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7

2013.10.07

수줍은 자태에 향기도 좋아라

구절초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10-07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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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줍은 자태에 향기도 좋아라
    가을이다. 남쪽에서 전해오던 꽃 소식과는 반대로 북쪽에서 단풍 소식이 날아든다. 국립수목원에도 계수나무 잎사귀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숲은 이 나무가 내어놓는 솜사탕처럼 달콤한 내음으로 가득하다.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밀려온다. 옮겨 딛는 걸음걸음 사이로 핀 수줍은 꽃. 바로 구절초다. 더도 덜도 말고, 정말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구절초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산국, 감국과 같은 속(Chrysanthemum)이지만 이들 들국화가 노란색 꽃을 피우는 데 반해 구절초는 흰색 또는 연분홍색 꽃을, 그것도 훨씬 큼지막하게 피워낸다. 우리 국토 어느 곳에서든, 멀리는 만주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뿌리를 내려 아름드리 꽃을 매어단 채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못 이룬 남북통일의 꿈은 물론, 옛 고구려의 영광까지 생각게 하는 꽃이다.

    구절초는 본래 한방 또는 민간에서 약용식물로 이용해왔다. 생약명도 구절초로, 글자 그대로 9개 마디를 가졌다는 뜻이다. 9월 9일에 꺾어 모아 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며 어떤 이들은 선모초라고도 부른다. 구절초는 주로 부인병을 다스리는 식물로 유명하다. 더러는 꽃을 술에 담가 그 향기를 즐기기도 하는데, 피를 만들고 원기를 돋우는 보혈강장제로 쓴다. 이 밖에도 여러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요즘엔 이 구절초 꽃을 말려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나무 아래 큰 무리를 지어 심어놓으면 그곳이 명소가 된다. 아름답고 풍성하며 향기롭고 이로운 꽃이다.

    수줍은 자태에 향기도 좋아라
    우리나라엔 아주 비슷하게 생긴 형제 구절초가 몇 종류 더 있다. 그중에서도 높은 산 바위틈 같은 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살랑대는 모습이 마치 가녀린 여인을 연상케 하는 흰색 산구절초가 백미다. 사실 산에 가면 구절초보다 훨씬 자주 만나는 것이 바로 산구절초다. 잎이 국화 잎을 닮은 구절초에 비해 가늘게 갈라져 있으며 꽃대가 스러지지 않고 바로 서서 자란다. 그 밖에 바람 많은 높은 산 정상에 사는 바위구절초도 있다. 백두산 꼭대기에서 바람에 일렁이며 천지의 깊은 물빛을 바라보는 꽃, 키는 작지만 분홍색 꽃이 유난히 곱다. 한탄강 주변에서 자라는 포천구절초는 잎이 산구절초보다 더 가늘어 코스모스 잎처럼 보인다. 흔히 서양 꽃 마거릿과 혼동하는데, 여름에 피는 이 꽃은 이미 지고 없으니 지금 보일 리 없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빼어난 모습으로 자라는 구절초를 보노라면 새삼 이 땅의 자연과 그 속에서 자라는 식물에 대한 경이로움에 절로 경건한 마음까지 든다. 내 삶도 가을 들녘, 혹은 가을 숲 속의 구절초처럼 맑고 향기로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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