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1

2013.11.04

두더지 잡기식 단속 소리만 요란

대대적 수사에도 의약품 리베이트 관행 여전…형사처벌, 행정처분 실적은 쥐꼬리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3-11-04 09:1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두더지 잡기식 단속 소리만 요란
    10월 24일 오전 8시 3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웅제약 본사에 서울중앙지검 정부합동 리베이트전담수사반(정형근 형사2부장·리베이트 수사반)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 소속 사법 수사관 40여 명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들이닥쳤다. 이날 압수수색은 오후 5시가 넘은 시간까지 9시간 동안 지속됐다. 100억 원대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였다. 검찰은 최근 불거진 회사 내 경영승계 문제와 관련해 계열사 내부에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수사할 예정이다.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제공과 관련한 리베이트 수사반의 제약사 압수수색은 지난해 10월 동아제약과 올해 5월 삼일제약에 이어 세 번째로, 이번 대웅제약에 대한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리베이트 수사반 검사들이 직접 지휘하고 실무 수사는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이 담당한다. 이번 압수수색과 수사는 내부 고발자 제보로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으며, 고발된 리베이트 건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11월 28일 쌍벌제 실시

    의료계와 제약업계에선 검찰과 국세청, 식약처 등 사법당국의 불법 리베이트 수사, 그리고 그와 연계해 진행되는 의사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초미의 관심사다. 최근에는 의사 1400명에게 동영상 강연료 명목으로 44억 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와 관련해 동아제약과 관련 의사들에 대한 2심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또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병원협회,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 등 각 의사단체들이 동아제약 의약품에 대해 사실상 불매운동을 벌여나가는 형국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대웅제약 압수수색과 수사는 또 한 번의 파란을 예고한다. 압수수색에 투입된 인력과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점도 의료계와 제약업계를 긴장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의 단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0년 11월 28일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쌍벌제를 실시한 이후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이후 각 제약사 영업직원들의 양심선언과 폭탄발언이 언론을 통해 가감 없이 터져 나오고,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하는 주범이 각 제약사의 리베이트 때문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자 범정부 차원에서 제약사와 의사들의 리베이트 제공 및 수수 관행에 메스를 든 것이다.



    의료계와 제약계에 관행적으로 퍼진 의약품 리베이트가 가격 경쟁력이 있는 의약품을 처방하거나 구매하게 하기보다 리베이트가 많이 제공되는 의약품을 처방하거나 구매하게 만들고, 이는 필연적으로 고가약 처방과 과잉 처방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였다. 그러면 당연히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공단)과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약제비 지불이 늘어나고, 그 증가액은 국민 몫으로 돌아간다는 주장. 쉽게 말하면 국민 돈(건강보험료, 세금)으로 의사 주머니만 채워준다는 얘기였다.

    실제 2007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발표한 의약품 리베이트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는 매출액의 평균 20%를 리베이트로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됐고, 이 경우 소비자(환자, 건강공단, 지자체)의 손해액은 연간 약 2조18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2005~2009년 4년간 의약품 리베이트로 소비자에게 약 3조2514억 원의 손해가 있었다고 추산했다.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뿐 아니라 그것을 받은 의사에게도 의사자격 2개월 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강제하도록 하는 쌍벌제가 생기고 리베이트 대상이 된 해당 제약사의 약품 가격을 강제로 인하하는 불법 리베이트 약가인하 제도(2009년 5월 시행)가 생긴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쌍벌제의 골자는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판매를 촉진할 목적으로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취득한 의사나 약사 또는 제공한 제약사, 의료기기업체의 행정처분을 강화하고 형사처벌 조항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것이었다.

    두더지 잡기식 단속 소리만 요란

    10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웅제약 본사(왼쪽)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들이 압수한 물품들을 실은 차량이 나가고 있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쌍벌제 시행 이전에는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나 약사에 대한 행정처분은 자격정지 2개월이 전부였고 형사처벌 조항도 없었지만, 시행 이후 행정처분은 자격정지 1년으로 확장됐으며, 형사처벌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주도록 규정했다. 불법적으로 취득한 경제적 이익, 즉 불법 리베이트는 몰수 추징도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다. 리베이트 제공자, 즉 제약사나 의료기기업체는 업무정지 1개월에서 허가 취소까지 가능한 조항이 유지되는 한편, 형사처벌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형량이 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2010년 4월 28일 쌍벌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5월 27일 공포되자 쌍벌제 시행(11월 28일)에 앞서 7월 중순부터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식약청(현 식약처), 지자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일제히 불법 리베이트 단속과 수사에 나서기로 하고 공조체제를 구성했다. 하지만 쌍벌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정부 간 공조체제가 계획처럼 이뤄지지 않자 시행 4개월 후인 2011년 4월 5일 서울중앙지검에 전담수사반이 꾸려졌다. 전담수사반은 당시 식약청 사법수사관은 물론, 의약 분야 전문 검사, 특수부 출신 검사, 검찰 수사관, 경찰 수사관, 국세청 파견 직원 등으로 구성됐다.

    쌍벌제가 시행된 2010년 11월부터 약 3년간 거의 모든 사정기관이 참여해 제약사와 의약품도매상, 의료기기업체와 의사, 약사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 초라하다. 법은 바뀌었지만 사법부의 선고 형량 인식은 쌍벌제 이전과 별로 바뀐 게 없는 탓이다. 불법 의약품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압수수색을 받은 동아제약, 삼일제약, CJ제일제당 제약사업 부문을 비롯해 125개 업체가 수사를 받고 재판이 끝났거나 진행되고 있지만 2013년 10월 말 현재 제약사 임직원과 의사 중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징역형을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3000만 원 미만의 벌금형이었다.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은 쌍벌제 도입의 취지조차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검찰과 경찰, 공정위가 지난 3년간 수사를 끝내고 보건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의뢰한 125개 업체 가운데 판매업무 정지 1개월이 넘는 처벌을 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바뀐 쌍벌제에 따르면 행정처분의 판매업무 정지 기간은 제한이 없으며 최고 허가 취소까지 가능하다. 그나마 1개월 이하의 판매업무 정지를 받은 30개 업체는 100만 원에서 5000만 원까지 과징금을 내고 판매업무 정지를 피해갔다. 판매업무 정지를 하는 것보다 과징금을 내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료기관에 20억 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건강공단에 32억 원의 손해를 입힌 의약품도매상이 단지 판매업무 정지 15일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이 업체는 그마저도 과징금 855만 원을 내고 업무정지를 피해나갔다. 1심에서 리베이트 44억 원을 제공한 혐의로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은 동아제약의 경우, 이런 논리대로 하면 판매업무 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은 후 과징금 5000만 원만 내면 업무 공백 없이 영업행위를 재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윤인순 의원(민주당)은 “리베이트가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은 제약사 등 공급업체들의 경우 제약사는 5000만 원도 안 되는 과징금으로, 도매업체는 1000만 원만 내면 영업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 이는 리베이트를 통해 얻은 부당한 이익(매출 증대)에 비해 너무 경미한 처벌이다. 해당 품목은 일정 기간 건강보험급여를 중지시키는 방안을 도입해 처분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더지 잡기식 단속 소리만 요란

    2010년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가족부(현 보건복지부)에서 박하정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투명화 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의사 8000여 명 행정처분 불가능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와 약사에 대한 행정처분도 솜방망이긴 마찬가지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지경이다. 지난 3년간(2013년 8월 말 현재) 검경과 국세청, 식약처 등 사정기관들이 보건복지부에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했다며 행정처분을 통보한 의사 수는 모두 8000여 명에 이르지만 8월 말 현재 실제 처분을 받은 의사와 약사는 206명에 불과하다. 그중 자격정지 2개월을 초과한 처분을 받은 의사는 9명뿐으로 3번 이상 단속돼 의사면허가 취소된 의사가 2명, 2개월 15일이 1명, 4개월이 6명이었다.

    8000여 명 중에는 동아제약으로부터 동영상 강연료 등의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받았지만 검찰로부터 불구속기소돼 1심에서 150만 원에서 7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105명을 제외하고 아예 기소되지 않거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1300명도 포함됐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의사는 항소나 상고를 포기하지 않는 경우 최종심 선고가 나야 행정처분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가 300만 원 이상의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에게만 면허정지 처분을 내린 사실을 확인하고 300만 원 미만을 받은 의사에게도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당시 ‘건강보험 약제 관리실태 성과감사’를 통해 “복지부, 식약청, 공정위, 검경, 국세청이 2007년에서 2011년까지 제약사와 도매상이 1조1418억 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의료기관 또는 의사, 약사에게 제공한 것을 적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8월 말 보건복지부가 의사 8000여 명에 대해 행정처분을 하려 한다는 사실이 의약전문지를 통해 알려지자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의협과 대한병원협회, 전의총 등 의사단체 대부분이 반발하고 나섰다. 의협은 보건복지부의 대규모 행정처분 계획에 대해 “의사에 대한 인권탄압이다. 당장 이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며 9월 7일 인권탄압 중단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1월 이미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 제정 신청을 낸 전의총은 9월 한 달 동안 쌍벌제 폐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는 한편, 2010년 4월 쌍벌제의 국회 통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전재희 전 의원을 9월 13일 검찰에 ‘공무집행방해’로 고발하기도 했다. 의약품 리베이트 문제를 의사들에게 허위로 전가했다는 이유에서다.

    의협 측은 “8000명이면 전체 의사 8만8000명 가운데 9%, 3만5000개 동네 의사의 23%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가 이들에게 의사에겐 생명 같은 면허정지 처분을 내린다면 문 닫는 의원이 속출해 의료 파동이 생길 게 빤하다”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회원 의사를 중심으로 면허 반납 운동을 펼치는 한편,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하겠다”고 벼른다.

    하지만 이런 의사와 의사단체의 걱정은 기우로 그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주간동아’는 보건복지부에 대한 취재 과정에서 의사 8000여 명에 대한 행정처분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두더지 잡기식 단속 소리만 요란

    2월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노환규(가운데) 의협회장이 ‘의약품 리베이트에 관한 의료계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각 기관 공조 ‘빛 좋은 개살구’

    “검경과 국세청, 식약처 등에서 행정처분을 통보하거나 의뢰한 의사 수가 8월 말 현재 이첩된 건만 8000여 명이 되는 건 맞다. 그런데 실제 처분을 내릴 수 있는 의사 수는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일단 통보가 오면 실제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복지부에는 리베이트 행정처분 담당 인원이 1명이고 각 지자체 직원들은 확인할 능력이 안 된다.

    더욱이 각 사정기관에서 넘어온 자료라고 해봐야 범죄사실일람표인데, 범죄사실란에 쓰인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다. 아예 공란인 경우도 있다. 그냥 ‘의약품 판매촉진 관련 부당이익 편취’라고만 쓰인 게 대부분이다. 설령 제약사 측이 리베이트를 줬다는 구체적 정황 증거가 있는 경우에도 각 의사가 ‘배달사고가 났다’ ‘받은 적이 없다’ ‘기억이 안 난다’ 등 발뺌을 해 처벌할 수도 없다.

    우리에겐 그들이 실제 리베이트를 받았음을 증명할 수사권도 없고 인원도 없다. 실제 몇 명이 처분을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며, 처분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통보나 의뢰가 됐다고 일괄 행정처분을 하면 대규모 행정소송이 벌어질 테고 거기서 패소하면 쌍벌제를 도입한 취지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국세청이 S제약 등 몇 개 제약사의 세무조사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줬다고 한 의사 2500명에 대한 행정처분을 의뢰해왔는데 실제 혐의 내용이 너무 허술해 ‘범죄 사실을 증거를 갖춰 새로 제시하라’며 모두 돌려보냈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나가면 2만~3만 명 의사에 대한 처분 통보나 의뢰가 올 텐데 정말 걱정이다.”

    결국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검경과 국세청 등 각 사정기관이 의약품 리베이트 단속과 관련해 구체적 증거 없이 자신들도 법적으로 처벌하지 못한 사건들을 무조건 보건복지부에 떠넘기면서 실적 부풀리기만 한다는 뜻이 된다. 이는 불법 리베이트 단속에 있어 각 기간의 공조가 ‘빛 좋은 개살구’였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쌍벌제 도입을 통해 의사와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 관행을 끊으려고 처벌수위를 매년 높여가지만 어디까지가 영업행위이고 불법 리베이트인지를 놓고 학계에서조차 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는 각 제약사의 리베이트 제공 방법이 날로 지능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제에 쌍벌제 손질을 통해 불법 리베이트의 정의를 좀 더 명확히 하고, 꼭 처벌이나 처분을 하지 않고도 불법 리베이트를 없앨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