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8

2013.10.14

관광특구 개발하면 장롱 속 40억 달러 나오나

북한 주민·기업 외화 상당액 은닉…환율 모순 극복 ‘협동화폐’ 도입도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3-10-14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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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특구 개발하면 장롱 속 40억 달러 나오나

    9월 중순 북한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에 참석한 한국 선수단 관계자가 평양 야경을 촬영한 모습. 저녁 8시경 평양의 밤은 대체로 어둡고 고요했지만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곳도 있다. 한국 선수단 관계자는 “초저녁에는 맥줏집이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고 전했다.

    9월 한 달은 중국에서의 북한 접촉에 빨간불이 켜진 기간이었다. 천안함 폭침에 의혹을 제기한 주인공인 미국 대잠수함전 전문가 안수명 박사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에 가려다 저지됐는가 하면, 선양과 베이징에서 북측과 접촉한 민간인에게 잇달아 과태료가 부과됐다. 이와 더불어 북한 장롱 속 외화가 40억 달러에 이르고, 3월부터 북한이 시장 환율을 반영한 이른바 ‘협동화폐’라는 제도를 도입했다는 북측 인사의 소식도 소개한다.

    잇단 경고가 의미하는 것

    안수명 박사는 미국 대잠수함전 전문가로, 천안함 폭침 사건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안 박사는 9월 초 북한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평양을 방문하려고 베이징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북한 방문길에 오르지 못했고, 이 과정에 우리 정보 당국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박사의 방북 목적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천안함 문제에 대한 논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 박사는 방북에 앞서 한국도 방문하려 했지만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된 바 있다. 남북한 방문이 모두 무산되자 그는 베이징에 머물다 9월 중순 미국으로 돌아갔다. 안 박사는 미국에 도착한 직후 미국 정보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 박사는 1984년 미 국방부로부터 비밀취급 허가를 받은 안테크를 설립했다. 안테크에서는 대잠수함전 관련 보고서를 1000여 건 작성한 바 있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1급비밀에 해당한다고 한다. 안 박사는 북한 잠수정이 쏜 어뢰가 천안함을 격침할 수 있는 확률이 제로(0)에 가깝다고 말하는 등 천안함 폭침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해왔다. 물론 이는 북한 측 주장과 일치한다. 특파원 시절 필자는 북측 인사들로부터 “(천안함 폭침은) 남측과 미국의 조작극”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주간동아’ 907호에 전한 바와 같이 9월 30일 통일부는 북한이 10월 중순 베이징에서 열기로 계획했던 대규모 투자설명회에 한국 측 인사들의 참가를 사실상 불허했다. 이에 앞서 통일부는 중국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한 한국 기업인들에게 잇달아 과태료를 부과했다. 사전 신고 없이 북측 사람을 만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과태료는 크게 모임 2개에 참석한 이들에게 부과됐다. 먼저 민간단체인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소속 인사들이다. 이들은 9월 14, 15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북측 단군민족통일협의회 인사들과 만났다. 실무회담 끝에 양측은 10월 3일 개천절 행사를 평양에서 공동진행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우리 당국이 이들의 방북을 허용하지 않아 개천절 기념행사는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따로 진행했고 그 대신 공동호소문을 발표했다. 통일부는 정부 승인 없이 북측과 만난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소속 인사 4명에게 각각 과태료 100만 원을 부과했다.

    통일부는 9월 18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세미나에 참석한 민간인 대학교수에게도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 세미나는 9·19공동성명 8주년을 맞아 중국이 1.5트랙(반관반민) 형식의 6자회담 당사국 회의를 열자고 제안해 마련된 것이었다. 우리 정부는 실무 담당자만 파견했지만 북한에서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이용호 외무성 부상 등 고위급 인사가 참가했다. 이 세미나에 참가한 일부 민간인 교수가 북한 주민 접촉 사전 신고 없이 회의에 참석했다며 과태료를 부과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연구 목적으로 학술 세미나에 참석한 교수에게까지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지나친 조치라고 비판한다.

    지금부터 전할 내용은 3월 북한의 고위급 인사로부터 취재한 내용이다. 당시는 필자가 베이징 특파원 일을 마무리하던 때로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인사는 먼저 북한 장롱 속에 숨어 있는 외화 규모가 40억 달러에 이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한 탄광마을을 예로 들었다. 이 마을 여자 중에는 알부자가 많다. 암거래방식으로 달러를 차곡차곡 쌓아둔다. 저쪽으로 가야 할 석탄 차를 이쪽으로 빼돌리는 등의 방법으로 보통 석탄 1t에 15달러 정도씩 챙긴다. 이렇게 해서 수백만 달러를 현금으로 쥐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백만 달러 숨겨둔 사람도

    관광특구 개발하면 장롱 속 40억 달러 나오나

    중국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공개된 북한 평양 상류층의 복합소비공간 해당화관 모습. 최고급 호텔을 연상하게 하는 내부가 눈길을 끈다.

    북한 주민이나 기업은 여러 방식으로 외화를 감춰둔다. 이런 식으로 은닉한 외화 규모가 4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북한 당국은 파악한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이 장롱 속 달러를 끄집어내려고 고심을 거듭해왔다. 숨겨둔 달러를 강제로 빼앗는 일은 한계가 있으므로, 주민이나 기업 스스로 자신이 숨겨둔 달러를 사용하도록 상품을 만들어 내놓겠다는 계획이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다양한 부동산 개발이다. 북한은 현재 곳곳에서 부동산 개발을 통한 관광자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원산 관광특구 개발 같은 다양한 특구 개발을 통해서도 장롱 속 외화를 끄집어낼 것을 희망한다. 10월 현재 북측 인사의 말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평양과 원산 등지에서 개발 활동을 활발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관광특구 개발하면 장롱 속 40억 달러 나오나

    북한 평양 영광거리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며 걸어가는 한 시민의 모습. 2011년 11월 촬영한 사진이다.

    현재 북한의 공식 달러 환율은 1대 100이지만 암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환율은 3월 기준 대략 1대 5800 정도다. 은행에서 1달러를 주면 조선 원(북한 돈) 100원을 받지만, 암시장에서는 60배에 가까운 5800원을 받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은행에서 환전할 리 없다. 주머니 속, 장롱 속 달러가 자연 암시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이러한 환율 구조에서라면 어떤 외국인도 북한에 투자할 수 없다.

    이러한 모순을 인식한 북한 당국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3월 1일부터 이른바 ‘협동화폐 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한 북측 인사는 이를 두고 ‘마켓 프라이스’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시장 환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도 잘 이해되지 않는 ‘협동화폐’ 개념은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한 재미 언론인이 인터넷에 남긴 평양 방문기를 통해 쉽게 이해됐다. 그가 평양에 있는 백화점 ‘광복지구 상업중심’을 방문했다면서 쓴 글이다.

    “백화점은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외화 바꿈’이라는 환전 창구가 보였다. 유리창에 ‘오늘의 시세’라는 안내문과 함께 미화 1달러에 조선 돈 8000원, 1유로에 1만240원, 1위안(중국 돈)에 1270원, 1엔(일본 돈)에 8120원으로 표기돼 있었다. 이러한 환율은 국제 공식 환율이 아니고 조선을 방문하는 해외동포나 외국인에게 특혜를 주는 이른바 ‘국내 협동화폐 가격’이라고 한다.”

    재미 언론인이 방문기를 올린 시점은 5월이다. “시장 환율이 적용되는 협동화폐 제도를 3월부터 시행했다”는 북측 인사의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북측 인사는 협동화폐를 설명하면서 북한 주민의 휴대전화 요금 지불방식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앞으로 강제적 고정 환율을 없애고 시장 환율을 전국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협동화폐란 ‘북한 돈과 달러의 이중결제 구조’를 뜻한다고 설명한 그는 손전화기, 즉 휴대전화 요금 지불방식에도 ‘협동화폐’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북한 돈 2500원, 공식 환율로 25달러 이내의 휴대전화 요금은 북한 돈으로 계산하고 이를 초과하면 달러로 계산하게 하는 식이다. 북한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요금결제를 북한 돈과 달러 이중으로 하도록 의무화할 경우 개인이 감춰둔 장롱 속 달러가 자연스레 밖으로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시장경제 요소 속속 도입 중

    관광특구 개발하면 장롱 속 40억 달러 나오나

    1998년 8월 방북한 ‘동아일보’ 대표단이 북한 평앙 중구역 민족 식당에서 만난 외화 교환원 김순애 씨. 당시만 해도 북한에서 달러는 외국인만 소지, 환전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북한은 이와 더불어 각급 공장, 기업소 단체들이 내화와 외화 계좌를 모두 가질 수 있게 허용했다. 과거 북한에서는 거래대금을 24시간 안에 은행에 예치해야 했는데, 내화와 외화 계좌가 없는 기업들이 대금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가 당국에 압수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김정은 체제 들어 이처럼 불필요한 사유로 규정을 위반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내화와 외화 계좌를 모두 가질 수 있게 허용했다는 것이다. 모두 북한에 시장경제 요소가 널리 퍼져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은 외신 보도에서도 나타난다. 7월 러시아 언론이 전한 소식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국영 라디오방송 ‘러시아의 소리’는 “북한에서 국영기업과 사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서류로는 국영이지만 실제로는 민영인 기업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돈 있는 기업 투자자는 수출품을 사들인 뒤 정부기관 명의로 해외에 팔아 돈을 벌고, 이익의 일부는 국고 예산에 넣거나 관료들에게 나눠준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특히 탄광이나 금광을 경영하는 투자자들이 상당한 자금을 창출한다고 전했다. 이는 필자가 북측 인사로부터 취재한 내용과 대체로 일치한다.

    ‘동아일보’도 10월 1일 1면 머리기사를 통해 북한의 시장경제 관련 행보를 전했다. 북한이 내년부터 북한 정권 출범 이후 가장 획기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보도였다. 공장과 기업소의 자율성을 전면 보장하는 대대적 개혁으로 사실상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방향 전환을 하리라는 분석도 포함됐다. 기사 내용 중에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공장과 기업소에 내화 계좌와 함께 외화 계좌 개설을 허용했다’는 부분도 있다. 북한이 시장경제 요소를 속속 도입 중이라는 뜻이다.

    평양 당국이 10월 중순 베이징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설명회를 계획했다가 한국 기업과 인사의 참여가 통일부 불허로 불가능해지자 11월 초로 연기했다는 소식은 ‘주간동아’ 907호에서 전한 바와 같다. 신설한 경제지도 기구인 국가경제개발위원회 김기석 위원장과 김철진 부위원장 등 고위급이 참가해 다양한 특구 계획을 발표하고 국제사회에 투자를 호소할 계획이라고 전해진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북한이 경제발전에 주력하도록 중국이 많이 설득하고 힘써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평양의 실험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동북아 모든 국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2013년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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