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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연합 20년…하나의 꿈 갈 길 멀다

재정위기 심화 反EU 정서 확산…실질적 통합엔 많은 시간 필요

유럽연합 20년…하나의 꿈 갈 길 멀다

유럽연합 20년…하나의 꿈 갈 길 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본부 건물.

“유로존 붕괴가 어떤 나라에도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불행한 결혼’을 지속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이 없다.”(영국 ‘화폐와 재정 포럼’의 데이비드 마시 회장)

“유럽연합(EU)이 단 한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라틴민족 국가들은 단결해 독일에 대항해야 한다.”(로마노 프로디 전 EU 집행위원장이자 전 이탈리아 총리)

마스트리히트 조약 기념행사 없어

11월 1일은 EU 출범의 시발점이 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특별한 기념행사 없이 그냥 넘어갔다. 4년 전부터 시작된 유럽의 심각한 재정위기 탓에 유럽 통합에 대한 장밋빛 꿈이 시들고 ‘반(反)EU’ 정서가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1992년 2월 유럽공동체(EC) 12개국 정상이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서명해 각국 정부의 비준을 거친 뒤 93년 11월 1일 발효됐다. EU 출범 후 가장 큰 성과는 단일화폐인 유로화 도입이다. 조약에 따라 EU는 99년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을 출범했다. 유로존 국가는 2002년 1월 1일 12개국으로 시작해 현재 17개국으로 늘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EU 회원국은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않도록 규제받는다. 이 규정을 어길 경우 회원국은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적 통합 없이 화폐통합만 서둘러 실시한 데 따른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단일화폐 유통은 회원국이 재정과 금융 정보를 정직하게 제출한다는 신뢰 아래 이뤄져야 하는데, 이러한 믿음이 무너지면서 남유럽 재정위기가 터졌다.

개별 회원국 재정에 대한 EU의 통제권이 강화되면서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의 중앙권력이 강화되는 반면, 개별 회원국 의회의 권한은 약화되고 있다. EU는 3년 전부터 ‘유러피안 시메스터’라는 제도를 통해 회원국의 개혁 정책을 통제한다.

독일이 지배하는 EU의 명암

4년간 4000억 유로를 구제금융에 쏟아부은 유로존은 채무국과 채권국 간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개별 회원국의 예산정책을 통제하는 EU 권력의 핵심은 점점 독일 쪽으로 쏠리고 있다. 역내 최대 경제대국이자 채권국이기 때문이다. 3선 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실질적인 EU 대통령이다.

독일은 지난해 1881억 유로(약 269조7000억 원)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1950년대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두 번째로 큰 흑자 규모다. 이로써 독일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 경상수지 흑자국 1위 자리를 꿰찼다. 독일이 막대한 흑자를 내는 데 기여한 1등 공신은 주변 유럽국가들이다. 지난해 독일 수출에서 유럽의 비중은 70%에 이른다.

독일이 주변국에 의지해 흑자를 키운 반면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국가의 적자는 늘었다. 독일 실업률이 사상 최저인 5.2%까지 하락한 반면, 남유럽국가의 실업률은 26%대로 고공비행 중이다. 특히 올 상반기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은 62.9%, 스페인은 56.1%까지 치솟았다.

1990년대만 해도 적자를 면치 못하던 독일 경상수지는 유로화 출범 이후 빠르게 흑자로 전환됐다. 유로 가치가 하락하면서 독일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유로존 위기 확산으로 독일 국채에 대한 선호 현상이 심화한 덕에 독일은 재정부담 감소라는 이중 혜택도 누렸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독일은 국제사회의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유럽 거품붕괴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독일 자금의 급격한 이탈”이라며 “유로존의 불균형 해소를 일부 국가의 고통스러운 긴축정책에만 의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재무성은 10월 30일 주요 교역국의 경제 환율 정책 보고서에서 독일의 ‘수출 지상주의 정책’에 일침을 가했다. 독일이 수출 호황으로 세계 1위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지만 내수 촉진이나 유로존의 디플레이션을 막는 것을 등한시해 결과적으로 유럽과 세계경제에 폐를 끼친다는 지적이다.

로마노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는 11월 5일 이탈리아 일간지 ‘쿠오티디아노 나치오날’과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독일을 비난했다. EU 20주년을 맞은 인터뷰에서 그의 어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격했다.

“독일 여론은 유럽의 어떠한 경기부양책도 한심한 남유럽을 돕는 부당한 정책이라고 확신한다. 마치 섹스에 대해 공포감을 가진 10대처럼 독일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감에 싸여 있다. 그들은 현재 진정한 문제는 디플레이션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는 “현재 유럽에는 단 하나의 나라, 단 하나의 지배 권력만 있는데 바로 독일”이라며 “유로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 라틴민족 국가들이 독일에 대항해 테이블 위에 주먹을 내리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 20년…하나의 꿈 갈 길 멀다
불평하면서도 탈퇴하지 못하는 EU

유로존의 재정, 금융위기가 장기화하면서 EU에 대한 유럽인의 신뢰도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유럽 주요 8개국 시민 76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EU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은 45%에 불과했다. 지난해보다 15%p나 떨어졌다.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EU 반대’와 유로존 폐지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들이 크게 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EU 정당 중 급부상하는 곳은 프랑스 국민전선으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30%를 넘는 지지율을 얻었다. 네덜란드 자유당과 영국 독립당 등 최소 9개 국가에서 반EU, 반유로를 내건 정당이 원내 제3당 위치에 올라섰고,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기존 정당을 제치고 제1당에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만일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EU 정당이 20% 이상을 차지한다면, 만장일치제로 결정하는 안건이 많은 유럽의회에서 수많은 통합정책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럽 통합을 위한 EU의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EU는 현재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고 금융구조를 개혁하려고 추진하는 은행연합(Banking Union)을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EU는 은행에 대한 단일감독 체제를 구축하고 아울러 단일청산 체제를 마련 중이다. 외교와 국방정책의 통합을 위해서도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폴란드 등 EU 14개 회원국은 3월 EU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EU 대외관계청(EEAS)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의했다.

영국의 EU 탈퇴를 의미하는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도 찬반 논란이 거세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면 2017년까지 EU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친EU 정당인 자유민주당의 닉 클레그는 “캐머런 총리의 공약은 당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영국이 실제로 EU에서 탈퇴하면 그것은 경제적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는 정치·경제적 통합을 위해 노력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정치·경제 통합을 목표로 발효된 20년 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완성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함께 난관을 극복할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유럽연합의 동진과 러시아와의 마찰

28개 회원국에 EEU 결성으로 대항


지난 20년간 경제, 정치, 사법 통합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유럽연합(EU)은 몸집이 2배 이상 커졌다. 조약 체결 당시 12개국이던 EU 회원국은 올해 28개국으로 늘었다. 서유럽국가 중심의 EU는 출범 후 지속적인 ‘동진(東進) 정책’으로 몸집을 불려왔다. 2004년에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체코, 키프로스, 폴란드, 헝가리가 가입했고, 2007년에는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회원국이 됐다. 올해 7월에는 크로아티아가 28번째 회원국이 됐다. 현재 가입 후보국으로는 터키,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아이슬란드,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이 꼽힌다.

EU는 또한 2009년 5월부터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몰도바, 벨라루스, 조지아(옛 그루지야) 등 옛 소련에서 분리된 6개국과 자유무역, 비자 면제, 경제협력을 토대로 하는 ‘EU 동부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EU는 11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EU정상회의에서 이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 성격의 동맹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다.

이러한 EU의 동진은 러시아의 지정학적 패권주의를 자극했다. 러시아는 2010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와 함께 출범한 ‘3국 관세동맹’의 확대를 밀어붙인다. 2015년 옛 소련 국가들을 정치·경제적으로 통합하는 ‘유라시안 연합(EEU)’을 결성해 EU에 대항하겠다는 것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조지아 등 탈(脫)러시아를 꿈꿨던 옛 소련 국가를 상대로 영토분쟁, 군사, 에너지, 무역 보복을 통한 전 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크렘린 행정실장은 “우크라이나가 EU로 기울 경우 러시아와의 항공우주 산업, 조선, 원자력 분야 협력이 중단돼 러시아와의 교역에서 최소 120억 달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유럽경제권과의 통합을 원하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갖은 압박에도 버티고 있다.

짐 클루스 EU 이사회 부총재는 “만일 EU의 단일화폐가 창출되지 않았다면, 지금 유럽은 훨씬 더 가혹한 운명에 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경제지역”이라며 “EU는 옛 소련 지배하의 공산국가였던 동유럽국가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가장 환상적인 시장기회를 얻게 됐다”고 덧붙였다.


입력 2013-11-11 11:23:00

  •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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