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1

2013.08.19

실크로드 모래바람은 문명이 오간 역사 알고 있다

중국 시안에서 우루무치 거쳐 톈산산맥까지 황홀한 여정

  •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naver.com

    입력2013-08-19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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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로드 모래바람은 문명이 오간 역사 알고 있다

    과거에는 번영했지만 지금은 폐허로 변한 고창고성 유적지.

    3000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 시안(西安)은 과거 동서양 문화 교류에 중요한 구실을 하던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다. 옛날 중국 비단은 서방에서는 황금과 맞바꿀 만한 귀중한 물건이었다. 실크로드라는 이름도 실크(silk), 즉 비단에서 유래했다. 당나라 때는 장안(長安)이라고 불리던 시안은 진나라 시황제, 양귀비, 삼장법사 같은 유명한 사람의 발자취가 어린 곳이다. 시안 시내 도로는 마치 바둑판처럼 잘 닦여 있다. 도로는 600년 전 명나라 때 개설한 것이 많다고 한다. 시내를 돌아보면 오래된 성벽이나 불탑, 그리고 최근 지은 고층건물 등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3000년 고도 시안에 남은 유적들

    실크로드 모래바람은 문명이 오간 역사 알고 있다
    시안에는 이름난 유적지와 명승고적이 많다. 실크로드와 관련한 곳을 찾아보니 대안탑과 대자은사가 있다. 대자은사는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불교사원으로 당나라의 4대 불경 번역 장소 중 한 곳이다.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이 이곳에 머물면서 불교 경문을 번역하며 여생을 보냈다. ‘서유기’의 삼장법사로 잘 알려진 현장은 12세에 출가했으며, 629년(일설에는 627년)에 불경 원본을 얻으려고 인도 여행을 떠났다가 16년 만인 645년 불사리 150알, 불상 8구, 경전 520질 657부 등을 가지고 당나라로 돌아왔다. 세계 8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는 시안의 진시황릉 병마용갱도 볼만한 곳이다.

    시안을 출발해 험난한 실크로드를 가다 보면 먼저 만나는 큰 도시가 란저우다. 옛날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곳으로 황토빛 대하인 황하가 시내를 관통하며 흐른다. 란저우는 중국 간쑤성(甘肅省)의 성도로 명승고적이 많고 자연 풍경이 독특하다.

    자위관은 만리장성 서쪽 끝에 있는 성채로, 유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해 만든 것이다. 만리장성은 길이가 장장 6000km나 되는 세계 최고 길이의 성이다. 몽골족, 돌궐족 같은 이민족의 공격이 잦았던 자위관은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지역으로, 1372년 명나라 장군 풍승이 허시후이랑을 점령했던 몽골족을 물리치고 세운 견고한 성채다. 기원전 114년에 지은 양관박물관은 실크로드에서 으레 거치게 돼 있는 길목이다. 현재의 성곽은 답사차 실크로드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 모습대로 만든 곳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성벽 밖에 성을 공격하던 공성용 무기를 전시해놓았다.



    둔황은 자위관 다음에 나타나는 실크로드 요충지다. 과거 서역을 향해 떠났던 사람들이 쉬어가던 오아시스에 세운 도시다. 밍사산(鳴沙山)의 모래 폭풍, 사막을 수놓는 낙타 행렬, 둔황 석굴의 부처상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밍사산은 동서 약 40km, 남북 약 20km에 달하는 거대한 모래산이다. ‘달의 사막’이라고도 부르는 곳으로 거대한 모래 언덕은 적·황·녹·백·흑색을 띠며, 오후에는 빛과 그림자가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곳의 기묘한 자연풍경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과거 모습 간직한 투루판 재래시장

    실크로드 모래바람은 문명이 오간 역사 알고 있다

    둔황 밍사산.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래산이다(위). 불교 유적이 가득한 둔황 막고굴.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른 아침 밍사산의 날카로운 산등성이 너머로 떠오르는 해는 장관이다. 밍사산의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지만 무더운 날씨 속에서 오르려니 갈증이 느껴지고 모래에 발이 푹푹 빠져 곤혹스럽다. 이따금 불어오는 짙은 모래바람에 숨쉬기도 어렵다. 얼마 되지 않은 길도 이렇게 힘든데 그 옛날 머나먼 실크로드 여행을 했던 사람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느껴진다. 밍사산 밑에는 초승달 모양의 웨야취안(月牙泉)이 있다. 2000여 년 전 기록에도 나오는 곳인데, 삭막한 사막 풍경과 달리 웨야취안 주변은 녹음이 우거진 오아시스 지대다.

    둔황 막고굴은 불교예술의 보고다. 198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는데,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선정 이유를 “둔황 막고굴은 불교 조각상과 벽화로 유명한 곳으로 1000년을 지속한 불교예술의 진수”라고 했다. 우리에게 둔황 막고굴이 중요한 이유는 신라 승려 혜초가 남긴 불후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이곳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둔황 막고굴은 기원전 366년부터 바위산을 파서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세우거나 불화를 그렸다. 세월이 지나면서 동굴이 늘어나 7세기 무렵에는 동굴이 1000여 개에 달해 천불동(千佛洞)이라고도 불렀다. 그 동굴들 중에는 불상으로 가득 찬 곳도 많다.

    투루판은 중국에서도 무척 무더운 곳이다. 여름 한낮 기온이 보통 40도를 넘어 50도 가까이 돼 대부분 지역에선 사람이 살지 않는다. 화염산이란 곳이 있는데 실제로 가서 보니 울퉁불퉁한 지형이 꼭 불길이 치솟는 것 같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화염을 뚫고 삼장법사와 함께 지나갔다는 곳이다. 화염산 맞은편에는 고창고성(高昌古城) 유적지가 있다. 500년 무렵에 세웠는데 당나라에 의해 멸망한 고창국의 수도였다. 유적지는 넓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훼손돼 일부만 옛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만난 위구르족 여인이 치마 한쪽을 들어 올리면서 인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투루판은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였다. 2000년 전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들이 물을 얻고 휴식을 취하려고 으레 투루판에 들렀다. 투루판 재래시장에 가보면 향료 상점, 푸줏간, 건포도 등 말린 과일을 파는 상점 등이 많다. 이곳의 왁자지껄한 모습에서 과거 모습이 떠오른다.

    투루판 시내에는 소공탑이 있다. 옛날 투루판의 왕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둥그스름한 모양의 높은 석탑은 이슬람 양식이다. 디자인이 화려한 편으로 전체 높이는 44m에 달한다. 주변에는 포도밭이 많다. 투루판은 날씨가 아주 건조하고 뜨거워 포도가 잘 자란다. 투루판을 다니다가 땅 위에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봤다. 놀라서 자세히 보니 유전지대였다. 안내인이 이곳은 석유 매장량이 풍부하다고 자랑해 부러움이 앞섰다.

    투루판은 위구르어로 ‘파인 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투루판은 톈산산맥의 남쪽 산기슭에 자리한 분지다. 불타는 사막 위에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다. 투루판으로 향하는 길은 모래먼지가 날리는 황량한 사막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이런 길 위에 과연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막상 다녀보면 수목이 우거지고 설산에서 녹은 시원한 물이 흐르는 수로가 도시 곳곳으로 뻗어 있는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실크로드 모래바람은 문명이 오간 역사 알고 있다

    투루판의 소공탑. 이슬람교 모스크이다(왼쪽). 실크로드는 과거 동서양 문화 교류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아름다운 목장’ 우루무치

    우루무치는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중심도시다. 우루무치에선 그동안 다녔던 도시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위구르족인데 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얼굴과 생활습관을 가졌다. 위구르족 중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많아서 곳곳에 모스크가 자리한다. 우루무치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이다. 옛날부터 군사 요충지이기도 해 당나라 때부터 군사를 주둔했던 곳으로, 실크로드 북쪽 길목에 자리해 수많은 대상이 지나갔던 곳이다. 양 꼬치 요리를 즐겨 먹는 이들을 보면 아련하게 옛 실크로드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루무치 교외에는 인간 손이 닿지 않은 태고의 자연이 있다. 톈산산맥은 물론이고 주변의 높은 봉우리에는 거대한 만년설이 쌓여 있다. 산 밑에는 커다란 호수가 자리한다. 호수 이름이 우리나라 백두산 천지와 같은 천지(天池)다. 해발 1190m에 있는 호수로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자동차로 산 밑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타면 톈산산맥 입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걸으면 10분 만에 천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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