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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행복여행 | 네팔 바그마티 강

시간은 멈추고 생로병사는 흐르고

힌두사원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연기 냄새…강은 오염됐지만 가장 성스러운 장소

시간은 멈추고 생로병사는 흐르고

시간은 멈추고 생로병사는 흐르고

파슈파티나트와 바그마티 강 옆쪽에 자리한 스투파들.

‘여행은 인생의 스승’이라는 금언이 있다. 인생을 절절하게 가르쳐주는 교사라는 뜻이다. 여행은 인생 공부의 현장학습이자 예습과 복습이기도 하다. 보드나트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데오파탄(Deopatan) 마을에서 생각해보는 말이다. 데오파탄 마을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네팔에서 최고로 여기는 힌두사원 파슈파티나트가 있고, 인도 강가 강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바그마티(Bagmati) 강이 흐른다.

파슈(Pashu)는 ‘생명체’, 파티(Pati)는 ‘존엄한 존재’, 나트(Nath)는 ‘사원’이란 뜻이니 ‘뭇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는 사원’이다. 그런가 하면 파슈파티는 ‘모든 동물의 주인’이란 뜻도 있다. 파슈파티나트는 477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네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데, 현재 모습은 1697년 말라 왕조 부파틴드라(Bhupatindra) 왕(1696~1722) 때 완성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말라족은 원래 인도 쿠시나가라에 살던 종족인데, 어떤 연유로 네팔 땅으로 북상했는지 궁금하다. 말라족이 살던 쿠시나가라는 석가모니 부처가 전생에 살던 고향인 바, 그 인연으로 석가모니 부처는 쿠시나가라로 찾아가 열반에 들었고 화장터에서의 다비는 말라족 사람들 손에 의해 행해졌던 것이다.

파슈파티나트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장막을 친 듯한 연기가 시선을 유혹한다. 초입에 기념품 가게들이 난장을 이루지만 순례자들의 시선은 건성이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불온한 연기냄새 때문이다. 벌써 코를 감싸 쥔 사람도 보인다. 1995년 한 번 온 곳이지만, 시선을 잡아당기는 강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별하는 가트

시간은 멈추고 생로병사는 흐르고

장례를 지내는 사람들이 시신을 태우기 전 바그마티 강물에 적시고 있다. 바그마티 강 가트에서 시신이 불에 태워지고 있다. 소년들이 바그마티 강으로 흘려보내는 시신의 재 속에서 나온 노잣돈을 줍고 있다(위부터).

그렇다. 나와 지인들의 관심은 파슈파티나트가 아니다. 더구나 파슈파티나트는 힌두교 신자가 아니면 출입이 불가하다. 지붕을 황금으로 치장한 사원 본당 입구에는 제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지금도 힌두교 신자인지 아닌지를 엄격히 가리고 있을 것이다. 내 관심은 파슈파티나트 옆구리를 스치는 바그마티 강의 가트(Ghat)다. 가트란 시신을 태우는 공간으로, 금생의 삶을 공식적으로 마치는 곳이다. 망자의 영혼을 바다로 떠나보내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별하는 지점이다.

강은 오염돼 난치병 환자처럼 몸살을 앓는다. 그러나 어린 소년들은 그 환자의 품속에서 뭔가를 찾는다. 강물 속에 사는 피라미를 잡듯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한다. 나도 어린 시절 그랬다. 어른을 따라서 개울로 나가 바위 밑을 더듬으며 붕어를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바그마티 강의 소년들은 그게 아니다. 물고기가 아닌 망자가 가지고 떠날 노잣돈과 금니 따위를 더러운 강물 속에서 줍고 있다. 일용할 한 끼의 양식을 구하는 소년들이다. 소년들에게 강물은 더럽지 않다. 학용품도 사고 신발도 살 수 있는 터전이다. ‘반야심경’의 불구부정(不垢不淨)을 바그마티 강이 보여준다. 강은 본래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다. 세상을 좁게 보는 육안(肉眼)이 이리저리 분별할 뿐이다.

길가에 원색으로 분장한 사두(Sadhu)들이 앉아 있다. 동물 모양의 탈을 쓴 사두도 있다. 기이한 모습인데 시바가 그렇게 생겼다고 한다. 힌두교 수행자들이다. 사진을 찍으면 돈을 내라며 손을 내민다. 사두에도 가짜가 있고 진짜가 있나 보다. 내가 예전에 본, 평생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사두는 보이지 않는다.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수행하고 내려온 그는 순례자들에게 존경받는 사두였다.

강 건너 가트에서는 시신들이 연기를 피우며 태워지고 있다. 대기하는 시신도 있다. 시신에 불을 붙이는 장남은 삭발을 한다고 한다. 실제로 삭발하고 흰옷을 입은 사내들이 보인다. 시신에도 급이 있다. 파슈파티나트 안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경계로 남쪽(순례자들이 들어오는 출입구 방향) 람(Ram) 가트는 일반인의 시신이, 사원 본당 앞인 북쪽 아리아(Arya) 가트는 왕족이나 정치지도자의 시신이 태워지는 곳이다.

한눈에 봐도 시신을 두른 천이나 시신에게 뿌려진 꽃 양이 다르다. 람 가트의 시신을 에워싼 가족의 옷차림에도 차이가 난다. 남루한 옷차림에 표정은 무표정하다. 울면 시신이 홀가분하게 떠나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삶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울 힘도 없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힘든 우리 서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바그마티 강에 흘려보내는 저 망자들의 영혼 무게는 모두 평등하지 않을까.

다리 위쪽으로 올라가보니 역시나 아리아 가트에 올려놓은 시신의 계급이 느껴진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가족이 그것을 대변한다. 시신을 태울 향나무 장작도 넉넉하다. 람 가트와 달리 여기서는 통곡하는 사람도 있다. 부귀영화를 더 누리지 못하고 떠나는 망자의 영혼이 억울해서 그러는 것일까. 뚱뚱한 가족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이야기지만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는 둥그런 제단이 강가 곳곳에 자리한다. 망자를 보내고 난 뒤 브라만의 지시대로 가족이 모여 지낸다고 한다. 바그마티 강이 망자의 무덤인 셈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 ‘생사일여’ 깨달음

예전에는 49일 동안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은 13일로 간소화했다고 한다. 왜 시신의 입부터 불을 붙이느냐고 묻자 하리가 대답한다.

“사람의 업은 대부분 입으로 짓는다고 해서 입부터 불을 붙이는 겁니다. 보통 아버지는 장남이, 어머니는 막내가 불을 붙이죠. 바그마티 강에 시신의 재를 흘려보내는 이유는 조상이 바다에 산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흘려보내면 결국 바다에서 조상과 만나 함께 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바그마티는 ‘어머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는 인도 강가 강과 마찬가지다. 어머니 자궁에서 태어나 어머니 자궁으로 돌아간다는,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깨달음을 준다.

“시신 머리는 북쪽 수미산을 향하게 합니다. 신이 계시는 곳이 북쪽이기 때문입니다. 장작 위에 볏짚을 올린 까닭은 불이 잘 붙게 하기 위한 것이고, 부자는 향나무 장작을 사용합니다. 향나무는 시신이 타는 냄새를 중화해줍니다. 시신은 2~3시간 탑니다. 화장을 집행하는 사람의 계급은 브라만이고, 화장비는 3000루피 정도입니다. 화장한 뒤 가족은 13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13일째에 죽은 이가 극락에 간다고 생각하므로 그렇습니다.”

물론 13일 동안의 외출을 지키는 사람은 드물 테고, 눈치껏 귀가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불효자식은 있게 마련이니까. 내 뒤쪽으로 작은 스투파들이 모여 있다. 스투파 안을 살펴보니 맷돌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농기구가 아닌, 창조의 신 시바의 상징물이다. 뭉툭하게 솟은 남근(男根)이 시바링가(Siva Linga)고, 링가를 받친 둥그런 석조가 여음(女陰) 요니(Yoni)다. 저 링가와 요니가 결합해 있으니 생명체 창조가 가능할 것이다. 사두들이 기도하면서 링가에 붉은색 안료를 묻히곤 하는데 그것이 빳빳하게 발기한 성기를 연상케 한다. 나만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위로 오르니 강물이 가트 부근보다 맑다. 젊은 연인이 강물에 서로의 손을 적시고 있다. 강물에 몸을 적시면 죽은 뒤에도 다시 부부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전설 따라 삼천 리 같은 이야기다. 강물이 맑아서인지 빨래하는 해맑은 아낙네들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바그마티 강에 와서 생로병사를 다 본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행을 인생 공부의 예습과 복습이라 할 것이다.

입력 2013-11-11 11:27:00

  • 정찬주 소설가 ibulj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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