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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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워라, 마셔라” 육식문화의 진원지

마포와 고기

  • 박정배 whitesudal@naver.com

    입력2013-09-16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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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워라, 마셔라” 육식문화의 진원지

    서울 마포에서 생겨난 돼지껍데기

    한강 남쪽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 마포는 서울의 끝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1968년까지 운행되던 전차의 종착역이자 시내버스 종점이었으며, 6·25전쟁 이전까지 서울로 오는 배들과 물산의 집산지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강화만이 막혀 한강으로 들어오는 배가 끊기면서 마포나루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뱃길이 끊긴 마포는 커다란 한강이 가로막은 땅의 끝이었다. 뱃사람과 장사꾼의 요기를 채워주던 해장국집과 설렁탕집도 덩달아 사라졌다. 그러나 마포는 여전히 서울 중심가와 가까웠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주로 남산 일대에 몰려 살았지만, 마포의 공덕동과 만리동, 염리동에도 터를 잡았다.

    전쟁이 끝나자 더 많은 사람이 공덕동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사창가가 형성됐고, 자연스레 시장이 들어섰다. 전쟁 이후 공덕동에 들어선 한흥시장은 1958년 당시 점포가 6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고 돼지갈비를 파는 식당도 생겨났다. 돼지갈비를 구워서 파는 식당이 등장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돼지껍데기, 주물럭 같은 음식이 마포에서 처음 생겨나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도축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고기문화가 깊고 넓게 퍼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일까.

    마포의 고기문화는 6·25전쟁 이후 본격화된 대한민국의 도시형 육식문화 성장의 압축 모델이나 다름없다. 그 시작점에 돼지갈비가 있다. ‘최대포’라 이름 붙인 ‘마포진짜원조최대포’와 ‘본점최대포’ 모두 돼지갈비 원조임을 자처하지만, 한흥시장에는 두 집 이전에 ‘유대포’라는 돼지갈비 전문점과 ‘광천옥’이라는 쇠갈비, 돼지갈비 구이 전문점이 있었다. 이 두 집은 오래전 사라졌다. 현재 마포를 넘어 돼지갈비 대명사가 된 두 최대포 집은 1950년대 중·후반에 창업했다.

    공덕동이 새로운 마포를 대표한다면 용강동은 오래된 마포를 상징한다. 마포나루와 마포종점 등 오랫동안 마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모두 용강동에 있었다. 6·25전쟁 이후 용강동은 소금과 새우젓 대신 목재를 이용한 제재소 같은 작은 공장이 가득했다. 거상들과 목돈을 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기생집이 번성하던 용강동에 서민적인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60년대 용강동 근처에 문을 연 ‘서씨해장국’은 지금까지도 영업하는 오래된 점포다. 서씨해장국을 포함해 마포와 그 주변 여의도 지역에는 고유한 마포식 설렁탕집이 성업 중이다. 마포식 설렁탕은 양지머리와 사골만으로 딱 한 번만 끓이고 기름기를 걷어낸 담백한 국물에 말린 고추를 볶아서 빻은 양념장을 넣는다.

    1966년 마포의 서민적 선술집을 대표하는 ‘원조할머니돼지껍데기’가 문을 열었다. 암퇘지의 껍데기를 미식 차원으로 끌어올린 이 가게는 2012년 재개발에 밀려 문을 닫았다. 70년대 여의도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마포 일대에는 건설노동자와 돈이 넘쳐났다. 71년 문을 연 ‘원조주물럭집’은 돼지고기 일색이던 마포에 쇠고기 요리인 주물럭을 등장시킨다. 등심에 양념을 하며 주물럭거리는 모습에서 이름이 붙은 주물럭은 본격적으로 고급 고기 시대의 등장을 알렸다. 자가용을 탄 사람들이 주말마다 가족 단위로 몰려들어 비싼 쇠고기 요리를 먹으며 달콤한 인생을 만끽했다.



    마포에는 갈매기살 골목도 있고, 공덕시장 먹거리촌을 튀김집과 양분한 족발 골목도 생겨났다. 독특한 부위에 새로운 조리법을 적용한 고기 음식들이 수십 년 사이 몇 개나 탄생한 것이다. 서울의 팽창과 외지인들의 정착, 외식 시대의 본격화에 맞춰 마포의 고기문화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번성해온 것이다.

    “구워라, 마셔라” 육식문화의 진원지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는 전국을 돌며 발로 음식 현장을 확인하고 고서와 옛날 사진, 신문 등을 통해 묻혀 있던 이야기를 발굴해 한국 음식문화사를 입체적으로 쓰고 있다. 5권으로 기획한 우리 음식문화 다큐멘터리 보고서 ‘음식강산 1, 2’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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