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2

2013.11.11

우린 왜 소통할수록 소외되는가

헨리 앨릭스 루빈 감독의 ‘디스커넥트’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11-11 11: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우린 왜 소통할수록 소외되는가
    부모와 10대 남매가 사는 어느 중산층 가정의 일상적인 저녁식사 풍경. 볼륨을 잔뜩 줄여놓은 동영상처럼 조용하다. 아주 이따금 이어지는 대화는 자꾸 어긋나고, 두 마디 이상을 견뎌내기가 힘들다. 그럴수록 모두의 손과 눈은 자꾸 탁자 위에 놓인 휴대전화로 향한다. 아들과 딸은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메시지를 보고 답신을 올리기 바쁘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언제 올지 모르는 회사 혹은 거래처의 전화나 문자메시지에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다.

    미국 영화 ‘디스커넥트’(감독 헨리 앨릭스 루빈)는 소셜네트워크 시대의 역설을 다룬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연결될수록 단절되고, 소통할수록 소외되며, 대화할수록 불신하게 되는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를 다양한 세대와 인종, 직업, 신분의 인물이 겪는 사건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담았다.

    먼저 어린 아들을 잃은 후 남편 데릭(알렉산더 스카르스가드 분)과의 대화마저 단절되고 부부관계도 소원해진 여인 신디(폴라 패튼 분)의 이야기가 있다. 지독한 외로움과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신디는 채팅에 매달린다. 아내와 사별했다는 한 남자와 주기적으로 채팅하며 위안을 얻지만, 어느 날 모든 개인 신용정보를 해킹당해 전 재산을 잃게 된다.

    변호사인 아버지는 항상 일로 바쁘고, 음악을 하고픈 자기 마음도 몰라줘 집에서 늘 겉도는 10대 소년 벤(조나 보보 분).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이 혼자다. 그러던 어느 날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글과 음악에 관심을 표하며 미모의 소녀가 온라인으로 대화를 시도해온다. 벤은 자신의 고민과 음악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마음을 연다. 급기야 소녀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나체 사진을 전송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해당 아이디는 같은 학교 학생 제이슨(콜린 포드 분)이 벤을 골리려고 여학생으로 위장해 만든 것. 벤의 나체 사진은 전교생에게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친구들로부터 농락당하고 모욕당한 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10대 소년 카일(맥스 티에리엇 분)은 성인 화상 채팅 사이트 회사에 불법 고용돼 음란한 채팅과 노출로 푼돈을 번다. 그에게 한 지방 방송국 여기자인 니나(안드레아 라이즈버러 분)가 접근한다. 특종을 위해서다. 카일은 니나의 권유로 익명 인터뷰에 나서고, 보도는 일약 전국적인 화제가 된다. 그러나 미 연방수사국(FBI)이 미성년자를 고용한 성인 화상 채팅 사이트 조직을 수사한다며 니나에게 취재원 공개를 요구한다. 이로 인해 여기자와 10대 소년의 운명은 파국을 향해 간다.



    남편은 아내 마음을 몰랐고, 아버지는 아들 마음을 못 읽었다. 사건이 일어나고서야 부부는 컴퓨터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서로의 비밀과 속마음을 알게 된다. 어린 자식을 잃은 후 남편은 인터넷 도박에 매달렸고, 아내는 낯선 남자와의 채팅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변호사인 아버지는 아들이 비극을 당하고 나서야 페이스북에 담긴 아들의 고민과 생각을 읽는다. 사이버범죄 수사관이던 아버지는 아들이 일으킨 사이버범죄와 맞닥뜨리고서야 아들의 원망에 귀 기울인다.

    현실 공간, 내 곁에 있는 가족에겐 마음을 닫고, 익명과 가상의 세계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의 역설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소통 시대’가 실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소외 시대’였음을 보여주는 아이러니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어색한 대화 대신 휴대전화의 진동이나 짧은 신호음에 더 큰 안도를 느낀다면 당신 또한 그 역설의 주인공은 아닐지.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