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0

2013.08.12

아홉마디 @오메가

제11화 명화 감상

  • 입력2013-08-12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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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손에 잡은 듯 좋았다. 파트너 참여 제의라니, 그건 유혹 이상이었다. 보라는 들뜬 마음으로 그 명화 감상 인터넷 카페를 열었다. 화면에는 르네상스 명화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구이도 레니의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조반니 벨리니의 ‘거울 보는 여자’….

    라파엘로의 ‘라 포르나리나’, 손등으로 살짝 받쳐 올린 여인의 가슴은 잡힐 듯 소담했다. 화가 라파엘로가 사랑했던 그녀, 천으로 가린 몸에선 관능미가 꿈틀거렸다.

    그림은 에로틱 사진작가 마리아노 바르가스의 손을 거쳐 사진으로 바뀌고 있었다. 바르가스의 ‘클레오파트라 알몸’이었다. 왼손에 쥔 독사의 입이 그녀의 붉은빛 유두에 닿아 있었다. 그 독사의 입에서 강렬한 남성이 보였다.

    침대에 걸터앉아 치마를 걷어 올린 바르가스의 여인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몸을 관찰하고 있었다. 하얀 다리 사이로 여인의 붉은 빛 꽃술이 드러나 보였다. 외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진 사이로 여자 BJ(방송 자키)가 등장했다.

    보라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그들이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최고의 카페가 될 거예요. ‘즐감’하세요.’

    휴대전화를 끄려는데 다시 손이 떨렸다. 필승이었다. 그날의 감청 사건이 떠올라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보라야. 브로커가 그러는데 순은 북한 땅에 없대.”

    “그래?”

    보라는 필승의 전화를 받으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여자 BJ는 무대 위에서 섹시 포즈를 선보였다. 무대 위를 걷다 상의를 살짝 벗었다. 채팅창에 ‘좋아요’ 사인이 떴다. 여자는 입을 열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짝을 소개할게요.”

    여자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BJ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카페는 마리아노 바르가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연 공간이에요. 르네상스 명화를 사진으로 재현한 아티스트지요. 원작 그림과 함께 보면 환상이에요.”

    여자는 춤추듯 무대 위를 걷다 상의를 벗어던졌다. 블라우스 아래 감춰진 가슴선이 드러났다. 손끝으로 어깨끈을 늦추자 그 사이로 젖무덤이 보였다.

    비욘세의 ‘노티걸(Naughty Girl)’이 흘러나왔다. 여자는 노티걸의 노랫말을 우리말로 읊조리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섹시함이 느껴져요(I’m feelin’ sexy)… 이봐요, 내 이름 한 번 불러줘봐요(I wanna hear you say my name boy)… 날 만져보세요(If you can reach me)… 몸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잖아요(You can feel my burning flame).

    여자가 남자를 이끌었다. 등 뒤에서 여자를 껴안은 그의 복근이 꿈틀거렸다. 음악에 맞춰 남자는 여자에게 몸을 밀착했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노랫말을 속삭였다.

    오늘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I just might take you home with me).

    여자는 남자에게서 몸을 빼내 비욘세처럼 치마도 벗어던졌다. 속살이 비치는 빨간색 팬티만 걸친 채 남자 앞에 서서 랩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봐요, 당신의 몸이 느껴진 순간(Baby the minute I feel your energy)… 난 정신을 잃을 뻔했어요(Your vibe’s just taken over me)… 미쳐버릴 것 같아요 정말(Start feelin’ so crazy babe).

    음악 볼륨이 낮아지면서 모니터에 프랑수아 부셰의 그림이 나왔다. ‘리날도와 아르미다’ ‘판과 시링크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모두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다.

    “보이시죠? 명화 세 점보다 더 아름답게, 더 뜨겁게 표현될 거예요. 잠시 후원자를 소개합니다.”

    언제 끊었는지 필승과 통화가 끝나 있었다. 후원 명단을 따라가던 보라는 한 이름에 시선이 꽂혔다.

    “어, 사수일?”

    보라는 급히 수일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수일은 그날 이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그날 보라의 감청 흔적을 지우려고 접속했을 때 이상한 신호가 감지되긴 했다. 기우였나 하고 잊을 즈음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위험한 장난을 쳤군요. 저런, 내 그물망에 당신이 있네요.’

    수일은 머리끝이 주뼛 서는 충격을 받았다. 상대에게 접속 시도를 했으나 흔적이 없었다. 휴대전화 추적 장치의 시동을 거는데 또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소용없어요. 난 지금 당신의 모든 걸 지켜보고 있어요.’

    휴대전화로 철방과 연락을 하려는데 상대는 그마저 내버려두지 않았다.

    ‘덫에 걸린 동물이 발버둥을 치면 어떻게 되죠?’

    그날은 철방이나 보라에게서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하루였다.

    수일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후원자라는 그들의 미끼를 물기는 했지만 개운치 않았다. 정리하고 일어서려는데 전화가 왔다.

    “오빠, 보라야. 명화감상 카페 알아?”

    “네가 어떻게 그걸….”

    “동명이인이 아니었구나.”

    아홉마디 @오메가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톡식(Toxic)’이 흘러나왔다. 모니터에는 ‘리날도와 아르미다’가 보였다. 여자는 가슴을 드러낸 채 침대에 누워 있고, 남자는 침대 아래서 여자를 바라본다. 십자군원정에 나선 리날도와 사라센의 무녀 아르미다가 사랑에 빠진 모습이었다.

    ‘톡식’ 리듬에 맞춰 여자는 스피어스처럼 춤을 추다 침대 위에 눕는다. 이리저리 다리를 꼰다. ‘톡식’을 따라 부르며 남자를 유혹한다.

    당신, 아시나요(Baby, can’t you see)… 난 원하고 있어요(I’m calling)… 당신 같은 남자를요(A guy like you).

    남자와 여자는 명화 속 장면을 재현했다. 여자는 침대에 눕고, 남자는 그 옆에 앉았다. 입고 있던 여자 속옷이 남자의 손에 의해 벗겨졌다. 여자가 속삭였다.

    경고를 보냈어야죠(Should wear a warn ing)… 위험하다고요 (It’s dangerous)… 내가 빠 져들고 있잖아요(I’m falling).

    ‘리날도와 아르미다’가 사라지고 ‘판과 시링크스’가 등장했다. 무대 위 남자와 여자의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았다. 여자는 비스듬히 누워 왼손을 남자의 오른쪽 어깨 위에 얹었다. 남자가 여자를 와락 껴안았다.

    뜻밖이었다. 여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리듬에 맞춰 도망이라도 치듯 무대 위를 빠르게 걸었다. 걷다가 다시 ‘톡식’에 맞춰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출구가 없어요(There’s no escape)… 더는 기다릴 수도 없어요(I can’t wait).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이제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여자가 더 적극적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향해 속삭였다.

    내게 다가와주세요(I need a hit)… 난 그걸 사랑하거든요(I’m loving it)… 이봐요 그걸 내게 주세요(Baby, give me it).

    ‘판과 시링크스’가 사라지고 ‘헤라클레스와 옴팔레’가 등장했다. 남자는 여자를 침대로 이끈다. 둘은 마주보고 눕는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와 동시에 상반신을 일으켜 세워 입술을 나눈다. 남자는 여자 젖가슴을 움켜잡는다. 여자는 ‘톡식’을 따라 부른다.

    당신의 입술이 느껴지면요(With a taste of your lips)…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에요(I’m on a ride)… 당신은 중독성이 있어요(You’re toxic).

    무대 위 남녀가 정사신을 만드는 사이 채팅창의 현금은 수백만 원을 넘겼다. 보라의 휴대전화가 심하게 떨렸다.

    “보라 씨, 준비됐습니까?”

    음험한 음성이 들렸다.

    “….”

    “당신은 더는 출구가 없어요. 이미 중독됐으니까요.”

    문밖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들렸다. 대답이 없자 주먹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라는 꼼짝할 수 없었다. 마치 마법에 걸린 듯했다. 그 음성이 보라를 놓지 않았다. 당신은 출구가 없어요. 이미 중독됐으니까요. 문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보라야, 나 수일이야. 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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