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5

2013.07.08

발끝에 묻은 향기 백 리 간다네

섬백리향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7-08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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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백리향.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넘실대는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점의 섬, 말만 들어도 시원하고 신선하네요. 거기에 백 리를 가는 향이 더해지니, 얼마나 멋진 식물입니까. 실제로 섬백리향을 마주하고 제대로 겪어본다면 그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지면으론 그 아리따운 향기를 전할 방법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네요.

    섬백리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가운데 하나인 울릉도에서 자랍니다. 상상해보세요. 동해에 우뚝 솟은 청정의 공간, 안온함이나 비옥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그것도 험하고 가파른 바위 절벽 틈에서 피어나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갖은 고난을 뚫고 귀한 장소에서 자라난 꽃이라 그럴까요. 혹 꽃향기가 발끝에 묻기라도 하면 백 리를 다 가도록 그 향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백리향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만큼 식물체 전체에 향기가 가득하고 향이 강하다는 얘기지요. 섬백리향이 좋은 것은 우리 인간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꽃이 한 무더기 핀 곳엔 어김없이 곤충들도 바쁘게 찾아오네요. 그들도 바다를 건너왔을까요. 아니면 태초부터 그곳에 살던 곤충의 후손일까요. 신비함과 궁금함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에 더해 향기로 느끼는 상쾌함까지…. 툭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 향기가 손으로 전해오는 촉감 그대로 퍼져나갑니다. 섬백리향은 이렇듯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꽃입니다. 이 백리향 집안은 요즘 인기 있는 허브 식물 중 타임(Thyme)이라 부르는 종류에 속합니다. 독특한 향기를 먹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차로도 마시고, 음식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며, 각종 질환의 치료용으로도 씁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백리향 집안의 꽃들은 강장효과가 크고 우울증, 피로, 빈혈에도 좋다고 합니다. 우리의 섬백리향도 그리 이용하면 될 일입니다.

    꼭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백리향이 아니더라도 백리향이 우리나라 내륙 고산지역에서 드물게 자랍니다. 서로 비슷한 특성이 많지만 섬백리향은 백리향보다 꽃과 잎이 크고 키도 커서 활용도가 여러모로 다양합니다. 섬백리향은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옆으로 기면서 퍼져나가 그 높이가 한 뼘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관상자원 가운데 지피식물(지면이나 바위를 덮으며 자라는 소재)로 활용도가 아주 높습니다. 축대나 벽 같은 곳 밑에서 키우면 줄기가 기면서 늘어져 자라 보기에 무척 좋지요. 분홍빛 고운 꽃송이들에 더해 그 향기가 주변 잡냄새도 없애주니, 벽 밑에라도 키우면 온 동네 사람의 기분도 좋아질 거예요.

    재미난 사실은 이렇게 화분에서도 키울 수 있는 키 작은 식물임에도 섬백리향이 나무라는 점입니다. 섬백리향은 꿀풀과에 속하고 낙엽도 지는 진짜 나무입니다. 옆으로 기는 줄기에 가지가 위로 자라고, 여기에 서로 마주보는 타원형 잎사귀들이 매달리지요. 꽃은 분홍색인데 여러 개가 끝에 모여 한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섬백리향은 한방에서도 여러 증상에 처방합니다. 열을 내리고, 기침을 멎게 하며, 경련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꽃이 피는 계절에는 수없이 많은 벌이 날아드는 좋은 밀원식물이 되기도 하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섬백리향 같은 사람이고 싶다면 욕심일까요! 스스로 낮추어 자라면서 온몸으로 향기를 내뿜고, 가장 척박한 곳에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산할 수 있는 섬백리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발끝에 묻은 향기 백 리 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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