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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김범준의 이색 연구 ④

그 많던 용은 다 어디 갔을까

‘승자독식’ 구조 바뀌지 않는 한 허리 휘는 ‘사교육 열풍’ 계속될 것

그 많던 용은 다 어디 갔을까

요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필자가 대학시절을 보낸, 적어도 1980년대 중·후반까지 상당 기간 물리학은 이과계열의 가장 우수한 학생이 택하는 전공이었다. 거의 예외 없이 전국 모든 지역 수석은 다 물리학과에 들어갔다(세상 물정 모르고 왜 다들 물리학과에 갔을까. 성적은 좋아도 헛똑똑이었던 듯).

물리학과의 좋은 옛 시절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필자도 그들 중 한 명이라고 은근슬쩍 자랑하는 것에 덧붙여 하고 싶은 말은 이처럼 예전에는 필자처럼 지방 작은 도시 출신이라도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미래를 바꿀 수 있었다는 것이다(슬프게도 물리학과를 간다고 예나 지금이나 미래가 밝지는 않지만).

학생 줄었는데 대학 가기 더 힘들어

이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났다고들 한다. 왜 그럴까. 퇴직 후 생활 보장을 위한 연금까지 헐어 자녀 학원비를 내는 사교육 열풍은 왜 생길까. 고등학생 수는 과거보다 줄었고 대학 수는 늘었는데 왜 대학 가기는 더 힘들어졌다고들 할까.

‘그래프1’을 보자. 그래프 가로축에는 자녀 교육비를, 세로축에는 투자한 자녀교육비가 학생에게 몇 점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점수를 주는지를 그려본 것이다. 물론 엄청난 교육비를 투자해도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이 나쁠 테고, 전혀 교육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혼자 열심히 하면 당연히 성적은 좋을 것이다. 이러한 예외적인 학생까지 다 포함해 ‘그래프1’은 우리나라 모든 학생에 대한 일종의 평균을 필자가 예상해서 그려본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즉, 평균적으로는 교육비를 점점 더 늘릴수록 자녀의 수능점수는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그래프를 좀 더 자세히 보자. 그래프의 왼쪽, 즉 교육비 지출이 적은 곳을 보면 곡선 기울기가 상당히 가파른 반면, 교육비 지출이 많은 오른쪽 부분에서는 곡선 모양이 상당히 완만하다.

‘그래프1’의 곡선 모양을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너무 가난해서 수능응시료 외에는 단 한 푼의 교육비 지출도 하지 못하는 집의 자녀와 그래도 몇 권의 참고서와 문제집은 가지고 있는 학생을 비교하면, 두 학생의 수능점수 차이는 제법 생길 수 있다. 즉, 단돈 몇만 원의 차이가 교육비 지출이 적은 영역에서는 수능점수 차이를 크게 만들 수 있다. 교육비 지출을 점점 더 늘려 공부에 필요한 책을 사주고,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컴퓨터도 사주고 하면 당연히 학생들의 평균 수능점수도 높아질 것이다.

이제 그래프의 오른쪽 부분을 보자. 교육비로 매달 수백만 원을 지출하는 부모가 지출을 10만 원 더 늘린다고 해서 수능점수가 눈에 띄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많던 용은 다 어디 갔을까
‘그래프2’를 보자. 가로축은 학생의 수능점수, 세로축은 학생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후 평생의 평균 월수입을 필자가 예상해서 그린 그래프다. 잘 알려졌듯이, 우리 사회에는 소수의 고액 소득자와 저임금에 시달리는 다수의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 물론 수능 전국 수석이 가장 많은 월급을 받는 게 아니고,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중졸 학력으로도 남보란 듯이 성공한 훌륭한 분도 많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 대해 평균을 구한다면 ‘그래프2’와 비슷한 모양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래프에서 수능점수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가파르게 월수입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소수 최상위자의 월수입은 엄청나게 많은 반면, 중간 정도까지도 최상위자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는 것을 보여준다. ‘승자독식 사회’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우리 사회가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 사람에게 사회적 자원을 몰아준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인데, 바로 ‘그래프2’가 ‘승자독식’이란 개념을 그린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

이제 우리나라에 몰아치는 사교육 열풍이 왜 생기는지 설명해보자. 이를 이해하려면 두 그래프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 과학 실력은 최고 수준이지만 이들 과목에 느끼는 흥미는 다른 나라 학생보다 많이 뒤지는 이유도 비슷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왜 많은 대학교수가 고등학교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온 신입생들이 예전에 설렁설렁 공부하고 온 학생들보다 수업을 못 따라온다고 느끼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부모가 자녀 교육비를 왜 지출하는지부터 들여다보자. 경제학에서는 자녀 교육비를 부모 자신의 안정된 미래 생활을 위한 장기투자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런 이기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당연히 모든 부모는 자녀가 학업을 마친 후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한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 살펴보기를 좋아하는 필자 같은 물리학자에게는 투자한 교육비 총액과 비교해 자녀의 미래 수익 총액이 어떻게 변하는지가 사교육 문제를 보는 생각의 틀이 된다. 예를 들어, 자녀 교육비에 지출한 돈의 총액이 1억 원인데 교육 효과로 인한 학생의 미래 기대 수익 증가량이 1억 원보다 훨씬 밑돈다면, 현명한 부모는 당연히 교육비에 지출하느니 자녀에게 1억 원을 증여할 것이다.

노후 자금까지 탈탈 털어 투자

그 많던 용은 다 어디 갔을까

5월 23일 한 입시 전문업체가 개최한 ‘2014 고교 선택 및 대입 변화분석 설명회’ 현장.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많은 부모가 본인의 노후 자금까지 털어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가 지렛대효과(투입량에 비해 산출량이 커짐)를 가져 자녀의 미래에 훨씬 더 큰 소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교육 열풍의 이유는 승자독식 사회, 즉 ‘그래프2’처럼 아주 빠르게 증가하는 함수 모양이라는 데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수능점수를 올리면 자녀의 미래 기대수익이 크게 변하니,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어느 부모가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하지 않겠는가.

예전에는 어땠을까. 과거 우리나라에서 사교육 문제가 지금보다 심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부분 부모가 부담할 수 있는 교육비 지출액이 ‘그래프1’의 왼쪽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논밭에 나가 일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만 제공해도 비교우위에 섰던 시기는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경제 발전과 함께 대부분 부모의 교육비 지출은 그래프 오른쪽으로 이동했고, 과거 같은 비교우위를 가지려면 이제는 훨씬 더 많은 교육비를 부담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는 우리나라 같은 사교육 문제가 거의 없다고 들었다. 아마도 그런 나라에서도 엄청난 교육비를 지출하면 자녀 성적은 당연히 조금씩이라도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성적이 오른다고 한들 학생의 미래 기대 소득이 조금밖에 늘어나지 않는 사회구조라면 어느 부모가 과도하게 사교육비를 지출하겠는가.

중고교 때 힘들게 장시간 공부해 시험점수가 높아졌어도 학생들의 과학, 수학에 대한 열정이 심하게 부족한 이유도 비슷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기만 하면 학생의 장래 성공의 상당 부분이 결정되는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 학생의 공부 목적은 높은 점수를 받는 데 있다. 하나하나 더 알아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짧은 시험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를 실수 없이 가장 빠르게 푼 학생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아 명문대에 갈 수 있고, 이를 위해 우리나라 어린 학생들은 엄청난 양의 반복적인 문제풀이에 시달린다. 문제집 세 권을 풀어본 학생에 비해 다섯 권을 풀어본 학생은 그만큼 실수를 덜해서 성적이 좀 더 나을 수 있다(‘그래프1’에서 가로축을 교육비 투자가 아닌 학생이 공부에 투자한 노력의 양으로 생각해볼 것).

그런데 그 작은 차이가 학생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그래프2’의 효과로 인해 다섯 권도 부족해 열 권을 푸는 학생이 생기고, 이러한 끔찍한 양의 되먹임이 계속되면 처음에 물리학을 좋아하던 학생이라도, 물리학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게 된다.

사회 분배구조와 밀접한 관련

사설학원에서는 문제풀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학생들에게 물리학의 기본 개념을 충실하게 가르치기보다 문제풀이 요령을 달달 외우게 한다(학원에서는 그것이 비록 잘못된 요령이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학원 교사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부탁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까. 학원 교사가 그렇게라도 가르치는 근본 이유도 바로 ‘그래프2’의 ‘승자독식’ 모양 때문이다. 정확한 원리에 바탕을 두고 주어진 문제를 약간 느려도 착실히 해결하는 학생은 비록 틀린 요령이라도 무조건 외워서 빨리 빨리 답을 구하는 학생보다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이 때문에 장래의 평생 수입이 달라진다면 어느 부모가 요령을 외우게 하는 학원에 보내지 않겠는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다른 곳을 찾아가는 데는 무용지물인 오직 ‘서울에 빨리 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학생에게 ‘지도를 보고 나침반을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나은지는 자명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 부의 분배구조가 이를 간접적으로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밴 학생들, 물리학을 문제풀이를 위한 공식과 공식을 적용하는 요령의 집합으로 배운 학생들은 당장 대학에 진학하면 전혀 다른 상황에 부닥친다. 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문제를 풀어야 하고, 더 공부해 대학원에 진학하면 문제가 뭔지를 생각해내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현재 사교육 시장에서 가르치는 입시를 위한 과학 교육은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될 수도 있는 학생으로 하여금 대학에 가기 전부터 이미 물리학을 싫어하게, 문제는 잘 풀어도 자기가 도대체 무슨 문제를 푸는지도 모르게 만든다.

만약 ‘그래프2’의 모양이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극단적으로 그래프 모양이 오른쪽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감소함수의 꼴이 되면 공부를 하지 않을수록 사회에서 성공하는, 모든 입시생의 꿈이겠지만 현실에서는 말이 안 되는 사회가 된다. 그래프 모양이 평평해서 수능점수와 월수익이 아무 상관이 없다면 이는 자아 실현욕구를 간접적으로 억압한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에 해당한다(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면 결국 사람은 더 나은 능력을 갖기 위한 노력 자체를 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사회 전체의 발전이 저해된다).

당연히 ‘그래프2’의 모양은 증가함수 꼴이 돼야 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우리 사회문제는 그 증가함수 모양이 너무 가파르다는 데 있다. 부모는 자녀 사교육비에 등골이 휘고, 아이는 장시간의 반복학습에 만성 수면부족 상태가 되며, 그렇게 공부한 경험밖에 없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대학생을 가르치느라 교수들도 고생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임무가 학생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학생들을 일렬로 세우는 것이라는, 안타깝지만 사실에 가까운 주장이 있다.

‘승자독식’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학입시를 어떻게 개선해도 ‘그래프2’의 가로축만 바뀔 뿐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지역균형 선발제도를 시행하니, 강남의 부유한 학부모는 컨설팅을 받아 아이를 지방 중학교로 전학 보낸다. 학생의 교과 외 경험도 평가지표로 사용한다고 하니, 부유한 학부모는 자녀를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보낸다.

그럼 모든 대학을 평준화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렇게 되면, 오로지 더 좋은 대학원에 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 끔찍한 대학 4년을 보내거나, 아니면 소위 스펙을 쌓고 학점을 잘 받으려고 지금보다 더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문제는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분배구조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양자를 분리해서 해결할 수 없다.

‘그래프1’과 ‘그래프2’는 항상 짝으로 묶인다. 자녀 교육비를 충분히 지출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부모의 아이만 입시에서 성공하고, 또 그 학생이 졸업 후에도 경제적으로 성공한다는 게 일반인의 믿음이다. 이렇게 대물림된 성공은 곧 부의 대물림이 되며, 이는 또 그 자식의 자식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한 줄로 세우고 앞사람에게 몽땅 몰아주기’ 같은 분배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입시 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앞으로는 개천에서 날 수도 있을 그 많은 아름다운 용이 다시 개천으로, 아니면 하수구로 돌아갈 것이다. 그 용들의 아이들도. 그리고 그 아이들도.

입력 2013-06-10 09:58:00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beomjun@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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