 함흥에서는 주로 감자전분으로 만든 질긴 국수를 고기육수에 말아 먹었다. 국수 꾸미(고명)로는 가자미식해가 가장 많이 올랐다. 이 국수를 ‘회(膾)국수’라 불렀다. 육고기가 올라가면 ‘육(肉)국수’란 이름이 붙었다. 1920년대 기록에는 함경도 일대에서 먹던 국수에 관한 기사가 자주 나온다. 20년대 함경도에선 국수가 대중적인 외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회국수, 육국수, 국수와 더불어 ‘농마국수’란 이름도 썼다. 감자전분으로 만든 국수를 농마국수라 부른다. 지금 함흥을 대표하는 국수집 ‘신흥관’에서는 이 농마국수를 판다. 추억의 음식을 재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기후와 재료 차이다. 남한에서 가자미는 함흥이나 흥남보다 덜 잡힌다. 그래서 가자미 대신 명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감자전분 대신 고구마전분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도 함경도 농마국수는 국물이 있는 물국수다. 하지만 남한에서 함흥냉면은 국물이 점차 사라진 비빔냉면이 됐다. 매웠던 맛은 단맛이 강해졌다. 질긴 면발을 오물오물 씹으며 먹던 문화는 가위로 면발을 끊은 뒤 마시 듯 먹는 섬뜩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긴 국수를 잘라먹는 습관은 무지에서 온 서글픈 현실이다.

    찬바람 부는데 무슨 냉면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평양이든 함흥이든 북한에서 냉면은 원래 겨울이 제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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