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8

2013.07.29

호주를 떠돌고 있는 경환 씨 소문들

대규모 빌딩 건설·쇠고기 가공육 공장 등 재산 도피 의혹 여전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3-07-26 1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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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를 떠돌고 있는 경환 씨 소문들

    호주 퀸즐랜드 주도인 브리즈번 전경. 1980년대 후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 씨가 이곳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에 대한 압류 및 압수수색을 단행한 뒤 이들의 재산 해외 도피 의혹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전 전 대통령의 큰아들 재국 씨가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30억 원 이상을 빼돌렸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정황은 알려진 게 없다.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 해외 도피 의혹은 19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사안이다. 88년 국회 5공비리 청문회 등에서 “전 전 대통령이 동서인 김상구 전 호주대사를 통해 현지에 농장과 토지를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당시 평민당 총재직에서 갓 물러난 상태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전 전 대통령 일가가 호주에 막대한 재산을 도피해놓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 수사팀은 국제 수사 공조체제가 구축되지 않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당시 건설회사 사장 “대리인 만나”

    그동안 전씨 일가의 해외 재산 도피와 관련해 가장 왕성한 소문이 나돈 곳은 호주다. 기자는 1997년 6월 전씨 일가의 자금 도피와 관련해 제보를 받고 호주 취재를 간 적이 있다. 호주 동포 A씨(시드니 거주)가 세 가지 내용을 제보했다. △전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 씨가 86년 브리즈번에 Y건설 이름으로 고층빌딩을 세우려 했고 △시드니 근교 고스포드의 한 쇠고기 가공육 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했으며 △도산한 호주 재벌 앨런본드그룹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경환 씨가 퀸즐랜드 주도 브리즈번 시내에 대규모 빌딩을 건설키로 하고 구체적인 협의까지 진행했다는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려고, 당시 경환 씨 측과 접촉했던 M건설회사 사장 B씨(72·당시 시드니 거주)를 1997년 출장길에 만났다. 그는 “86년 브리즈번에 토지를 매입해 93년 26층짜리 아파트 건물을 지었다. 토지 매입 당시 경환 씨의 대리인이자 Y건설 관계자를 만나 공동투자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호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지으려는 계획이었다. 처음 공동투자 제의가 왔을 때 내가 흡수될 우려가 있어 거절했으나 다시 아주 좋은 조건을 제시해와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측이 적정 투자 규모를 두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결국 경환 씨의 투자는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애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적절한 건설 시기를 놓쳤고, 그로 인해 많은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1995~96년 주거용 아파트로 분양됐다. 최근 B씨를 다시 접촉하려고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호주를 떠돌고 있는 경환 씨 소문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 해외 도피 의혹은 여전히 해소 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전경환 씨(아래)로부터 체납 세금 1억8402만 원을 받아냈다.

    1988년 새마을 비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호주 M건설회사와 싱가포르 Y건설이 브리즈번에 당시로선 세계 최고층인 107층짜리 빌딩을 합작 건설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검찰은 Y건설이 이 빌딩 공사를 담당할 만한 재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경환 씨의 해외 도피 재산이 투자됐을 것으로 봤다. 당시 이 빌딩 공사 자금과 관련해, 한 호주 은행에 전씨 성을 가진 사람의 명의로 4000만 달러짜리 수표가 입금된 것으로 알려져 전씨 재산 유입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시드니 외곽 고스포드의 한 쇠고기 가공육 공장에 경환 씨의 자금이 흘러들었다는 소문도 있다. 재일동포 재력가인 P씨와 외교관 출신 C씨가 전씨의 비자금 관리인이라는 것이다.

    P씨는 1994년 국내 경륜사업과 관련해 정부 고위층 뇌물 파동의 주역으로, 경환 씨의 새마을 비리 수사 당시 일본 도피를 주선했던 인물이다. 전씨의 인척인 조모 씨와 82년 결혼해 사돈이 된 P씨는 파친코 사업 등을 통해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P씨는 호주 지역에서의 사업을 물색하던 중 영사 출신 Y씨의 소개로 C씨를 만나게 된다. P씨는 호주에 아는 사람이 없었던 데다, C씨가 영어도 잘하고 현지 사정에 밝아 C씨를 현지 고용 사장으로 채용했다.

    C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전씨 측과의 관련설을 일체 부인했다. 기자가 고스포드 공장의 등기부등본을 열람했으나 호주 대리인의 명단만 확인할 수 있었고, 전씨 성을 가진 이름은 확인하지 못했다.

    경환 씨는 1997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 1989년 퀸즐랜드 주도 브리즈번의 고층빌딩 투자 건과 관련해, 당시 공동투자자로 협상했다고 주장하는 B사장을 아는가.

    ”모른다. 나는 B사장도, 브리즈번이라는 도시 이름도 모른다. 내가 호주에 갔다 온 건 80년대 초다. 400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협상한 사실도 없다.”

    ▼ 고스포드의 쇠고기 가공육 공장에 투자한 적 있는가.

    “투자했다면 내가 가봤을 것 아닌가. 나는 고스포드에 간 적도 없다. P 회장하고 친하니까 그런 소문이 난 모양인데, 나는 잘 모른다.”

    본드와 전씨 관계

    호주는 1986년 금융자율화를 단행한 이후 남태평양의 스위스라고 불렸다. 각국의 검은 돈이 급격히 유입되기 시작했다. 유대계 호주인 앨런 본드는 그런 검은 돈의 유·출입에 관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드는 영국에서 호주로 이민한 인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페인트공으로 살다가 그룹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81년부터 약 2년간 현대자동차 액셀 시드니 총판을 운영한 적도 있어 한국통이었다고 한다. 그는 90년대 초반 사기 혐의로 구속돼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세 번째 소문은 본드와 전씨 집안의 관계다. 전 전 대통령 일가가 본드에게 거액을 사기당했다는 소문뿐 아니라 장남 재국 씨가 1987년 퍼스에 있는 본드 아들 존의 집에 머문 적도 있다고 알려졌다.

    호주에서 나돌던 이러저러한 소문의 진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숨겨진 재산을 추적 중인 검찰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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