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4

2013.09.09

‘파란색 매직’이 민심 사로잡을까

위기의 민주당 박근혜 벤치마킹… 시도는 좋지만 변화 의지가 관건

  • 전예현 내일신문 정치팀 기자 whatisnew@naver.com

    입력2013-09-06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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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 매직’이 민심 사로잡을까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운데)와 전병헌 원내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9월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산빌딩에서 열린 민주당 여의도 당사 입주식에서 새로운 당 로고가 새겨진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당이 ‘박근혜 벤치마킹’을 시도해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은 9월 1일 당사를 서울 여의도로 옮기고, 당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꿨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위기 때마다 구해낸 전략과 닮았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천막당사’를 통해 절실한 변화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지난해 대통령선거(대선)에서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고 당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꿔 과거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즉 민주당이 당사를 옮기고, 당 색깔도 60년 만에 바꾼 것은 위기 상황을 변화로 돌파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최근 민주당은 낮은 지지율에, 옆 동네인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사태까지 불거지자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바로 전날 민주당이 당사를 이전하고 새 로고와 색깔 등을 공개한 것은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과거와 차별화 다목적 포석

    민주당이 의도한 변화는 크게 두 가지다. 여의도로의 복귀는 국회가 있는 정치 중심지로 당사를 옮겨 정당정치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중앙당 축소는 권력 분산을 의미한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이 독점하던 주요 정책 결정권과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드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 박근혜 대표가 한나라당에 대해 ‘공룡’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던 시절, 허름한 천막당사에서 “모든 걸 내려놓을 테니 한 번만 더 살려달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던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파란색으로의 당 색깔 변경은 미래를 뜻한다. 민주당의 고질병인 계파 갈등을 줄이려고 전통적으로 당을 상징하던 초록색도, 친노(친노무현)계의 노란색도 아닌, 전혀 다른 색을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민주당의 파란색 선택은 10월 재·보궐선거(재보선)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지개 연대’의 부작용을 살짝 피해가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무지개 연대’란 각각 다른 색깔을 가진 야권 세력이 모여 후보를 단일화하고, 보수 후보와 일대일 구도를 만든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최근 몇 년간 주요 선거에서 연대를 통해 승리했는데, 2010년 최초로 전국적 야권 연대를 이뤄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당시 민주당의 주요 파트너는 통합진보당의 전신 민주노동당(민노당), 민주당에서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갈라져 나온 국민참여당 등이었다. 이후 몇 년간 야권의 선거운동 현장에는 친노의 노란색 풍선, 민주당 전통 당원들의 초록색 깃발, 그리고 민노당의 상징인 주황색 모자가 어우러졌다. 이어 지난해 4·11 총선에서는 국민참여당 일부 세력과 손잡고 탄생한 통합진보당이 민주당과의 야권 연대를 통해 13석 원내진출 성적표를 거뒀다.

    그런데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옛 민노당) 및 재야세력과의 무지개 연대는 반기면서도 내심 한 가지를 걱정했고, 그 문제가 드디어 최근 터졌다. 바로 ‘종북 논란’이다. 종북 논란은 이명박 정권과 지난 대선에서도 불거졌으나, 당시에는 진보정당에 대한 국민의 애정이 남아 있어 선거판을 뒤흔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이 의원은 지난 총선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에 휩싸였던 당사자다. 언론에 공개된 과격한 내용의 녹취록은 민주당 의원들까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여기에 일부 지역에서는 2010년 지방선거 연대로 공동정부 구성에 참여했던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까지 진행되면서 민주당 출신 지방정부 관계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은 대놓고 친북 인사의 국회 입성에 대한 민주당의 원죄론을 주장한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노들이 주도한 야권 연대 책임론’이 물밑에서 제기되면서 분열 조짐까지 나타난다.

    따라서 민주당이 당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꾼 것은 통합진보당과 거리를 두고 연대 부작용 책임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보인다. 또 과거 당 비주류를 중심으로 탄생한 김한길 지도부가 과거 주류와는 차별화한 리더십과 노선을 증명하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김한길 지도부의 파란색 마케팅에 대해 “시도는 좋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당사 이전과 당 로고 및 색깔 변경을 공표한 다음 날인 9월 2일 민주당 지도부가 활짝 웃는 사진이 주요 신문 1면에 실리자 주요 당직자들도 미소를 지었다. “정말 오랜만에 민주당이 긍정적 주제로 관심을 끈다”는 말도 나왔다.

    파란색 마케팅만으로는 2% 부족

    ‘파란색 매직’이 민심 사로잡을까

    2012년 3월 15일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비상 대책위원들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회의에 당 홍보국 에서 제작한 빨간색 점퍼를 입고 등장했다.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한 관계자는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변화가 낫다”고 평했다. 민주당원으로 10년 이상 활동한 한 시민도 “노란색·초록색, 친노·비노 논란도 지겨웠는데 이제 새로운 색깔로 바꾸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 민주당의 파란색 마케팅에는 관심을 증폭시킬 ‘미래 주자’가 빠졌다. 민주당 소장파 한 관계자는 “박근혜의 빨간색 마케팅이 성공한 이유는 당의 변화와 유력한 대선주자가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의 빨간색 운동화와 재킷, 박근혜와 여대생들의 만남이 잇달아 화제가 된 것은 변화를 실현할 힘을 지닌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또 민주당이 파란색이 상징하는 미래를 대중에게 각인시켜줄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예로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빨간색으로 당 색깔을 바꾸고 여성경제인 김성주, 20대 청년 이준석, 다문화가정의 이자스민 등을 영입해 당의 변화를 대중이 느끼도록 만들었다. 과거 한나라당의 ‘꼴통 보수’ ‘낡은 이미지’를 색깔 마케팅과 인물 교체로 털어낸 셈이다. 반면 민주당의 파란색 마케팅은 “밥상 위 음식은 바꾸지 않고 그릇만 바꿨다”는 지적을 받는다.

    민주당이 ‘파란색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기존의 야권 연대 방식과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파란색 마케팅이 민주당의 과거 잘못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9월 2일 불교방송 ‘박경수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 사람들이 국회로 들어오는 데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도와준 꼴이 됐다”며 “명백한 사실로 밝혀질 경우에 그 부분에 대한 민주당의 의견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야권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과정에서 이정희 후보 측의 조작 파문이 제기될 때 피해자이면서도 결국 민주당을 탈당했던 김희철 전 의원은 “중앙당이 야권 연대에만 신경 쓰면서 결국 부정의혹에 대해서는 미적거린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파란색 변화가 효과를 거두려면 잘못을 짚어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출신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의 파란색 변화에 대해 뼈 있는 조언을 했다.

    “마누라 빼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꾼다던 민주당 지도부의 말이 그동안 얼마나 지켜졌나. 결국 김한길 지도부의 파란색 마케팅 성패는 실제로 유권자들이 민주당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인정하는지에 달렸다.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급조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성 있는 변화의 몸부림인지는 유권자가 판단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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