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7

2013.10.07

밥상이 소박할수록 건강은 춤을 춘다

채소와 과일 도시락, 토종 논산 연산오계, 직접 재배 농산물

  • 구술 정리·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10-07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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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이 소박할수록 건강은 춤을 춘다
    슬로푸드란 깨끗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지역에서 재배한 식재료로 만든 먹을거리를 뜻한다. 맛이 좋고 먹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식, 생산 과정에서 환경과 건강을 존중한 음식, 생산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이러한 음식의 중요성은 1986년 이탈리아 카를로 페트리니가 슬로푸드 운동을 주창하면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슬로푸드문화원을 만들고, 최근 경기 남양주시가 10월 1일부터 6일까지 2013 남양주 슬로푸드국제대회를 열면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슬로푸드가 우리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세 사람의 사연에 주목해본다.

    소비자 l 서승만(57)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사무국장

    “채소와 과일 도시락 점심

    직장인도 얼마든 실천 가능”


    밥상이 소박할수록 건강은 춤을 춘다

    서승만 씨는 일주일에 2~3번 슬로푸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다.

    2004년 회사 일로 시민단체 녹색연합과 ‘소박한 밥상’ 행사를 진행하면서 슬로푸드의 개념을 알게 됐다. 당시 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밖에서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다 보니 대장이 나빠진 상태였다. 아내와 나는 소박한 밥상 강의를 들었고, 이를 계기로 식단을 조금씩 바꿨다. 유기농 채소를 먹고 육식을 줄이니 몸이 가뿐해졌다.



    하지만 2008년 협심증이 오면서 식단에 더 신경을 썼다. 일단 식탁에 앉으면 채소와 과일부터 먹었다. 밥부터 먹으면 필요 이상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채소와 과일을 먼저 먹으면 포만감이 느껴진다. 밥그릇도 작은 것으로 장만해 보통 사람의 절반 정도만 먹는다. 채소는 다양하게 먹는데 치커리, 양상추 등을 샐러드로 섭취한다. 샐러드 소스는 아내가 과일을 갈아 만들어준다. 과일은 제철 과일, 밥은 흰쌀이 아닌 잡곡과 콩을 주로 먹는다.

    물론 매끼를 이렇게 먹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은 되도록 이런 식으로 먹고, 아내가 일주일에 2~3번 점심 도시락을 싸준다. 도시락은 채소통, 과일통, 밥통 이렇게 3개다. 도시락을 싸오는 동료가 있지만 나는 동료와 같이 나눠 먹기 민망할 정도로 싸오는 양이 적은 데다 가짓수도 별로 안 돼 주로 혼자 먹는다.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 날은 냉면, 메밀 막국수 등 가벼운 음식을 먹는다. 식습관이 이렇다 보니 가급적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몸이 가벼워서일까. 식사가 끝나면 가볍게 걷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 결과 건강도 좋아졌다. 젊었을 때와 달리 나이가 들면서 고기와 술을 많이 먹은 탓에 여기저기 아팠는데 그것도 싹 나았다. 2008년 협심증 시술을 받은 것도 완쾌했고, 대장 염증도 없어졌다. 아이 셋이 이런 부모의 선택을 좋아한 건 아니지만 점점 닮아간다.

    내가 이렇게 슬로푸드를 먹고 건강해진 건 주부 10단인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소박한 밥상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가족에게 좋은 먹을거리를 내놓으려고 노력했다. 유기농 먹을거리를 주로 사다 보면 식비가 많이 들 것 같지만 버리는 양이 없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밥상이 소박할수록 건강은 춤을 춘다

    서승만 씨의 도시락. 채소와 과일을 먼저 먹고 잡곡밥을 먹는데, 밥 양이 보통 사람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아내는 된장, 고추장, 간장도 집에서 담근다. 벌써 10년 정도 됐는데, 아파트 베란다에 장독대를 두고 그곳에 장을 보관한다. 채소는 주로 한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에서 구매한다. 가끔 재래시장이나 마트에도 가지만 그 횟수가 적다. 귤은 제주 농가에서, 사과는 과수원에서, 콩이나 참깨 같은 잡곡은 지인의 농가에서 주문한다. 생산지에서 바로 조달하는 것이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고기는 구워먹지 않는다. 기름에 튀겨서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쇠고기 기름은 체내에서 녹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돼지고기는 지방이 별로 없는 퍽퍽한 부위를 찌거나 삶아서 먹는다. 불포화지방이 많은 오리고기를 선호하는 편이라 얼마 전에도 오리 백숙을 해서 맛있게 먹었다.

    좋은 음식을 적절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면 병들 일이 없다. 과하게 먹으니까 몸이 망가지는 것이다. 좋은 먹을거리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본인을 위해 좋다. 나중에 아파서 고생하지 말고 지금부터 좋은 음식을 먹기를 권한다.

    생산자 l 이승숙(51) 지산농원 대표

    “사람 살리는 논산 연산오계…

    최근 ‘맛의 방주’로 등재 쾌거”


    밥상이 소박할수록 건강은 춤을 춘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토종닭 종자인 논산 연산오계를 키우는 이승숙 씨. 판로가 없는 데다 유기농 사료를 먹이 느라 수익을 얻지 못해도 종자 지킴 이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한다.

    신문기자로 일하던 중 아버지가 위독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 집안이 대대로 오계를 길렀다는 걸 알았다. 오계는 고려시대에도 길렀다는 기록이 있는 토종닭으로, 5대 조부가 철종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할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오계가 사람 살리는 닭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우리가 흔히 보는 닭은 외국 닭과 토종닭의 교잡종으로 오계가 아니다. 오계는 오골계와도 다르다. 오골계는 뼈가 검고 털이 희지만 오계는 볏, 발톱, 발, 뼈, 털까지 모두 검다. 야생성이 강해 펄펄 날아다니고, 체형이 작으며, 성격이 포악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들끼리 잡아먹는다. 오계를 가둬서 키우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오계는 토종닭이라는 종자로서의 가치만 있을 뿐 수익성이 거의 없다. 사육기간이 보통 닭은 20일인데 오계는 1년이다. 크기가 작고, 고기가 질겨서 먹기도 어렵다. 푹 고아 약재로 이용하는데 그마저도 대중화하지 못해 오계를 기르는 사람이 없어졌다.

    물론 나도 오계를 기를 생각이 없었다. 다만 위독한 아버지를 간병하려고 휴직을 1년 냈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회사에 돌아갈 수 없었다. 아버지는 오계 걱정에 눈조차 편히 감지 못했다. 기르면 기를수록 손해인 오계를 맡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미혼인 내가 1998년부터 오계를 맡았다. 오빠가 넷이 있지만 모두 부양가족이 있어 나서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마을 땅 대부분을 물려받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오계 사료를 사느라 진 빚 3000만 원과 오계 500마리만 물려받았다. 오계를 키우려고 전세금, 퇴직금은 물론 보험금도 쏟아부으면서 매년 5000만 원씩 손해를 봤다. 종자의 순수성을 지키려면 된장, 현미 등 곡물로 만든 사료를 먹여야 했기에 그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자식 등록금도 안 주면서 오계 사료를 산다며 아버지를 원망하던 내가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갔다.

    더 큰 문제는 질병이었다. 우리나라에 조류독감이 세 차례 퍼지면서 나는 오계를 데리고 무위도, 동두천, 상주, 청원 등으로 피난을 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조상 대대로 지켜온 오계를 잃을 수 있겠다 싶어 지인들을 수소문해 오계를 3개월가량 피신시킨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이를 계기로 정부가 토종닭 종자에 관심을 보였고, 우리 농장은 2011년부터 정부에서 사료 값과 인건비를 지원해줘 종계 1000마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을 하기가 녹록지 않다. 오계는 알을 일반 닭의 3분의 1만 낳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도 오계는 천연기념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괴로워하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오계를 천연기념물로 등재시키려 했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 12년 동안 오계의 역사성, 풍토성 등을 증명했고, 결국 논산 연산오계는 1980년 천연기념물 제265호로 등재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개인이 종자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요즘 나는 새벽 3시면 닭장으로 간다. 아이들이 문 앞에서 기다릴 생각을 하면 다른 일을 하기 어렵다. 물론 재래시장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큰 소리로 울기 때문에 갈 수밖에 없다. 현재 오계 종계 1000마리, 후보군 1500마리 등 총 2500마리를 나 혼자 기르는데 내가 죽으면 누가 할지 걱정이다. 근친교배에 따른 열성 인자가 확대되는 것도 문제다.

    최근 논산 연산오계가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국제슬로푸드 생명다양성재단의 인증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에 등재됐다. 이는 멸종위기에 놓인 종자나 음식을 알리는 프로젝트로, 76개국 1211개 품목이 올라 있으며, 우리나라는 올해 처음 5개 품목이 인증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조가 물려준 토종닭의 가치를 알아줬으면 한다.

    소비자이자 생산자 l 윤미경(42) 주부·슬로푸드아카데미 사무국장

    “건강한 음식 몸소 확인

    아이들 넷 농부로 키울 터”


    밥상이 소박할수록 건강은 춤을 춘다

    윤미경 씨 가족이 젖소에게 여물을 먹이고 있다. 조만간 젖소가 아이들에게 우유를 제공할 것이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지만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다. 다만 아이 넷을 키우는 엄마로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영양학적으로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건 아니었다. 아이들과 외식도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라면도 끓여 먹었다.

    하지만 2011년부터 슬로푸드문화원에서 슬로푸드매니저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 슬로푸드의 중요성을 알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문제점도 인식했다. 아이 4명을 모두 홈스쿨링으로 키우기 때문에 내가 주는 음식이 곧 아이들 건강과 직결됐고, 남편의 건강이 나빠진 데다 아이들에게 아토피피부염 증상까지 나타나면서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한살림, 팔당생명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에서 구매한 식재료를 먹으면서 가족 건강이 좋아졌다. 남편은 기력을 회복했으며, 아이들은 아토피피부염이 없어지고 집중력과 인내력도 향상됐다. 나는 슬로푸드 강사로서 이 사실을 대중에게 알렸고, 좋은 먹을거리를 먹으려고 노력했다. 식비가 전보다 많이 들었지만 생산자에게 공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강사료로 먹을거리를 샀고 책 구매비를 줄였다.

    요즘은 당근, 오이, 감자 등은 텃밭에서 재배해 먹고, 그 외 작물은 생활협동조합에서 사먹는다. 밥도 현미밥이나 현미와 고구마를 섞은 현미고구마밥을 먹는다. 우유는 유기농 우유를 마신다. 고기 섭취량도 대폭 줄였다. 한 달에 한두 번 돼지고기를 먹는다. 마트에서 파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거의 먹지 않는다. 돼지, 닭 등을 대량 사육하는 과정에서 성장호르몬을 주사하고 스트레스를 주는데, 그런 고기가 아이들에게 좋을 리 없다. 정 먹여야 한다면 무(無)항생제 고기를 먹인다. 달걀은 방사해서 기른 닭의 유정란을 섭취한다.

    또한 음식을 만들 때는 기름을 최대한 적게 쓴다. 참기름, 들기름은 몸에 좋지만 비싸서 많이 쓰기엔 부담된다. 그렇다고 다른 기름을 쓰자니 유전자변형농산물(GMO)로 만들거나 화학첨가물이 들어갔을 우려가 있다. 그래서 요리할 때 주로 찌거나 삶는다. 나물은 데치고 채소는 생으로 먹는다. 조리법이 간단해 아이들도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은 덤으로 함께 요리하는 즐거움도 얻는다.

    물론 아이들이 처음부터 변화를 받아들인 건 아니다. 이런 음식을 좋아하기까지 1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식재료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아이들은 가끔 피자,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데 그럴 때면 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파는 피자와 쌀라면, 감자라면을 먹인다. 외식은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은 각자 텃밭에서 키운 상추, 당근, 토마토를 먹으며 먹는 즐거움을 알아간다.

    9월에는 그 기쁨을 본격적으로 느껴보고자 경북 상주로 귀농했다. 남편은 토종 종자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할 계획을 세웠다. 가축도 기른다. 풀을 뜯어 먹는 젖소도 한 마리 있어 우유도 손쉽게 먹게 될 것이다. 병아리도 100마리 정도 건강하게 길러 먹으려고 한다.

    소박하게는 자급자족이 목표지만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장기적으로 보면 유기농 농작물을 기르는 것이 전망 있어 보인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농업고교에 진학해 농부가 되면 좋겠다. 결국 사람을 먹여살리는 건 농부이지 않는가.

    밥상이 소박할수록 건강은 춤을 춘다

    3남 1녀를 홈스쿨링으로 가르치는 윤미경 씨는 슬로푸드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서 더 나아가 9월 농부를 꿈꾸며 경북 상주로 귀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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