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8

2013.05.20

판 커진 ‘카센터 전쟁’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놓고 “소비자 안전 보장 vs 골목상권 보호” 논란 가열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s.com

    입력2013-05-20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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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 커진 ‘카센터 전쟁’

    현대자동차의 정비거점 ‘블루미’에서 차를 정비한 여성 운전자가 차를 몰고 나서고 있다.

    5월 14일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상직 의원이 동반성장위원회 측에 카센터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다시금 촉구하고 나섰다. 대표적 골목상권인 카센터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함으로써 재벌의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제조업계는 자동차 정비업이 소비자 안전과 직결되는 분야인 만큼 일반 서비스업과는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자동차 정비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놓고 벌이는 첨예한 기싸움은 단순히 자동차 정비를 생산업체인 대기업에 맡기느냐, 동네 카센터에 맡기느냐 수준의 논쟁을 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 소비자의 안전 보장과 골목상권 보호 간 갈등 같은 또 다른 대립구도를 양산한다.

    자동차 제조사와 정비업계 간 힘 겨루기

    자동차 정비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문제가 대두된 것은 지난해 9월 한국자동차전문정비사업조합연합회(CARPOS·정비연합회)가 동반성장위원회에 자동차 정비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면서부터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자동차 정비업종을 종합수리업과 전문수리업으로 나눠 중소기업 적합업종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전문수리업은 완성차 메이커 5개 사와 주유, 보험, 타이어 관련 대기업을 대상으로 정비연합회가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한 상태로, 동반성장위원회는 5월 내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자동차 정비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정비연합회와 대기업 간 실무협의를 위한 조정협의체도 구성됐다.

    조정협의체를 통한 실무협의 과정에서 그간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자동차 정비업에 진출해 있던 삼성화재와 동부화재, 현대해상화재, LIG 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5개 화재보험사와 GS칼텍스, SK네트웍스 등 정유회사, 그리고 한국, 금호, 넥슨 등 타이어사가 더는 정비가맹점을 늘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자동차 제조사 측과 정비연합회 간 충돌이 빚어졌다. 현대·기아자동차(현대기아차), 제너럴 모터스(GM), 르노삼성, 쌍용 등이 자사 계열의 정비가맹점을 향후 3년간 20%가량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반면, 정비연합회 측은 5% 확대안을 줄곧 주장하는 상황이다. 자동차 제조사 측이 15%대로 협의안을 축소했지만, 이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제시한 9%대를 웃도는 수치라 양측이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제조사가 쉽사리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자동차’라는 품목이 가진 특수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 측 설명이다. 자동차 정비업은 운전자 및 동승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분야인 만큼 제조사의 전문성이 서비스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동차 제조사 측은 정비연합회가 국산 완성차와 정비업종의 경쟁력 저하, 소비자 불이익, 수입차와의 역차별, 제조사 책임 서비스 관련법을 고려하지 않고 여타 대기업과 동일하게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다며 날선 반박에 나섰다.

    이상직 의원은 이에 대해 “이런 무차별한 진출로 카센터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는다. 이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자동차 정비업종에 진출한 삼성화재, 동부화재 등 보험사 5곳과 GS칼텍스, SK네트웍스, 그리고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 등 3개 타이어사는 정비가맹점을 더 늘리지 않겠다고 방침을 정했지만 유독 현대기아차는 계속 카센터를 늘리겠다고 한다”며 꼬집었다.

    자동차 정비업계도 공격에 나섰다. “향후 3년간 프랜차이즈 정비 직영점 15%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기업의 정비업 프랜차이즈가 주장하는 애프터서비스(AS) 정비는 정비업 프랜차이즈 업무의 20% 정도 수준에 불과하며 나머지 80%는 일반 카센터와 동일한 부분 정비라는 것이다. AS는 표면적 이유일 뿐 대기업의 속내는 카센터 시장의 정비물량 싹쓸이에 있다는 것이 자동차 정비업계의 반응이다.

    판 커진 ‘카센터 전쟁’

    카센터에서 작업하는 모습.

    이 의원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카센터를 늘리겠다고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고 주장하면서 첫 번째 이유로 순환출자를 피해 현대차 사업부 내에 본부를 둔 점을 꼽았다. 편법 순환출자라는 얘기다. 그는 프랜차이즈 업체로 자신들의 세를 늘린다는 점,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 등을 또 다른 이유로 꼽았다. 현대기아차의 직영서비스센터(종합정비업)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데도 유독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것은 현대기아차가 일감 몰아주기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현대기아차가 자동차 정비 프랜차이즈를 편법증여 경영권 승계의 방편으로 활용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현대차 주가는 18만8000원인 반면, 자회사인 현대모비스는 25만5000원이다.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정비 실수가 큰 참사 부를 수도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현대기아차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한 예로 현대차가 운영 중인 자동차 프랜차이즈 ‘블루핸즈’는 가맹사업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에 의해 정액의 가맹수수료를 받지만 이는 모두 고객 정보 관리와 고객 혜택 프로그램으로 쓰일 뿐 현대차가 얻는 이익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 보호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자동차 제조사들의 자동차 경정비 사업은 이익을 남기기 위한 수익사업이 아닌 고객에 대한 책임 서비스 차원으로 봐야 한다”며 “정비로 인한 수익은 대기업이 아닌 가맹점주인 개인사업자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현재 공격을 받는 자동차 전문수리업종 정비가맹점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직접 운영하는 직영 서비스센터와는 별개의 것으로, 자동차 제조사가 자동차 전문수리업계의 개인사업자들과 프랜차이즈 형태로 계약을 맺어 전국 정비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자동차 정비 관련 업체는 3만2000여 개. 그중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비중은 약 30%다. 그리고 실제 5개 자동차 제조사의 전문수리업종 정비가맹점은 전체 3만2000여 개의 8.3% 수준인 250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일반 카센터와 자동차 전문수리업종 정비가맹점의 차이는 논란이 되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장악이 아닌 ‘기술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들 자동차 전문수리업종 정비가맹점의 경우, 고객들이 직영점과 동일한 수준의 정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자동차 제조사가 가맹업체 정비사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기술교육을 실시하며, 특히 최근에는 신차의 전장화가 가속돼 기술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만큼 신차가 출시되는 즉시 실습교육 등을 통해 차량 기술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제조사의 주장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자동차 정비업종의 경우 정비 실수가 그대로 교통사고로 이어져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서비스업과 동일한 접근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자동차 정비를 단순히 고객 서비스라고 볼 수만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정비가맹점 운영이 자사 차량의 품질 상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리콜 등 안전에 대한 조치를 사전에 취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사 서비스망을 통해 정비 서비스를 받은 차량 정보를 기초로 무상수리, 리콜 등을 결정하는데, 통상 리콜 같은 전 차종에 대한 보증수리는 이들이 운영하는 서비스 거점으로 정비를 받으러 온 차량 정보를 바탕으로 해 이뤄진다. 일관된 정비망이 구축돼 있지 않으면 품질 문제가 발생해도 개별적인 차량 수리로만 이어질 뿐 다른 차량들과 연계해 판단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수입차와의 경쟁력 약화 우려

    판 커진 ‘카센터 전쟁’

    카센터에서 차를 점검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사후 정비 서비스는 법으로 규정한 중요한 사안이다. 자동차관리법(제32조의 2)에 ‘자동차 제작자는 자기인증을 하여 자동차를 판매한 경우 필요한 시설 및 기술인력을 확보하고 정해진 기간 또는 주행거리 이내에 발생한 하자에 대한 무상수리를 해야 하고 이를 대행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운영하는 직영 서비스센터가 바로 이러한 법적 규정에 의해 설립됐다.

    사전점검, 정기점검, 고장수리 등을 통해 파악되는 차량 정보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신차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핵심 요소로 이해된다. 특히 최근처럼 수입차와의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자칫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역차별을 받게 될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수입차의 국내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처음으로 10%를 넘어서는 등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자동차시장이 세계 각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된 것이다.

    BMW, 메르세데스 벤츠, 폴크스바겐 등 주요 수입차 제조사들이 최근 국내 고객 만족도 강화를 위해 서비스센터를 고급화하고 거점 수를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들에 맞서 경쟁해야 하는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정비 서비스에 대한 신뢰 저하는 결국 차량 구매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차량 정보 수집 미비로 신차 개발 경쟁력마저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처지에서는 개인정보 관리에 허점이 생기는 것도 문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보증수리제도’는 전국 3만2000여 개 카센터가 소비자들의 개인정보를 모두 공유할 때 실현 가능한 것으로,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전산망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자동차 업계 측 주장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차량을 구매한 고객의 동의 하에 보증수리를 위해 고객 정보를 전문수리업종 정비가맹점들과 공유하는데, 이러한 정보공유가 있어야 보증기간 내 무상수리가 가능하고 차량 수리 이력에 따른 작업 프로세스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수리업종 정비가맹점 외의 곳에서도 보증수리가 가능하게 하려면 차량과 차량 소유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전국 카센터에 공개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뒤로하더라도 자동차 정비업은 소비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동반성장위원회가 신중하고도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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