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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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색깔로 돌아온 ‘여성 뮤지션’

포스트 홍대 여신 시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3-07-29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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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색깔로 돌아온 ‘여성 뮤지션’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인디신에 변화 물결이 밀려왔다. 펑크, 하드코어 등 마니아 지향적인 음악이 쇠퇴하고 모던록, 포크 등 ‘연성’ 음악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어디서 그런 변화가 밀려왔을까.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서울 홍대 앞은 대대적인 토목 공사에 들어갔다. 가옥촌을 헐어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했고, 홍대 정문 앞 놀이터를 전면 개·보수해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유동 인구가 급격히 늘었고, 클럽데이와 희망시장 같은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져 언론으로부터 조명을 받았다. 예술가들이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희망시장은 비주류 이미지를 탈바꿈시켰다.

    때마침 불어닥친 DSLR(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 열풍은 인디음악에 관심 없던 이들을 삼청동에 이어 홍대 앞으로 끌어들였다. 홍대 앞은 주말에 출사를 나온 새로운 소비자를 위해 카페를 쏟아냈다. 그때부터였다. 감성과 일상의 시대가 시작된 것은. 2004년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엄청난 성공은 새로운 수요의 방증이었다. 획일화한 대중문화에서는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렇다고 극단으로 치닫기에는 소심한 20~30대 여성의 목마름을 대변하는.

    그 세대, 그 감성에 오롯이 속한 여성 뮤지션들이 데뷔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미니홈피 배경음악(BGM)이나 컬러링 등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음악’이 음악시장을 지탱하고 있었을 때다. 자극적이지 않은 그녀들의 음악은 남성 위주의 인디신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으로 치고 올라왔다. 남성이 주도하는 밴드에서 보컬을 맡거나 키보드를 치던 여성들은 그 무렵부터 음악의 주체가 됐다. 어쿠스틱기타를 들고 읊조리듯 노래하는 그녀들을 누군가가 ‘홍대 여신’이라 묶어 부르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가수 이상은이 제시했던 어떤 여성성이 2000년대 중반 홍대 앞에 돌아온 것이다.

    ‘여신들’이 범람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여성 뮤지션이 ‘바람’ ‘상처’ ‘여행’ 같은 단어로 채워진 평범한 멜로디의 노래를 나긋한 목소리로 불렀고, 너나없이 단순함을 넘어 빤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들려줬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소리 소문 없이 잊히고 말았다. 하지만 여신이라 불리는 것을 불편해하던, 이 ‘신화의 시대’를 개척한 장본인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음악을 꾸준히 해왔다.



    2013년은 그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자리에 모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한희정, 타루, 오지은, 옥상달빛, 최고은, 요조 등 싱어송라이터 집단과 디어클라우드, 가을방학 등 자기 목소리를 지닌 여성 보컬 팀이 일제히 새 앨범을 내며 돌아왔다. 1980년대 초반 태어나 20대 초에 음악을 시작한 그들은 더는 ‘여신의 전형성’에 갇혀 있지 않다. 이야기는 만개하고 소리는 확장됐다. 남성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감성과 시선, 하지만 세상이 원하는 지점에서 비켜서 있는 개성이 그들 모두의 음반에 담겼다. 개별화된 변화가 한 시간대에 모여 비로소 다른 채도의 물감을 담은 팔레트로 우리 앞에 놓인 것이다.

    물감 채도를 짙게 만든 동인은 무엇일까. ‘여성’ 뮤지션이 아닌 여성 ‘뮤지션’이 되겠다는 마음, 그리고 30대를 맞이해 얻게 된 어떤 상태들일 것이다. 성찰, 확장, 혹은 그와 유사한 카테고리에 있는 단어들 말이다. 결국 뮤지션으로서의 주체성이 그들을 ‘포스트 여신 시대’의 주체로 이끌었다. 가요계를 장악하던 걸그룹의 쇠퇴가 눈에 띈다. 걸그룹의 특성상 스스로 효용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적으로 소비될 것이냐, 음악으로 성장할 것이냐. 지금 이곳 대중음악계와 대조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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