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2

2013.08.26

‘내각경제’에 밀리는 군부경제

장성택 중심 세력에 先 자원 배분…민생 증진은 여전히 외면

  •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dpblue@kinu.or.kr

    입력2013-08-23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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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경제’에 밀리는 군부경제

    7월 27일 평양 전쟁승리관 참관을 마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운데)가 서방 취재진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서방 기자들에게 이처럼 가깝게 접근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평양이 개성공단 가동 재개에 합의한 일련의 과정은 그간 북한의 극단적 행태에 익숙해 있던 이들에게는 사뭇 흥미로운 변화다. 군부 중심의 강경한 목소리보다 경제를 중시하는 ‘현실론’의 영향력이 더 커졌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문제만이 아니다. 이외에도 김정은 정권하의 북한에서는 이전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경제 동향이 상당수 눈에 띈다.

    이러한 흐름은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권력 배분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한 사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흔히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는 정치권력 배분과 경제자원 배분이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불일치가 심할 경우, 권력 배분에 비해 자원 배분이 적다고 느끼는 측이 정치권력의 우위를 활용해 둘이 일치하도록 영향을 끼치고자 하기 때문이다.

    김정일 시대였던 1995년 이후 선군정치 기간에 북한의 주류 세력은 단연 군부였다. 이들의 경제활동은 1995년 선군정치 개시와 함께 급격히 증가했고, 각종 무기체계는 물론 광물과 수산물 등 광범위한 수출권을 독점하면서 외화벌이와 시장 확대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합법과 비합법을 넘나드는 북한 특유의 무역구조가 형성된 시기다.

    김정은 시대 평양의 새로운 행보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주류 세력은 민간 당료와 공안군부 세력이다.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민간 당료 세력은 2005년 이후 선군군부에 대한 균형추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세력 확장과 함께 시장 억압과 국영부문 강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특히 2009년 시작된 김정은 세습 과정에서 선군시대 군부는 분열,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총정치국장 조명록을 중심으로 군부가 단일대오를 형성했다면, 2008년 김정일이 뇌경색을 겪은 이후 2009년 권력 개편 과정에서 이영호 총참모장을 중심으로 하는 야전군부의 득세가 나타났으며, 이들에 대한 경제 이권 배분이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2012년 김정은 정권이 공식 출범한 이래 장성택 행정부장, 부인 김경희, 최용해 총정치국장을 중심으로 한 민간 당료 세력과 공안군부 세력은 앞 시대의 주역이던 야전군부에 대해 완전한 우위를 차지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정책, 특히 최근 평양이 보여주는 새로운 행보는 이러한 정치권력 배분 변화를 염두에 두고 읽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그림을 얻을 수 있다. 크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2012년 4월 정권이 공식 출범한 이후 김정은은 각종 기념비적 치적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놀이장, 승마장, 롤러스케이트장, 마식령 스키장 등 각종 유희·오락 시설, 평양 도시 미화와 함께 대규모 상업시설과 식당 준공 등도 포함된다.

    둘째, 북한은 2012년 6월부터 ‘6·28 조치’라는 것을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소 국영기업의 경영 자율권 증가, 협동농장에서의 분조 규모 축소를 통한 인센티브 강화 등 전향적 내용이 포함됐다. 아울러 올 4월에는 2002년 경제개선조치를 주도했던 박봉주 총리를 재임명했다. 여러 조치는 아직까지도 시범 추진 단계에 머물러 큰 진전을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준비를 함께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은 2013년 쌀값과 환율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2013년 초반과 비교하면 8월 현재 쌀값과 환율은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북한 쌀값은 추수 직후를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쌀값과 환율을 안정화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자 과거와 비교할 때 상당한 치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넷째, 군부 경제활동에 대한 견제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하반기에는 군부의 경제활동을 축소하고 무역 특권 등을 내각에 반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2012년 7월 15일 이영호 총참모장 겸 정치국 상임위원이 갑작스레 해임된 데는 군부의 경제활동 축소에 대한 반발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내각경제’에 밀리는 군부경제

    최근 방북한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을 통해 공개된 북한 마식령 스키장의 호텔 공사현장.

    그들만의 ‘현대판 부국강병’

    아울러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올해 쌀값과 환율을 안정화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3월부터 6월까지 ‘2호미’, 즉 전시비축미를 방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군부가 전시비축미 방출을 용인한 것은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극히 이례적이다. 2009년 11월 옛 화폐와 새 화폐를 100대 1로 교환하는 조치를 진행하면서 물가안정을 위해 2호미를 방출하려고 했지만, 군부 반대로 끝내 무산된 적이 있다. 그 결과는 화폐 교환조치 이후 쌀값이 1년 사이 거의 100배 상승하는 초인플레이션이었다. 올해 북한 경제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선 셈이다.

    다섯째, 이러한 여러 동향에도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한 우선적 자원 배분은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3월 조선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해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내건 바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민간 당료 세력은 자기 파벌의 권력 증가에 부합하도록 경제적 이득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자원 배분을 변경하려 애쓰는 듯하다. 이러한 동기가 최근 경제동향 이면에 깔린 것이다. 더불어 이들은 정권 유지와 강화를 위해 북한 경제가 더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개편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이 과연 민생 증진이나 경제성장을 유발할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2013년 평양이 이전과 정치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바로 정권 대 주민 의 정치적 세력 균형이다. 정권은 여전히 주민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도전받지 않는다. 따라서 정권에 대한 자원 배분이라는 희생을 통해 민생 증진을 시도해야 할 어떠한 압력도, 이유도 없다. 이는 평양 당국이 고용 증가나 국내 제조업 활성화를 촉진하는 어떤 정책도 내놓지 않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대신 북한 정권은 여전히 광물 수출, 관광 진흥, 노동력 수출 같은 방법을 경제정책의 중추로 삼는다. 무기거래를 통한 군비 확충도 마찬가지다. 고용 증가와 국내 제조업 활성화로부터 나오는 이득은 사회로 확산되고 주민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이런 식으로 얻은 외화는 정권이 독점할 뿐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정책은 정권과 군비는 부강해지지만 인민 생활은 개선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름 하여 ‘현대판 부국강병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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