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0

2013.06.03

금지된 사랑을 許하라?

지구촌 곳곳서 동성결혼 허용 놓고 마찰 심화

  • 허진석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jameshuh@donga.com

    입력2013-06-03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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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지된 사랑을 許하라?

    5월 26일 칸영화제에서 레즈비언의 사랑을 그린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압돌라티프 케시시 감독과 함께한 두 여배우.

    동성(同性)결혼의 합법화 추세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성(異性)결혼’만이 유일한 시대에서 ‘남남(男男) 또는 여여(女女) 결혼’ 등 다양한 ‘2인(二人) 결혼’ 시대에 접어든 셈이다. 여기에 5월 26일 폐막한 칸영화제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Blue Is The Warmest Color)’가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더 주목받는 형국이다.

    프랑스의 동성결혼 허용으로 지구촌은 이제 14개국이 동성결혼을 전면 허용한 나라가 됐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도 6월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에서는 관련법이 하원을 통과한 상태로, 내년에는 동성결혼을 전면 허용하는 법을 시행할 공산이 크다. 독일, 핀란드, 콜롬비아, 안도라,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팔, 타이완도 동성결혼 허용 문제를 논의 중이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나라에서 동성결혼 허용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등 진통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동성결혼 허용 프랑스 대규모 반대 시위

    프랑스에서 ‘어머니 날’인 5월 26일 오후 프랑스 파리의 앵발리드 광장에는 경찰 추산 15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였다. 18일 발효한 동성결혼법에 반대하는 우파 야당과 가톨릭, 시민단체 회원 등이 궐기에 나선 것이다. 어두워지자 청년 시위대 수백 명이 집회 현장을 둘러싼 경찰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병과 돌을 던지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맞섰다. 이 과정에서 350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날 충돌로 경찰 34명, 시위대와 기자 1명씩 모두 36명이 다쳤다.



    동성결혼에 반대한 이들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을 비판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사회당 당사에 침입해 ‘올랑드 대통령은 물러나라’는 현수막을 설치하다 그중 19명이 체포됐다. 전날 샹젤리제 거리에선 바리케이드에 몸을 묶고 동성결혼 반대 시위를 한 59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5월 21일에는 프랑스의 극우 인사 도미니크 베네(78) 씨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권총으로 공개 자살을 감행하며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했다. 자살한 극우 인사는 며칠 전 자신의 블로그에 “극도로 불쾌한 법이 통과됐다. 잠에 취한 이들을 깨우고 마취된 의식을 뒤흔들기 위한 극적이고 상징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글을 남겼다. 성당 안에 있던 유서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의 나라 폴란드에서도 5월 26일 시민 1만여 명이 프랑스의 동성결혼 반대 시위에 동조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가족구조를 지지한다”며 연대를 표했다.

    5월 25일 브라질에서도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 10만여 명이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브라질에서는 최근 법원이 “정부의 혼인신고 담당부서가 동성커플을 거부할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번 판결이 전국적인 동성결혼 합법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이처럼 동성결혼 허용 흐름이 순탄치만은 않다. 종교계와 보수 진영의 반대가 워낙 심한 데다, 윤리적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종교계 일각에서는 “전통 교리에 어긋난다”며 “동성결혼을 허용할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가 이성애를 할 수 있게 사회가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동성결혼 자체는 지지하지만 그 여파로 대리모 제도가 양성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리모 제도는 현재 프랑스에서는 불법이다. 그런데 동성결혼이 허용돼 남성과 남성이 결혼한 뒤 자신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를 원할 경우 대리모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프랑스 사회당은 아예 대리모 제도까지 합법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다. 동성결혼 합법화와 그 여파에 대해 프랑스 야당과 종교계는 “인간관계의 기본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권까지 짓밟는 것”이라며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내세운다. 프랑스 헌법재판소가 5월 17일 동성결혼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하며 “동성결혼 및 입양 허용법이 국민의 기본권이나 자유, 국가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적시한 배경에도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겼다. 동성애자도 결혼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찬성하는 주된 이유다.

    금지된 사랑을 許하라?

    극우 청년단체가 5월 26일 프랑스 파리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집회에는 약 15만 명이 참가했다.

    올해만 해도 우루과이, 뉴질랜드, 프랑스가 동성결혼 허용국 대열에 합류했다. 2001년 네덜란드를 필두로 시작된 동성결혼 법제화가 2013년 중대한 분기점을 맞은 양상이다. 전면 허용 14개국 외에 미국, 브라질, 멕시코는 지역별로 허용한다.

    유럽에서는 최근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한 영국이 내년에 동성결혼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고 독일, 핀란드, 룩셈부르크 등에서도 법제화가 이뤄질 개연성이 제기된다.

    특히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동성결혼 허용이 관심사다. 워싱턴DC와 12개 주가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에 관해 심리를 진행 중이다.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대해 직접 심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방대법원은 먼저 캘리포니아 주가 시행 중인 동성결혼 금지조항(프로포지션 8)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주민은 2009년 주민발의를 통해 동성결혼 금지법안을 만들었다. 연방지방법원은 지난해 8월 이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동성결혼 시대…13년 만에 14개국

    금지된 사랑을 許하라?
    연방대법원은 아울러 이성부부에게만 주어지는 각종 복지혜택을 동성부부에게는 금지하는 결혼보호법(DOMA)의 위헌 여부도 심리 중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6년 제정한 결혼보호법은 상속세 공제 등 1100가지 혜택을 동성부부에게는 부여하지 못하게 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법안에 서명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결혼보호법에 서명한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실수”라며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6월 중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동성결혼 합법화의 바로 전 단계로 볼 수 있는 시민결합(civil union) 제도를 허용하는 국가도 20개국이 넘는다. 시민결합은 동성커플에게 사실상 부부가 갖는 대부분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혼인관계와 유사하게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다.

    한편 아시아에서도 동성결혼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하고 있다. 4월 중순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베트남 현지에서 나왔다. 베트남 보건부와 법무부는 “동성애자들도 사랑하고 생활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타이완에서는 1월 법원에서 혼인신고 접수를 거부당한 동성커플이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한 뒤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 사회 이슈가 됐다. 중국에서는 2월 성적 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 100명이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여한 대표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네팔이나 일본에서도 동성결혼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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