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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트레이드 손익계산서

김상현 對 송은범 뜻밖의 빅딜…SK-KIA 두 팀 성적에 관심 집중

  •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3-05-20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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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쏭달쏭 트레이드 손익계산서

    5월 6일 KIA와 SK는 김상현(왼쪽)과 송은범(오른쪽)이 포함된 2대 2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최근 수년간 좀처럼 보기 힘들던 대형 트레이드였다. KIA는 간판타자를 내줬고, SK는 마운드 기둥을 보냈다. 5월 6일 KIA는 2009시즌 홈런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던 우승 주역 김상현과 좌완 불펜 진해수를 SK에 넘겨주고, 그 대신 ‘전천후 투수’ 송은범과 사이드암 신승현을 받아들이는 2대 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우승을 노리는 KIA와 ‘4강 재진입’을 당면 과제로 내세운 SK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557명 바꾼 별의별 트레이드

    “트레이드 소식을 전해 듣고, 처음엔 거짓말이려니 했다”는 삼성 모 선수의 말처럼, 이번 트레이드는 그야말로 뜻밖의 빅딜이었다.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 송은범은 선발 보직을 원했지만 SK는 계속 불펜으로 활용하길 바랐고, 그 과정에서 코칭스태프와 사이가 틀어져 결국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됐다’는 뒷말이 나오는 등 시간이 지나도 이번 트레이드에 대한 관심은 잦아들지 않는다. 더욱이 묘하게 KIA가 트레이드 이후 한동안 뚜렷한 하락세를 보여 더 눈길을 끌었다. 양 팀 모두 쉽게 버리기 힘든 카드를 내준 만큼 이번 트레이드가 두 팀 성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가 올 시즌 내내 관심사일 것이다.

    올해로 32년째를 맞는 한국 프로야구의 첫 트레이드는 출범 원년인 1982년 12월 7일 삼성 서정환의 해태 이적이었다. 배대웅, 천보성, 오대석 등 국가대표급 내야진이 즐비한 삼성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서정환은 당시 서영무 감독에게 줄기차게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결국 해태로 옮겼다. 선수가 부족하던 해태는 현금(1500만 원)을 주고 서정환을 영입했다. 서정환의 현금 트레이드부터 이번 KIA와 SK의 2대 2 맞트레이드까지 한국 프로야구 32년 역사에서 트레이드는 총 265건 있었으며, 선수 557명이 트레이드를 통해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중에는 프로야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대형 빅딜도 있다. 한국 프로야구사상 가장 큰 트레이드로는 1988년 11월 22일 삼성과 롯데 간 블록버스터급 트레이드를 꼽을 수 있다. 롯데는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을 내보내고 삼성은 김시진,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을 내주는 3대 4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팬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양 팀은 12월 20일 또 한 번 초대형 빅딜을 성사했다. 롯데는 내야수 김용철과 투수 이문한, 삼성은 외야수 장효조와 투수 장태수를 보내는 2대 2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불과 1개월 간격으로 두 팀은 선수 총 11명을 맞바꾼 것이다. 당시 선수노조 결성과 연봉협상 과정에서 팀과 마찰을 빚은 선수를 정리하기 위한 거래였다.



    1993시즌 후 해태 한대화와 LG 김상훈의 맞교환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한대화는 86년 해태 이적 후 6차례나 팀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해결사’였고, 김상훈은 ‘미스터 LG’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팀의 얼굴 구실을 했다. 그해 12월 4일 발표된 2대 2 트레이드에는 해태 좌완투수 신동수와 LG 외야수 이병훈도 포함돼 있었다.

    1998년 12월 14일 성사된 삼성 양준혁과 해태 임창용의 트레이드 역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당시 번번이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삼성은 마운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임창용을 영입하면서 간판타자 양준혁과 곽채진, 황두성을 내주는 3대 1 트레이드를 완성했다. 그러자 양준혁은 해외 진출을 선언하며 저항했다. 결국 김응용 해태 감독이 “1년 후 다른 팀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해 해태 유니폼을 입었지만, 양준혁은 이를 계기로 한구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트레이드는 일반적으로 양 팀이 전력 보강을 위해 선수를 교환하는 형태로 이뤄지지만, 때로는 구단의 자금난 때문에 성사되기도 한다. 1990년대 말 해태와 쌍방울이 대표적이다. 97년 11월 15일 쌍방울은 현대에 박경완을 넘겨주고, 이근엽과 김형남에 현금 9억 원까지 받았다. 이듬해인 1998시즌 도중에는 현대에 조규제를 보내면서 박정현, 가내영과 함께 6억 원을 챙겼다. 그러자 재계 라이벌 삼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해 12월 25일 쌍방울에서 김기태, 김현욱을 받으면서 양용모, 이계성에 현금 20억 원을 얹어줬다.

    2008년 프로야구에 발을 디딘 넥센도 한동안 생존을 위해 핵심 선수를 팔아 구단 운영 자금을 마련했다. 특히 2009년 12월 30일 한꺼번에 3개 팀으로 간판선수들을 보내는 트레이드를 하면서 프로야구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이택근을 LG로 보내면서 박영복, 강병우를 받았고 삼성에 장원삼을 건네면서 박성훈, 김상수를 데려왔다. 그리고 이현승을 두산에 주면서 금민철을 얻었다. 넥센은 “현금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8년 장원삼의 사상 최초 트레이드 무산은 한국 프로야구사상 최고의 해프닝이다. 장원삼은 11월 14일 삼성 박성훈과 일대일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삼성의 경산 볼파크로 내려가 등번호 13번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가 11월 21일 총재 직권으로 트레이드 승인을 거부해, 장원삼은 일주일 만에 다시 넥센으로 복귀했다. 장원삼은 결국 1년 후 삼성으로 최종 트레이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활발한 트레이드, 한국 야구 살찌워

    알쏭달쏭 트레이드 손익계산서

    2008년 한국 프로야구사상 처음으로 트레이드가 무산됐던 장원삼.

    한국 프로야구도 서른 살이 훌쩍 넘으면서 앞서 돌아본 것처럼 트레이드와 관련해 여러 얘깃거리를 남겼다. 그러나 미국 메이저리그에 비하면 한국 프로야구는 그다지 트레이드가 활성화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메이저리그는 포스트시즌 탈락이 유력할 경우 주축 선수를 팔아 팀 리빌딩 자금을 마련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더구나 김상현과 송은범의 트레이드처럼 팀 주축 선수가 포함된 ‘제대로 된’ 트레이드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 프로야구가 트레이드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은 그 과정에 의미를 두기보다 결과를 두려워하는 탓이 크다. 김상현은 2009년 LG에서 트레이드된 후 이적 첫해 우승 주역이 됐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적 당해 MVP’의 첫 주인공이 바로 그다. 당시 LG는 KIA 우완 강철민을 받으면서 김상현과 박기남을 내줬지만, 강철민은 그해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당연히 ‘밑지는 거래’를 한 LG는 팬들에게 원성을 샀다.

    전체적으로 구단별 선수층이 두껍지 않아 트레이드가 더 활발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이유는 창조적 트레이드에 둔감한 프런트와 현장 코칭스태프의 인식 부족 탓이라 볼 수 있다. 비즈니스를 하는 구단 처지에선 자산인 선수를 바꿔 구단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선수 처지에선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트레이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김상현과 송은범의 빅딜은 그 의미가 크다. 선동열 KIA 감독은 이번 트레이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송은범이란 투수가 필요해 김상현이라는 좋은 타자를 내주는 출혈을 감수했다. 트레이드를 통한 구단별 손익은 당연히 언론이나 팬들의 큰 관심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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