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5

2013.12.02

개미의 똑똑한 ‘집단지성’ 정치인은 모르나 봐

나보다 우리가 현명한 ‘대중의 지혜’ 공감과 설득, 조율할 때 생겨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beomjun@skku.edu

    입력2013-12-02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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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의 똑똑한 ‘집단지성’ 정치인은 모르나 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문가 몇 명의 의견을 따르는 것보다 평범한 일반인 다수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간혹 필자의 연구주제로 대중 강연을 할 때가 있다. 강연장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이 있는데, 필자 몸무게가 얼마나 될지 청중에게 맞춰보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말고 각자 어림한 수치를 적어내라고 한 뒤 그 결과를 모아 강연에 참석한 청중 수로 평균을 내면, 필자의 실제 몸무게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나온다.

    독자들도 한 번 해보길. 필자 경험으로는 10명 정도만 해도 상당히 정확한 예측치가 나온다. 사실 청중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필자 몸무게를 정확히 맞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적어낸 몸무게 예상치를 모아 평균을 내면 필자의 실제 몸무게와 상당히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보통선거’는 대중의 지혜에 근거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TV 퀴즈프로그램을 보면, 도전자가 답을 모를 경우 “찬스”를 외치고 촬영장에 있는 청중에게 의견을 물어 다수 의견에 따라 답을 고르는 경우가 있다. 분석에 따르면, 이처럼 단순히 다수결에 따라 답을 고를 때가 해당 분야 전문가 한 명에게 답을 묻는 것보다 정답을 맞히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것보다 평범한 일반인 다수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니 말이다. 이처럼 사람이 집단적으로 만들어내는 의견은 옳을 때가 많다는 것을 ‘대중의 지혜’라고 표현한다. 혹은 ‘집단지성’이라고 부른다.

    ‘대중의 지혜’를 이용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아주 많다. 대표적인 예가 투표다. 우리나라의 다음 대통령으로 누가 좋을지 정치학과 교수 소수에게 물어보지 않고, 필자나 독자처럼 정치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집단적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하는 보통선거는 이처럼 ‘대중의 지혜’에 근거를 둔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시행하는 국민참여재판이나 미국 배심원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법률 분야 최고 전문가라고 할 판사 한 사람이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것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러 일반인의 집단적인 결정이 더 옳을 수 있다는 게 이 제도를 만든 취지다.



    ‘집단지성’을 제대로 발휘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있다.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의 배경이 다양해 서로 다른 이유로 각자 결정을 내리되, 다른 이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다. 비슷한 사람만 모아서 물어보는 것은 그중 한 사람에게만 묻는 것과 다를 바 없고, 다른 이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면 목소리 큰 사람의 편향된 의견으로 집단 전체의 의견이 몰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개별 회사의 주가는 어떻게 결정될까. 고전경제학에서는 한 회사의 주가는 그 회사가 미래에 거둘 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더한 값이라고 얘기한다. 문제는 당장 내년도 아니고, 내후년 혹은 10년 뒤, 심지어 50년 뒤 그 회사가 얻을 수익을 그 누가 알겠느냐는 것이다(‘주간동아’ 880호, 883호 ‘물리학자 김범준의 이색 연구’ 참조).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주가의 정의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처럼 주가를 계산할 수는 없다. 개개인은 한 회사 주식의 정당한 가격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까지 모두 반영한 현재 가치를 알 수 있을까. 이런 계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주식시장이다.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은 스스로의 판단에 근거해 한 회사의 현재 가치를 어림한다. 마치 강연에서 필자의 몸무게를 짐작한 청중처럼 말이다. 본인이 적정 가격이라고 짐작한 주가가 현재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가보다 높으면 지금 그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이 좋다. 거꾸로 본인이 짐작한 주가가 현재 주가보다 낮으면 앞으로는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으므로 당장 그 회사 주식을 매도하려 할 것이다.

    주식은 회사 가치평가 계산기

    개미의 똑똑한 ‘집단지성’ 정치인은 모르나 봐

    개미가 표면이 서로 다른 길 위를 이동할 때 표면의 성질을 고려해 직선이 아닌 꺾은선 모양으로 경로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개미는 ‘대중의 지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이처럼 한 회사의 적정 가치를 많은 사람이 제 나름대로 판단해 매수와 매도를 하게 하면 그 회사의 현재 주가는 많은 사람의 예측 주가의 평균값으로 수렴하게 되고, 앞서 설명한 ‘대중의 지혜’를 생각하면 바로 그 평균값이 회사 주식의 참 가격일 개연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주식시장은 회사 가치를 계산하는 계산기’라고 한다. ‘대중의 지혜’를 이용해 말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예측을 합리적으로 거래하는, 대중이 참여하는 시장을 만들라. 이러한 예측시장이 현재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미국 ‘대통령 후보 거래 시장’이다. 이 예측시장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일종의 주식처럼 거래된다. A후보가 당선하리라 확신하는 사람은 A의 주식을 사고, A가 당선하리라 믿다가 마음을 바꾼 사람은 그 주식을 판다. 이 과정에서 각 후보의 주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동하게 된다.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의 예측시장을 보면, 각 후보의 ‘주가’ 움직임만으로도 누가 대통령이 될 개연성이 높은지 선거 한참 전 미리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는 각 후보 테마주의 주가 움직임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만 이처럼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동물도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훌륭한 해결책을 찾는다. 대표적인 예가 개미의 길 찾기다. 굴에서 나온 개미들은 시간이 지나면 먹이가 있는 장소에 도달하고 그 먹이를 부지런히 집으로 나른다. 많은 개미가 한 줄로 이동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때 개미가 만드는 길이 먹이와 집 사이를 잇는 상당히 효율적인 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출발점과 도착점을 잇는 무한히 많은 경로 가운데 이동시간이 가장 짧은 길이라는 뜻이다. 지표면이 거칠어 개미가 천천히 갈 수밖에 없는 영역과 개미가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나란히 있다면 표면이 거친 부분의 이동거리는 줄이고 표면이 매끄러워 빨리 갈 수 있는 부분의 이동거리는 늘리는 것이 좋을 텐데, 실제 개미의 이동경로가 바로 그렇다(그림 참조).이처럼 개미도 ‘대중의 지혜’를 바탕으로 아주 효율적인 집단 이동경로를 만들어낸다.

    개미의 똑똑한 ‘집단지성’ 정치인은 모르나 봐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법정에서 재판에 앞서 선서하고 있다.

    물리학에서는 이러한 ‘최소 시간의 원리’를 ‘페르마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빛이 공기 중에서 물속으로 진행할 때 꺾이는 이유도 ‘최소 시간의 원리’로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 빛의 이러한 효율적인 진행에 참여하는 수많은 빛알(광자)이 지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미 집단이 함께 효율적인 길을 찾았다고 해서 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똑똑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얘기를 뒤집으면,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똑똑하지 않고 또 경로를 효율적으로 만들려는 의지조차 없다고 해도 전체 개미 집단은 똑똑한 행동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대체 개미 집단은 어떻게 이처럼 효율적인 길을 찾아낼까. 개미가 움직이는 모습을 잘 들여다보면 한 마리 한 마리의 행동규칙이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다른 친구 개미가 앞서간 흔적이 있으면 보통 그 흔적을 따라간다. 이 과정을 따라가기(exploitation)라 부르자. 하지만 개미가 이처럼 따라가기만 한다면 당연히 새로운 먹이를 찾을 수 없다.

    개미도 “무조건 따르라” 하지 않아

    이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가 아프리카 개미 집단에서 보고된 바 있다. 개미들이 수백m 길이의 큰 원모양 경로를 만들고는 모든 개미가 다 죽을 때까지 계속 그 원을 따라 행진했다고 한다. 비슷하게 수많은 애벌레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돌다가 죽는 모습을 관찰한 곤충학자도 있다. 다름 아닌 파브르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려면 개별 개미는 아직까지는 찾지 못했지만 다른 먹이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돌아다니기(exploration)도 해야 한다. 여기서 또 한 번 가정해보자. 개미들이 돌아다니기만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연히 좋은 먹잇감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다 해도, 다른 개미들이 따라가기를 하지 않으니 집단 전체에 큰 이득을 줄 수 없다. 개미가 효율적인 길을 만들려면 따라가기와 돌아다니기가 절묘하게 섞여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개미의 길 찾기는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만약 우리 사회 대다수가 한 사람이 정한 길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길이 목표에 도달하는 최적의 길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길이 수많은 개미가 무작정 따라 걷다 모두 죽게 되는 그런 길이라면 어쩌겠는가(‘주간동아’ 907호 ‘물리학자 김범준의 이색 연구’ 참조). 반대로 우리 사회 대다수가 돌아다니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누군가 좋은 해결책을 찾아도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으려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중의 지혜’를 성공적으로 발현하려면 당연히 따라가기와 돌아다니기 둘 다 필요하다. 거기에 개미가 아닌, 우리 사람이 보탤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의견 나누기의 상호작용이다. 따라가다가 이 길이 맞는지 다른 사람에게 물을 수 있고, 돌아다니다가도 좋은 길을 찾으면 따라오라 설득할 수 있으며, 서로 의견이 다르면 조율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이 많이 보여주는 ‘내 길이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개미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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