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8

2013.10.14

수익률이 ‘은퇴 리스크’ 해결사?

수명과 건강·인플레이션 등 본인에 맞는 은퇴 준비 필요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3-10-14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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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익률이 ‘은퇴 리스크’ 해결사?

    집 한 채로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주택연금이 호응을 얻고 있다.

    재테크 담당 기자 초년병 시절, 소위 ‘투자의 고수’라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듣는 얘기가 있었다. 투자 성공의 요체는 ‘첫째도 위험관리, 둘째도 위험관리, 셋째도 위험관리’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위험이 뭐기에 이들은 위험관리를 투자 의사결정의 맨 앞자리에 둘까라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위험이란 영어로 리스크(risk)를 가리킨다. 그런데 리스크 말고도 데인저(danger)도 위험으로 번역할 수 있다(여기서는 두 가지를 구분하려고 risk는 리스크로, danger는 위험으로 쓴다). 리스크와 위험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위험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2005년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같은 사건을 들 수 있다.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은 대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리스크, 운명이 아니라 선택

    리스크는 ‘뱃심 있게 도전하다(to dare)’는 의미를 지닌 이탈리아어 risicare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원 자체에 ‘도전’과 ‘선택’이란 뜻이 들어 있다. 리스크의 역사를 분석한 투자이론의 대가 피터 번스타인은 “리스크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말한다. 리스크란 단어는 ‘선택적이고 적극적인 인간 행동’이란 의미를 품고 있고, 위험은 ‘수동적 대비나 준비’라는 뜻을 담고 있다.

    번스타인은 인류 발전을 프로메테우스가 신(神)에 대항해 인간 세상의 어둠을 밝힌 것처럼, 신으로부터 리스크 통제권을 획득해오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리스크를 수용(taking)하려는 노력이 인류의 삶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늘 리스크와 더불어 산다. 자동차 안전벨트, 생명보험, 자동차 보험, 우주선 제작 등 모든 영역에서 리스크를 다루고 관리한다. 인생살이에서 리스크 관리는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이다.



    고령화사회를 맞으면서 ‘은퇴 리스크’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의 내리고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능력’(번스타인)을 배양하는 것이다. 은퇴 리스크도 우리가 늙어간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사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의 내리고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익률이 ‘은퇴 리스크’ 해결사?

    국민연금을 수명 리스크 관리의 1차 도구로 삼아야 한다.

    전통적인 투자이론에서 리스크는 변동성으로 표현된다. 변동성이란 간단히 말해 가격 움직임이다. 가격 움직임을 측정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주식시장에선 이를 ‘벤치마크 지수’ 혹은 ‘시장수익률’이라고 한다. 가령 지수가 10% 상승했는데 수익률 12%를 냈다면, 시장을 2%p 이긴(beating) 셈이다.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서는 가격 움직임의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을 포트폴리오 꾸러미에 담아 리스크를 낮추면서 적정 수익을 내는 것을 최상의 방법으로 여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이를 직접 구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명 리스크’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인간에겐 수학적 엄밀성을 가진 포트폴리오 이론을 직접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투자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살면서 발생하는 일련의 리스크에 맞춰 관리 방법과 도구를 모색하는 것이다. 은퇴 자산운용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수익률이나 자산 배분이 아니다. 사망 시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경의 말처럼 “인간은 장기적으로 죽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명 리스크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은 죽을 때까지 연금 같은 형태로 현금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수명 리스크를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는 상품은 ‘국민연금’ ‘주택연금’ ‘종신형 연금’뿐이다.

    죽을 때까지 현금흐름 만들기

    국민연금은 늘 논란의 대상이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서 구매력을 보존해주는 유일무이한 연금상품이다. 민간 금융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금융상품을 만들면 장기적으로는 모든 회사가 도산하고 말 것이다. 제도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국민연금을 수명 리스크 관리의 1차 도구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사는 집을 담보로 맡기고 사망 시점까지 연금을 받는 주택연금도 수명 리스크에 대한 좋은 관리 도구다. 흔히 주택연금 하면 주택가격을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주택가격에 따라 연금액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연금의 최대 장점은 수명 리스크 관리 도구라는 점이다. 최근 주택가격과 관련한 논란이 많지만 주택연금은 시중에 나온 그 어떤 상품보다 뛰어난 수명 리스크 관리의 유력한 도구이자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종신연금도 수명 리스크에 대한 대비책이지만, 인플레이션 리스크라는 측면에서 보면 취약한 상품이다. 자산이 많아 가입할 수 있는 절대 금액이 많다면 종신연금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따라서 종신연금 가입자는 다른 투자처와 결합해서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대비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역사적으로 저축성 자산은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대한 효과적인 대비책이 아니었다. 주식 등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투자상품이 인플레이션 측면에선 우월한 투자성과를 보여줬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주식형 펀드와 달리 매월 현금흐름이 창출되는 자산에 투자하는 인컴형 펀드 같은 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이들 상품군은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으면서도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인간이 숙명적으로 가진 또 하나의 리스크는 건강 리스크다. 암, 뇌혈관 질환 등 노화와 관련한 사망은 이제 일상의 풍경이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건강 리스크 관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일례로 연간 100명 중 1명꼴로 암환자가 발생하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암보험 가입률은 40%가 되지 않는다. 50대는 사정이 낫지만 10대의 70%보다 낮은 63%이다. 실손보험이나 보장성보험은 건강 리스크 관리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다. 최근에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보장성보험도 출시되고 있으므로 자신의 보장자산을 잘 분석해 건강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

    은퇴 리스크는 단순히 투자수익률로만 해결할 수 없다. 수명 리스크와 건강 리스크에 대비해야 하고, 인플레이션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 없는 올바른 은퇴 준비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고 관리 도구를 꼼꼼히 선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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