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5

2013.12.02

재무 준비 없이 ‘웰다잉’ 없다

경제적 비용 수반되는 만큼 적절한 금융 솔루션 고민해야

  • 이새롬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serom.lee@woorifg.com

    입력2013-12-02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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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무 준비 없이 ‘웰다잉’ 없다
    개인에게는 어떤 삶을 사느냐 못지않게 삶을 어떻게 잘 마무리하느냐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100세 시대가 본격화하고 초고령 기간이 늘어나면서 노후를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사전 준비를 통해 개인의 삶을 잘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웰다잉은 죽음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연명치료나 심폐소생술 거부, 임종 장소 선정, 장례 및 기부 의향서 사전 작성 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완화치료 등을 통해 말기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따라서 웰다잉에서는 간병 등의 서비스가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서비스는 당연히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는 만큼 이를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재무적 솔루션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이다.

    호스피스·간병 등 수요 증가

    우리나라에서 삶의 편안한 마무리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확장된 계기는 2009년 대법원에서 존엄사 인정을 받은 ‘김 할머니 사건’이었다. 당시 할머니 가족은 할머니의 평소 뜻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고, 병원이 이를 거부하면서 해당 사건은 대법원으로 갔다. 대법원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락함에 따라 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한 사건이 됐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연명치료보다 편안한 삶의 마무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최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졌다.

    초고령 기간이 늘어나면서 치료비, 그중에서도 수명 연장을 위한 치료비가 점차 증가한다는 점도 경제적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생애 의료비에서 65세 이후 비용의 비중은 남성 48.6%, 여성 52.5%이고, 특히 사망 전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인 사망자 4명 중 1명이 암이 원인인데, 말기환자의 경우 사망 1개월 전 의료비가 256억 원으로 6개월 전 의료비보다 116억 원이나 더 많다(그래프 참조). 해당 비용에는 컴퓨터 단층촬영(CT) 같은 검사비와 항암치료비 등 통증완화보다 질병치료의 비중이 높다. 이에 따라 웰다잉에서는 높은 비용을 수반하는 질병치료보다 호스피스, 간병 등 완화치료에 초점을 두며, 앞으로 고령인구가 더 늘어나면서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시중에는 이런 수요를 감당할 금융상품이나 서비스가 아직 충분치 않다. 웰다잉이라는 개념 자체가 주목받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꼽자면 민영 간병보험과 실버보험을 들 수 있다.

    재무 준비 없이 ‘웰다잉’ 없다

    웰다잉 강좌에 참석한 수강생들이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는 연습을 하고 있다.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인생 순리로 여기는 연습이다.

    민영 간병보험은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시행하면서 도입한 상품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등의 비용을 지원하는 사회보험제도이다. 따라서 민영 간병보험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장기요양등급(1~3등급으로 분류) 인정자를 위한 보험상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치매 등의 질환이 발병할 경우 치료비나 간병비, 장례비 같은 실비를 지급하는 다양한 실버보험 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보험사들이 앞다퉈 상품을 출시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최근 추세다. 그러나 이들 민영 간병보험이나 실버보험은 대부분 치매에 보장이 집중됐거나 일시금 형태로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가입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연금 형태의 지급은 아직까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웰다잉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완화치료나 방문 서비스에 대한 보장도 극히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재무 준비 없이 ‘웰다잉’ 없다
    토털 상품과 서비스 개발 필요

    웰다잉은 사망 전까지 필요한 치료비뿐 아니라 사망 이후의 원활한 관리도 포함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조 서비스의 구실이 크다. 보험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상조시장 규모는 현재 연간 7조 원에 달하며, 향후 10배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조시장의 성장성이 높다 보니 금융회사들은 상조 관련 상품 출시를 확대하는데, 은행들은 상조 예·적금을, 보험사들은 상조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상조업체의 횡령사건 등으로 소비자의 신뢰가 낮은 데다, 금융회사에서 판매하는 상품 또한 상조업체와 제휴한 것인 만큼 서비스 제공 방식에서 상조업체를 직접 이용하는 것과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상조 금융상품이 웰다잉의 핵심 구실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중에 나온 금융상품 대부분이 이러저러한 한계를 안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간병, 요양, 홈케어(home care) 관련 비용을 보장하는 다양한 상품이 출시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상속설계 등을 통해 사후 관리까지 해주는 토털솔루션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민영 건강보험에서 호스피스, 간병에 대해서도 특약 등을 통해 보험금을 지급한다. 또한 자신의 추억이 담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임종을 맞고 싶어 하는 고령자의 니즈를 반영해 방문서비스 등 홈케어에 대한 보장도 확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개인 니즈에 따라 간병비, 요양비를 지원하는 다양한 신탁상품을 판매하고, 사망 전뿐 아니라 유언신탁이나 기부신탁 등을 통해 사후까지 원활하게 관리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러한 해외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웰다잉과 관련해 고령자의 좀 더 다양한 재무적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웰다잉은 아무런 준비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100세 시대’는 더욱더 그렇다. 이를 원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알맞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기업과 사회의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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