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7

2013.10.07

美 ‘셧 다운’ 심상치 않은 이유

내년 총선 등 주도권 잡기 ‘대결의 정치’…오바마 대통령 이례적 강공 응수

  •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 kyle@donga.com

    입력2013-10-07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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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미국 연방정부의 지출 자동 삭감을 의미하는 이른바 시퀘스터(sequester) 발동 사태를 앞두고 주미 한국대사관은 2월 말 ‘미국 재정문제 현황과 전망’이라는 A4 용지 9쪽짜리 브리핑 보고서를 워싱턴특파원단에 제공했다.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 재경관이 작성, 발표한 이 보고서는 ‘주미 한국대사관이나 한국 정부의 공식 의견이 아니다’라는 주석을 달고 있지만 당시 사태를 보는 주미 한국대사관 측 시각을 정확히 반영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 재정문제라는 경제 현상을 다뤘지만, 핵심 문제는 미국의 정치문제라는 강력한 주장을 담았다. 보고서는 ‘국가 채무한도 상향 조정, 재정절벽,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의 정치연계 심화가 어떤 대내외적 요인보다 불확실성을 가중하고 있으며, 당분간 이런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보고서는 또한 재정문제는 민주·공화 양당 간 원만한 합의가 어려워 몇 개월분의 잠정 합의가 지속될 것이고, 잠정 합의가 만료될 때마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는 현상이 반복되리라고 전망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미국 정치의 현실이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인한 미국발(發)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을 거치면서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적자 문제가 핵심 정치 사안으로 부각하고, 2011년 한도에 이른 국가 채무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협상을 거치면서 민주·공화 양당은 정치와 경제 전반에 걸쳐 심각하게 대립하게 된다. 2008년 11월 선거 결과 나타난 민주당의 상하 양원 장악이 2010년 선거 이후 민주 상원, 공화 하원 지배구도로 이원화된 점도 한몫했다.

    야심 찬 ‘오바마케어’ 프로젝트 좌초

    이후 양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일자리 창출 대책, 재정적자 감축 정책, 경기 부양책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충돌했다. 당연히 미국 국민은 의회를 불신하고 정치권의 문제해결 능력에 의구심을 가졌다. 2011년 10월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P)’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의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올해 1월 의회 전문매체 ‘더 힐’ 여론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85%까지 올라갔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우려대로 미국 정치권은 3월 1일부터 시행된 시퀘스터의 발동을 결국 막지 못했다.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배워야 할 어린아이들이 프리스쿨에 가지 못해 집에서 지내야 하는 심각한 민생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현안 앞에서 미국 정치권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정치의 기본 행동양식을 저버린 채 당파 싸움에만 몰두해 손을 놓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한 비난을 의식한 듯 이후 미국 정치권은 국내외 현안에서 그 나름대로 대화와 협상의 묘를 살려왔다. 총기규제를 둘러싼 대립을 제외하면 이민법 개혁안과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 수집 파문, 시리아 공습 등을 놓고 공화당 지도부는 오바마 행정부에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내년 총선과 2016년 대통령선거(대선)를 앞두고 서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대결의 정치’는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정치적 치적으로 꼽히는 건강보험 개혁법안(오바마케어)이라는 초대형 암초를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17년 만에 연방정부 잠정 폐쇄를 부른 오바마 대통령의 오바마케어는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왔던 저소득층을 구제하고 의료비 절감과 의료서비스 질 제고를 동시에 노린 야심 찬 프로젝트다.

    미국 정부는 노년층과 저소득층의 의료비만 보조하고 의료보험 가입은 개인 책임에 맡겨왔다. 이 때문에 5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구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 오바마케어는 이들 보험 미가입자에게 의료비 보장 혜택을 주고 저소득층에도 의료보험료를 보조해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안은 민주당이 행정부와 함께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하던 2010년 통과됐다. 원래대로라면 10월 1일부터 신규 가입자 등록이 시작되고 내년 1월 1일 본격적으로 보장이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11년 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지속적으로 이 법안의 시행에 반대해왔다. 정부 보조에 천문학적인 재정이 들어가 가난한 사람의 의료 보장을 위해 부자가 세금을 더 내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 그 명분이었다.

    공화당 측은 제도 자체를 사문화하려는 법안을 수십 개나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 막히자 이번에 ‘정부 폐쇄’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2016년 대선에 눈독을 들이는 공화당 중진들은 오바마케어에 불만이 많은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美 언론 “국가부도 위험성 높아져”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에 대한 미국 주류 사회의 질시도 근저에 깔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1965년 노년층 건강보험(메디케어)과 저소득층 건강보험(메디케이드) 제도 도입 이후 최대의 복지개혁으로 평가되는 이번 건강보험 개혁을 오바마 대통령 치하에서 실시하도록 할 수 없다는 공화당의 시기와 질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17년 만에 연방정부 폐쇄(셧 다운) 사태를 맞은 오바마 대통령도 이례적인 강공으로 응수해 이번 사태의 한 원인이 됐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는 정부 폐쇄 첫날인 10월 1일 오바마케어 시행에 반대하는 공화당 중진들이 ‘이념 선동’을 한다며 강하게 몰아붙였다.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의회의 한쪽(하원)에 있는 한 정당(공화당)의 한 당파(극우 보수주의인 티파티)가 하나의 법(오바마케어)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 문을 닫았다”면서 “그들은 이념 선동으로 문을 닫으면서 몸값을 요구했다”고 비난한 것.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의회가 2014년 예산안 처리에 실패해 연방정부 폐쇄가 확정된 직후에도 “불행하게도 의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공화당 측으로 돌렸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공화당의 오바마케어 연기 주장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협상에 나서기보다 세 차례나 거부하는 강수를 뒀다. 국가 채무한도 상향 조정을 놓고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배수의 진도 쳤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역시 내년 총선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고 2016년 정권 연장을 이루려면 흑인과 소수계 인종, 여성과 저소득층이 환영하는 오바마케어를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 개인적으로는 올해 각종 국내외 악재에 따른 조기 레임덕 우려를 불식할 필요도 있다.

    연방정부 폐쇄가 결정되자 미국 언론들은 “미국의 국가부도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예산안 처리도 못 하는 미 정치권이 이달 중순 한도가 찰 것으로 보이는 국가 부채 상한 증액에 여야가 합의하기 힘들다는 비관적 관측도 나온다. 미 재무부는 10월 17일 국고에 남은 현금이 300억 달러(약 32조 원)지만, 당일 빠져나갈 돈만 600억 달러여서 채무지급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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