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5

2013.09.16

내 집 마련 꿈 그리 쉽게 포기?

젊은 층 주택 보유 의식은 계속 하락…주택 구매 핵심계층 살릴 정책 필요

  •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 myjin0922@daum.net

    입력2013-09-16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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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집 마련 꿈 그리 쉽게 포기?

    영국 공공임대주택은 1980년부터 기존 임차인에게 불하해왔다. 이 단지는 소유자와 임차인이 외관상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소셜믹스(social mix)를 이룬다(왼쪽). 영국 런던 동부에 위치한 공공임대주택 단지. 영국 BBC의 최고 인기 일일드라마 ‘East Enders(동부 끝자락 사람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도시에 사는 서민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고단한 일상을 이어간다. 최근 주택시장 상황은 이런 고단함을 더욱 고달프게 만든다. 거래 부진도 문제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전·월세난은 무주택 임차가구의 가장 큰 주거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도 전 급등하는 전셋값을 마련하느라 가계살림은 더 쪼들리는 반면, 소득은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2011년 한 해만 해도 전체 주택의 전셋값은 12.3% 올랐고, 아파트 전셋값은 16.2%나 상승했다. 반면 소득은 1.8% 증가하는 데 그쳤으며, 실질임금은 오히려 2.7% 감소했다.

    ‘하우스 푸어’ 전 세계적 현상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축률은 감소하고 가계 부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 집을 마련하려면 연소득의 5.1배가 있어야 하고, 집값이 높은 수도권에서는 연봉의 6.7배를 마련해야 주택 구매가 가능한 실정이다. 내 집 마련 기간도 결혼 후 8~10년이 걸리지만, 그사이 3~4번은 이사하게 되므로 내 집 마련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이렇듯 내 집 마련에 많은 역경이 있다 보니, 내 집 보유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201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만 해도 내 집 보유 의식은 83.7%였으나 2012년에는 10.9%p 감소한 72.8%로 나타났다. 젊은 층의 주택 보유 의식은 이보다 훨씬 낮다. 34세 이하 가구주의 주택 보유 의식은 61.1%, 35~44세 가구주는 67.7%에 머문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주택가격이 급락한 상황에서 미국 주택담보대출 전문업체 패니메이(Fannie Mae)가 조사한 2010년 주택 구매 의사는 74%였다. 2012년 영국 주택대출협의회(Council of Mortgage Lender)가 조사한 2012년 주택 구매 의사는 81%에 달했다.

    이렇게 내 집 보유 의식이 낮아지는 것은 요즘 젊은 층의 생활상을 대변하는 ‘삼포세대’ ‘88만원 세대’, 그리고 일을 해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근로 빈곤층(working poor)’, 집 때문에 고통 받는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런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거품경제가 붕괴한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취직 빙하기를 거친 젊은 세대와 그 시기에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중·장년 세대를 ‘비참세대(悲慘世代)’라고 부른다. 미국은 저글러(juggler)형 젊은이와 부메랑 키즈 현상, 영국 역시 부메랑 세대의 문제를 안고 있다. 모두 내 집 장만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빚어진 문제들이다.

    저글러는 여러 개의 공이나 접시, 지휘봉을 동시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이는 광대를 뜻하는데, 미국에서는 낮에는 일, 밤에는 공부 등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젊은 세대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높은 학비와 집세 부담으로 벌어진 현상이다.

    ‘성인이 되면 독립한다’는 서구식 사고방식도 이제 옛말이 돼간다. 최근 대학 졸업 후에도 엄격한 대출 기준 탓에 내 집 장만이 여의치 않고, 또 높은 집세가 부담스러운 젊은 세대 가운데 부모 집으로 다시 들어와 사는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2년 10월 13일자에서 2008년과 2012년 부모와 함께 사는 20~34세 영국인은 320만 명으로 1997년 이후 28%나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주택시장 진입 낮추기 프로그램

    내 집 마련 꿈 그리 쉽게 포기?

    프랑스의 아파트 풍경.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실업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높은 집세 탓에 주거 빈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와 과거로 회귀하기 힘든 주택시장 여건상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내 집 마련이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어찌 보면 우문이다. 내 집 보유 의식이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10명 중 7명 이상은 내 집을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내 집 보유 의식이 낮아졌다 해도 그것은 일종의 ‘포기’ 내지 ‘단념’일 공산이 크다. 물론 내 집 보유 의식이 거주 의식으로 전환되리라는 해석이 뒤따를 수 있지만, 거주 의식이 정착하려면 거주 안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따라서 내 집 마련의 꿈 자체는 여전히 희석될 수 없는 삶의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은 1900년대 중반 이후 공공임대주택을 복지 성장의 기조로 삼았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사회적 치유 차원이기도 했지만, 공공임대주택은 누구 할 것이 없이 내 집 마련 이전에 거쳐 가는 하나의 중간 단계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그전 시기에 집중 공급된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30년이 지난 2010년에도 공공임대주택이 갖는 사회적 안정 효과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4세대에 걸쳐 내려온 영국 공공임대주택은 1981년에는 전체 가구의 31%가 거주했으나, 2012년에는 18%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영국은 여전히 380만 호라는 공공임대주택 재고를 보유하며, 5가구 가운데 1가구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한다. 80년대 이후 기존 임차인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불하 정책은 영국의 자가 보유율을 68%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영국 BBC에서 30년간 인기 일일드라마로 방영 중인 ‘East Ender(동부 끝자락 사람들)’는 런던 동부에 집중된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배경으로 보통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시절 3가구 가운데 1가구가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했다는 사실은 공공임대주택이 ‘소외’ 대상이기보다 ‘일상’임을 의미한다. 그러한 많은 공공임대주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내 집 장만이 가능한 환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말 현재 영국 공공임대주택 대기자는 180만 가구에 이른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대기 수요에 대응하려고 2022년까지 연간 공공임대주택 4만5000호씩을 신규 건설(전체 신규 주택 건설의 15%)하고, 공공임대주택 불하로 한 채를 매각하면 한 채를 짓도록 의무화하는 ‘일대일 대체 공급’을 추진한다. 향후 공공임대주택 재고 비율을 20%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최근에는 내 집 마련 프로그램도 강화했다. 특히 자산 여력이 부족한 젊은 사회초년생과 핵심 근로층을 위해 주택 구매 시 필요한 초기 부담금을 줄여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최초 주택 구매 시 집값의 20%는 정부가 장기 부담하고 나머지 80%만 입주자가 분양하는 퍼스트바이(First Buy) 프로그램이 있다.

    반(半)소유 반(半)임대 방식의 지분형 소유 방식(Shared Ownership) 프로그램은 입주자가 초기에 25~50%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월세를 내며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자가 소유가 되는 구조다.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를 5년간 할인해주고 그 할인분을 정부가 적립해 향후 주택 구매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산을 형성해주는 렌트투홈바이(Rent to Home Buy) 프로그램도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자가 주택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목적이다.

    영국 외에도 많은 국가가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누가 어떻게 설계하든,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실험적이든 혹은 정식 프로그램이든, 비영리 민간부문의 자체 활동 차원이든, 많은 국가가 자국 특성을 반영해 이런 프로그램들을 점차 다양하게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3가구 가운데 1가구가 공공임대주택(전체 재고 중 31%)에 거주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대표하는 나라다. 네덜란드의 자가 점유율이 58%로 유럽 평균 61%보다 낮은 이유는 공공임대주택이 내 집 못지않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44세 이하 낮은 자가 보유율

    내 집 마련 꿈 그리 쉽게 포기?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인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철도 용지 위에 영구 임대아파트를 짓는 ‘행복주택 프로젝트’ 등을 발표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2010년 공공임대주택(전체 재고의 18%) 437만 호를 보유했으며, 6가구 가운데 1가구가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한다. 2000년 대도시권 내 공공임대주택 20% 의무 기준을 도입했고, 2001년 공공임대주택 회복을 위해 ‘사회적 결합을 위한 플랜’(Plan for Social Cohesion·PCS)을 수립해 2005~2009년 매년 공공임대주택을 10만 호씩 건설해왔으며, 2011년 신규 공공임대주택 14만 호를 신규 건설했다.

    그 밖에 많은 국가에서 지난 30년간 한때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후퇴했지만, 이후 부작용을 만회하는 차원에서 2000년부터 본격적인 회복 작업에 들어갔고, 재정에서 많은 예산을 선투자하며 일자리 창출과도 연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17년까지 연간 공공임대주택 11만 호 건설을 목표로, 현재 5% 수준인 장기공공임대주택의 재고 비중을 8~10%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임대주택에 청·중년층이 얼마나 입주할지는 재고해볼 일이다.

    우리나라의 자가 점유율은 2010년 54.3%, 2012년은 이보다 다소 떨어진 53.8%였다. 임차가구 가운데 다른 지역에 주택을 보유한 가구까지 감안한 자가 보유율은 2010년 61.3%, 2012년 60.3%였다. 2012년 주거실태조사의 연령대별 자가 보유율을 살펴보면 34세 이하는 22.0%, 35~44세 51.8%, 45~54세 63.7%, 55세 이상은 74~76% 수준이다.

    문제는 주택 구매 핵심계층인 44세 이하에서 나타나는 낮은 자가 보유율이다. 이들이 주택을 구매하면 주택 거래시장 활성화뿐 아니라 전세난 일부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데, 이들의 자가 보유 의식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이 문제다. 따라서 청·중년층에 맞는 주택 구매 프로그램을 새롭게 제시하지 않는 한, 이들이 지금처럼 높은 집값과 매매시장 침체 상황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고 나서지 않을 공산이 크다.

    현재 같은 저소득층 위주의 공공임대주택을 계속 확대해나가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소득 경계선 주변에 자리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자격은 안 되고, 그렇다고 민간 주택시장에서 자력으로 생존하기도 어려운 한계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을 위한 조건부 임대주택 공급, 할부형 분양주택 공급 등을 통해 이들이 내 집 마련에 조금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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